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시어터 가족극 ‘검은 용 이야기’

출처=두근두근시어터 페이스북.
'검은 용 이야기' 출연진.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지훈, 성민철, 조성진, 오종협, 노유주, 김은정. 출처=두근두근시어터 페이스북.

제주 극단 ‘두근두근시어터’에게 2020년은 참으로 잊지 못할 해가 아니었을까. 

연초 신작 발표 기회와 일본 초청 공연이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되고, 기다리던 올해 첫 공연은 무려 8월이 돼서야 가능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10월 인천수봉문화회관 초청 공연으로 감격적인 첫 대면 공연을 가졌고 연이어 부산·서울 지역도 방문했지만 그때까지 제주 관객은 직접 만나지 못했다. 고대하던 새 작품을 12월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앞뒀지만, 코로나19 재확산이 터지며 다시 비대면 공연으로 선회했다. 이로서 두근두근시어터에게 올 한 해는 제주 관객과 공식적으로 마주하지 못한 초유의 시기로 남았다. 

같은 기간 자체 방역 조치를 준수하면서 ‘오프라인’ 작품 활동을 이어간 제주 극단들과 비교하면, 두근두근시어터는 더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 그것은 어린이를 주 대상으로 삼는 ‘가족극 전문극단’이기에 감내한 일종의 책임감이라고 본다.

신작 ‘검은 용 이야기’는 제주를 배경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간다. 한 밤 중에 길을 잃어버린 초등학교 1학년 ‘새덕이’(배우 노유주)를 돕다가 굳어버린 돌멩이 ‘꼬망’(김은정)을 살리기 위해, 새덕이와 다른 돌멩이 송송(오종협)이 제주에 사는 ‘검은 용’을 찾아 나선다.

‘검은 용’이라는 제목에서 짐작 할 수 있듯 작품은 크고 작은 제주돌 모형을 무대에 가득 비치했다. 특히 동자석은 성인 배우를 가릴 정도의 크기뿐만 아니라 질감과 색감도 세세하게 잘 살려 시선을 사로 잡았다. 동자석은 200년 간 산담을 지킨 일종의 ‘정령’으로서 듬돌 들기 시합을 벌이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처럼 등장한다. 길게 늘어선 밭담은 “맨 손으로 땅을 일군 사람들이 땅에서 나온 돌로 하나하나 쌓아올린 담”이라는 개미(조성진)의 대사로 의미를 부여한다. 이렇게 두근두근시어터는 제주를 상징하는 돌 문화를 높지 않은 눈높이로 친근하게 소개한다.

새덕이와 꼬망은 산담, 밭담에 이어 다음 장소인 ‘산 넘어 남쪽 바다 길게 누운 바위’로 향한다. 

철조망, 테트라포트, 쓰러진 동자석, 전통 관악기로 재현한 날카로운 공사 알림음. 직접적인 묘사가 없어도 이곳이 해군기지가 건설된 강정마을 구럼비바위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붉은발말똥게는 어린 주인공 일행에게 ‘인생의 진리’를 들려준다.

“진짜 검은 용이 (여기에) 있으면 제 몸 뚱아리가 이렇게 되도록 가만히 있었겠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입으로만 말한다고 들어주진 않아. 산신령이든, 검은 용이든.”

구럼비바위 하면 떠올릴 해군기지 건설 갈등으로 자칫 우울하게 흐를까 걱정했던 분위기는 ‘수다쟁이’ 붉은발말똥게 덕분에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깔깔대며 “있지도 않은 용을 찾지 말고 직접 해결해”라고 던지는 메시지는 솔직하면서 단도직입적이다. 

“자기 일만 하면 안돼. 친구, 형제, 이웃, 부모님 일을 돕고 힘도 모아야지. 여기가 망가지기 전에는 맑은 물이 솟는 샘이 있었어. 사람들이 물을 뜨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 다 함께 기뻐하고 걱정하고.”

붉은발말똥게들의 말에 송송은 “우리 돌멩이 마을과 똑같네”라고 거든다. 해녀들이 투표 용지함을 강탈하고 구럼비 바위가 깨지면서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는 회복이 힘들 만큼 갈라지고 망가졌다. 그런 현실에서 "우리 돌멩이 마을과 똑같다"는 대사는 먼 미래 혹은 '돌멩이 마을' 같은 환상 속에나 강정마을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오종협 배우가 던진 이 짧은 말은 개인적으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슬픔을 안겨줬다. 

이렇게 ‘검은 용 이야기’는 친구·동료와 함께 떠나는 모험이란 틀 안에서 제주의 가치-아픔과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제주 돌의 질감을 재현한 모형과 함께 동자석, 붉은발말똥게, 검은 용 등 소품들은 정성이 느껴진다. 특히 비대면 영상 중계를 고려한 할머니와 새덕이의 대화 속 검은용 소개는 두 장면을 겹치는 송출 방식으로 아이디어가 빛났다. 만약 다음 무대가 계획돼 있다면 작품 끝에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구성을 더 명확했으면 하는 사족을 덧붙인다.  

출연진은 성민철, 조성진, 김은정, 노유주, 오종협이다. 조성진과 김은정은 1년 전 파수꾼의 연극 ‘소풍’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췄다. 노유주는 두근두근시어터의 신입 단원이며, 예술공간 오이에서 주로 활동하는 오종협은 피아노 치는 연극인이다. 

작품을 쓴 장정인, 연출 유홍영에 음악은 라예송, 움직임 지도는 강지수, 조명 디자인은 이나구, 기술은 백민수, 연주는 라예송·홍상진, 무대 스태프는 이지훈·곽진하, 진행 스태프는 오승하·이예닮이다. 특히 장구와 가야금 등 전통악기 연주는 독특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른 창작극 ‘할머니의 이야기치마’에서도 느꼈지만, 두근두근시어터는 오늘 날 제주 사회의 아픔과 고뇌를 가족극이라는 영역 안에서 녹여낸다. 현실이 무겁다고 해서 표현 방식도 날카롭고 거칠진 않다. 귀여운 인형, 아기자기한 그림자 등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느 구호, 피켓보다 깊이 가슴에 스며든다. 지역 사회 문제의 이면을 짚는 예술 자체가 드문 제주 예술계에서, 두근두근시어터의 존재는 많은 지역 예술인들이 공감하듯 ‘독보적’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코 앞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두근두근시어터가 언제 제주 관객들을 만날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그들의 무대를 언제라도 기다린다는 바람은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다시금 제주를 생각하게 되고, 잊었던 모습들을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는 성민철의 소감으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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