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40) 연말 국회 모습에 대한 단상

필자는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가장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언급했었다. ( 김경희의 노동세상 24편-21대 국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이 시급하다 참조 )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기도 했다. 

21대 국회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정의당이었다. 정의당은 지난 6월 21대 국회 1호 제출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9월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이하, 제정운동본부)가 국민 동의 청원 방식으로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시기는 늦었지만 11월과 12월 민주당과 국민의 힘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각각 발의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수차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연내 제정을 약속했었다. 지난 9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는 “산업안전은 어제 오늘의 과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해마다 2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희생되십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 불행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발언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부산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부산운동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가톨릭상담소 이영훈 신부가 지난 9월 1일 부산시청 광장 국민청원운동 선포식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부산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부산운동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가톨릭상담소 이영훈 신부가 지난 9월 1일 부산시청 광장 국민청원운동 선포식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국민 10만 명이 동의하고, 여야 모두가 입법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정기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 내용 중의 하나는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사망 사고 등의 중대 재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주요 방식으로 하한형 처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예컨대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교통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음주 운전자에게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는 것과 비교하면 쉽다. 현재 입법 추진 중인 4개의 법안 모두 하한형 처벌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망 사고는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만 이루어졌더라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제주에서만 두 차례 발생했던 생수 공장에서의 사망 사고로 세상을 떠난 두 명의 노동자 역시 사업주가 기본적인 안전 보건 매뉴얼을 준수하였다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을 이웃들이었다. 산재 사망 사고의 이와 같은 특성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처벌의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지만 실제적인 목적은 사고가 난 후의 ‘처벌’이 아닌, 사고가 발생하기 전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의무 준수’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12월 10일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故 김용균 노동자의 2주기가 되는 날이다. 故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는 국민 10만 명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청원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다른 산업 재해 피해 유가족들과 함께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하며 아들의 2주기를 맞이하고 있다. 

고무줄 같은 탄력적 근무시간제도의 확대 

12월 9일은 21대 첫 정기국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정기 국회 마지막 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직결되어있는 총 11개의 노동 관계 법규가 통과되었다. 그중에 탄력근무 제도가 확대 통과되었는데 심각한 우려점이 있다. 탄력근무 제도란 주 40시간으로 정해져있는 노동시간을 취업 규칙 혹은 노사 간의 합의하에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은 최장 3개월 단위를 기준으로 설정돼 있다. 즉, 3개월 동안 평균해서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특정한 한 주의 노동 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시간외 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연장 노동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도이다. 문제는 이번 법 개정으로 3개월 단위의 기간이 6개월 단위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근로계약서를 체결할 때 근무 시간을 정하고 휴일, 휴가를 명시하게끔 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근로 시간을 사전에 예측하고 일상 생활에도 참고하기 위함이다. 교대 근무를 하는 노동자는 한 달에 한번, 한 달간의 근무표가 나오는 날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근무표에 따라 생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통과된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 하에서는 사용자가 주간 노동 시간을 2주전에 통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기계 고장, 업무량 급증 등의 예기치 않은 사유가 발생하게 되면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만으로 주간 근무 시간을 늘리거나 줄여서 근무일 전날까지만 통보하면 된다. 

사실상 내가 근무하는 시간이 예측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청소년이 들고 온 근로계약서에서 ‘근로시간 = 랜덤’이라고 쓰여 있던 엉터리 계약서 사건이 불현 듯 떠올랐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노동자의 건강권에 직결된다. 고무줄도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하여 사용하다보면 고장이 나 듯 노동자의 몸도 마찬가지로 회복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연말 국회 어느 한편에서는 산업재해 피해가족들이 일하다 더 이상 죽지 않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외치고 있는데, 또 다른 어느 한편 에서는 노동자의 과로를 부추기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