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해수면 상승 ‘전국 최고’ 예사롭지 않다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고요?”

온화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던 그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는 투였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를 포기한다는 말이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다. 

답변은 단호했다. “우리는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섬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긴다고 해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짐작했을 것이다. 그는 남태평양 적도 부근의 작은 나라 투발루의 윌리 텔라비 총리였다. 여수엑스포 막바지인 2012년 8월 방한한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국토 포기 소문’에 대해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발끈했으나, 당시 언론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만큼 세계는 투발루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역시 엑스포 폐막식 날 채택한 ‘여수선언’에서 “투발루와 같은 군소 도서국들의 생존을 위해 국제사회가 하루빨리 진정한 협력을 이끌어내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절절함이 느껴졌다. 사실상 국제사회를 향한 SOS였다. 

한때 엘리스 제도(Ellice Islands)로 불렸던 투발루는 기후변화에 관한 한 지구촌에서 가장 조명을 많이 받는 곳이다. 미묘한 변화도 눈에 확 띈다. 해발 고도가 3~5m에 불과한 지리적 환경 탓이다. 집단 이주 여부 말고도 소문과 논란, 예측이 넘쳐난다.

9개의 섬 중 하나는 이미 가라앉았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다. 투발루는 큰 섬 9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5개는 다시 각각 5~33개의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9개 중’이라는 전제를 빼면, 사라진 게 큰 섬이냐 작은 섬이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문제는 과학자들이 대체로 투발루 전체적으로도 21세기를 넘기기 어렵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발루가 세계적인 핫플레이스라면, 한반도에서는 제주 용머리 해안이 그런 곳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뉴스가 나갈 때면 어김없이 용머리 해안이 등장한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해수면 상승으로 산책로 대부분이 물에 잠긴 제주 용머리 해안. 제주 해수면은 전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해수면 상승으로 산책로 대부분이 물에 잠긴 제주 용머리 해안. 제주 해수면은 전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4년여 전인 2016년 10월18일. 가을 태풍이 불어닥친 것도 아니었다. 낮 12시 만조가 되자 제주 해수면이 3m 넘게 상승했다. 

용머리 해안의 탐방로는 대부분 물에 잠겨버렸다. 산책로가 조성된 1987년 만조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이후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수위 자체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8년 산책로를 더 높은 곳에 설치했지만, 연간 200여일씩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용머리 해안. 이러다간 머지않아 천연기념물 용의 머리를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해수면 상승이 바다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제주 관광자원의 지형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한달 쯤 후인 11월15일. 68년만의 슈퍼문으로 기록된 이날 오전에도 비슷한 모습이 연출됐다. 용머리 해안 만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집채만한 파도가 덮치면서 외도동, 애월읍, 우도 등지 해안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기록적인 두 번의 해수면 상승은 어쩌다 닥칠 재앙의 전조가 아니다. 필연적으로 다가올,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왔음을 보여주는 관측자료가 최근 발표됐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난 30년(1990~2019년) 동안 제주 해수면은 12.6cm 상승했다. 연평균으로 치면 4.20mm. 전국 최고 수치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은 3.12mm. 

최근 10년(2010~2019년)의 관측치는 더욱 놀라웠다. 전국 평균은 연 3.68mm였으나, 제주는 5.69mm에 달했다. 특히 제주는 해수면 상승 속도가 ‘지난 30년’에 비해 ‘최근 10년’이 1.3배 이상 빨라졌다. 

다 알다시피,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은 극 지방의 해빙. 남·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은 지구 온난화, 더 들어가면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 때문이다. 어느 한 국가, 한 지방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셈이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소재지만, 제주도의 입장에서 이번 발표는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무엇보다 추세가 심상치않다.   

위기가 현실화되었을 때를 그려본다.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금세기말 한반도 주변 해수면 높이는 최대 1m 가까이 상승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도 있다.

물이 차오른다고 한 발 한 발 빼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안을 다 비우고, 중산간으로 오를 수도 없다. 이럴 때 인간은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럼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왠지 투발루의 비극이 남 얘기 같지가 않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