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 해안사구 이야기(14) 동부 해안사구Ⅱ

제주의 자연생태계 중에서 무관심과 보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양생태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면서도 연안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육지로도 인정받지 못한 곳. 그야말로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2.4%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올해부터 도내 해안사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해 오는 12월까지 매월 2차례씩 총 16회에 걸쳐 도내 해안사구의 가치와 관리실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도는 우리나라를 오가는 철새들의 중요한 도래지이며 중간기착지다. 그러니까, 여름철새와 겨울철새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봄과 가을철에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 수만km를 오가며 사는 도요새 등의 나그네새가 몇 주간 쉬며 재충전하는 중간 정거장이 제주도라는 얘기이다. 

제주도가 옛날부터 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처럼 새들에게도 제주도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던 것이다. 

요즘 같은 겨울철이 되면 저 멀리 시베리아 벌판과 아무르 강 등의 북쪽에서 수많은 새들이 제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제주도의 동부지역은 겨울철새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익히 철새도래지로 알려진 오조리와 하도리 외에도 그 중간을 잇는 종달리 갯벌은 중요한 철새 도래지이다. 

그래서 하도리-종달리-오조리는 제주도의 ‘철새도래지 동부벨트’를 이룬다. 해마다 겨울철새 수천마리가 이곳을 중심으로 겨울을 지낸다. 최근에는 여기에 한 곳이 더 포함됐다.

바로 성산읍 신천리에 있는 천미천 하구이다. 천미천은 제주의 수많은 하천 중에서 가장 긴 하천인데 이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오고 있다. 천미천 하구를 포함한 남원 해안 일대가 제주도의 중요한 철새도래지가 된 것이다.

# 표선 해안사구에서 오조리 해안사구까지

천미천 하구 바로 옆에 표선 해안사구가 있다. 표선 해안사구는 제주 해안에서는 가장 폭이 넓은 모래사장 중에 하나인 표선해수욕장 뒤에 형성된 사구이다. 썰물때가 되면 넓은 벌판 같은 백사장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표선해수욕장이다. 

썰물 때 모래해변의 폭이 500m에 이른다. 말을 타고 달리고 싶은 넓은 면적의 표선해수욕장에서 날린 모래가 쌓인 곳이 표선 해안사구이다. 

해안사구
▲ 표선 해수욕장. 제주 모래해변에서 가장 넓은 백사장 중 하나이다. 멀리 보이는 숲이 표선 해안사구이다. 

표선 해안사구도 월정이나 한림처럼 지하에 동굴이 자리 잡고 있어 용암동굴에서는 보기 드문 위석회 동굴이 형성된 곳이다. 표선 해안사구 위에 지어진 제주민속촌 정문 옆에 표선굴이 자리 잡고 있다. 

표선 해안사구 속에는 패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패총은 선사 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같은 생활 쓰레기들이 쌓여 층을 이루고 있는 유적을 말한다. 선사시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해안사구 속에서 선사 유적이 발견된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송악산 부근의 상모리 패총도 해안사구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러니까 문명에 의해 사라질 뻔 한 선사시대의 흔적이 해안사구 덕분에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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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선해수욕장과 해안사구. 해수욕장 남쪽의 해안사구에는 제주민속촌이 들어섰고 서쪽 해안사구는 상업시설이 들어섰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 소금막 해변 배후에 형성된 사구이다. 

표선 해안사구 속에 포함된 것은 소라, 전복, 오분자기, 홍조단괴 등인데 토기 파편과 동물의 뼈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생태계와 선사인들의 생활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표선 해안사구는 제주도내 유명한 해수욕장의 해안사구들이 그렇듯이 이미 많이 훼손되어 있다. 제주민속촌은 오래전에 표선 해안사구 위에 만들어진 것이고 표선해수욕장 뒤의 해안사구에도 주차장과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 표선해수욕장 서쪽인 소금막 해변이 있는 해안사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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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선해수욕장 북쪽, 소금막 해변에 일부 남아있는 표선 해안사구.

 

소금막이라는 지명은 제주도 해안에서 종종 확인된다. 황우치해변에도 소금막 해변이 있다. 모래사장에서 소금을 만들며 막을 세웠다고 해서 소금막 해변이라고 부른다. 

