1심서 징역 12년 항소심서 뒤집혀 대법원 확정...흉기 뒤늦게 확보-증거 오염 ‘허점’

제주에서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던 60대 남성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확정하면서 경찰 수사에 허점이 드러났다.

대법원 제1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 항소심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은 고모(65)씨의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10일 기각했다.

고씨는 2019년 7월8일 오전 2시13분 제주시내 한 주택 1층에 침입해 잠을 자던 A(19)양을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 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2019년 7월31일 구속기소 됐다.

재판과정서 고씨는 범행 당일 사건 현장 근처에 있었지만 해당 집에 침입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에 전면 부인했다. 

최초 수사를 맡은 제주 경찰은 과거 동일 수법으로 수차례 범죄를 저지른 고씨를 유력 용의자로보고 피해자 진술과 폐쇄회로(CC)TV, 흉기 유전자 감식 결과를 증거물로 내세웠다. 

올해 1월30일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검찰측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고씨에 대해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신상정보 공개와 전자발찌 부착, 아동·청소년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반면 5월27일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무죄를 선고하면서 고씨도 석방시켰다.

검찰측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해자는 애초 경찰 조사과정에서 당시 범인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검은색은 옷을 입은 키 180cm의 젊은 남성이라고 진술했다.

반면 고씨는 키 169cm의 60대 남성이었다. 경찰이 제시한 CCTV에서도 검은색 옷차림의 사람이 발견됐지만 식별이 어려웠다. 고씨가 피해자 주거지로 이동하는 직접적인 모습도 없었다.

가장 유력한 증거인 유전자 감정결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의심을 품었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에서는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Y-STR검사였다.

부계혈통검사로 불리는 Y-STR은 남성의 성 염색체인 Y염색체를 이용해 여러 유전자형 중 동일 부계(친족)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개인 식별이 가능한 STR과는 차이가 있다.

애초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현장에 있던 흉기를 압수하지 않았다. 그 사이 현장에는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경찰을 포함해 약 10명이 드나들었다.

더욱이 경찰은 현장에서 철수한 후 6~7시간이 지난 시점에 피해자의 가족을 통해 임의제출 방식으로 흉기를 확보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Y-STR 분석만으로는 동일 부계의 남성인지 여부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흉기 속 유전자형이 범인의 것인지 단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범행 현장에 드나든 다른 경찰관 등 제3의 요인으로 증거가 오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경찰의 대처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에 따라 부실 수사 의혹에 휘말린 제주 경찰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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