제주 선조들은 구엄의 돌염전이나 사계리의 하모리층처럼 암반 위에서 소금을 만들었던 경우도 있고 이처럼 모래사장에서 소금을 많이 만들었던 것이다. 소중한 제주의 문화유산이다.

소금막해변 뒤편으로 크지는 않지만 해안사구에 염생식물 군락지와 상록활엽수림이 분포하고 있다.

해변에 인접한 사구에는 순비기나무 등의 여러 염생식물이 자리를  잡고 있고 이어지는 사구에는 까마귀쪽나무, 사철나무, 우묵사스레피, 해송 등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상록활엽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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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막 해변 배후의 표선 해안사구. 길 오른쪽은 주로 초본 염생식물이 자리 잡고 있고 길 왼쪽은 까마귀쪽나무, 우묵사스레피 등 짠물에도 살아가는 나무들이 분포해있다.

최근 11월24일 조사에서도 이곳 사구 일대에서 여러 새를 관찰했다. 세가락도요, 흰뺨검둥오리, 바다직박구리, 흰물떼새, 백할미새, 민물가마우지,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물수리 등이 표선 해안사구 일대에서 관찰이 되었다. 이 중 물수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 생물이다. 

또한 흰물떼새는 봄철에 해안사구에 알을 낳는 새이다. 이곳 표선 사구에서도 알을 낳는다고 알려져 있다. 조류보호단체의 연구에 의하면 이곳 사구에서 4쌍의 흰물떼새 둥지를 확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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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사구 염생식물 사이에 알을 낳은 흰물떼새. 제주도의 동부 해안사구(표선-신양-오조리-종달-하도) 중심으로 많이 산란하고 있다. (사진 : 강창완)

이곳뿐이 아니다. 표선 해안사구에서 서쪽으로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해안사구가 있는 곳은 흰물떼새들이 둥지를 많이 틀고 있다.

이곳 해안은 성산일출봉 주변이라 개발사업이 많이 이뤄져 있어서 해안사구는 상당부분 파괴된 상태이지만 남아있는 해안사구 중심으로 흰물떼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조류보호단체는 섬처럼 조그맣게 남아있는 오조리 해안사구에서도 여러 쌍의 흰물떼새 둥지를 확인했다. 식산봉 일대의 오조리도 하도리 못지않게 많은 새들이 날아오는 제주도 최대의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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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조리 해안사구. 이곳에서도 흰물떼새 4쌍이 번식했었다.

오조리 해변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표선해수욕장처럼 폭이 넓은 사빈이 있는 종달리 해변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흰물떼새뿐만 아니라 저어새 등 멸종위기종들이 먹이를 먹는 중요한 거점이다. 

# 종달리 해안사구

종달리 해안을 찾았던 지난 11월 24일에도 희귀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저어새 6마리와 검은머리물떼새 1마리, 검은머리갈매기 1마리를 발견했다. 저어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전 세계에 4000마리 이하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제주에는 매해 겨울마다 평균 30마리가 찾고 있다. 이날 발견한 저어새 중 한 마리는 발목에 H53라는 표식을 달고 있었다.

저어새의 보호를 위해 모니터링하고 있는 새를 의미한다. 검은머리물떼새는 천연기념물 제326호이고 검은머리갈매기(환경부 지정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는 저어새처럼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성산읍 시흥리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있는 종달리 해안에도 해안사구 층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이 사구 층의 아래에는 성산일출봉의 화산분출물이 굳어서 만들어진 신양리층이 있다.

또한 이곳은 드넓은 모래갯벌 조간대가 펼쳐진 곳이기도하다. 제주도해안에서는 드물게 조개잡이가 왕성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새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 주변도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었다. 표선 사구의 패총보다도 더 잘 원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이곳 종달리 패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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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달 해안. 표선해수욕장처럼 매우 넓은 백사장을 갖고 있다. 모래갯벌 속에 조개 등 먹이가 많아 많은 새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이곳 일대의 해안은 해안도로 개발과 그 주변에 늘어선 상업시설들로 인해 상당부분의 조간대와 해안사구가 파괴된 상태이다. 특히 해안사구는 파편화되어 섬처럼 남아있다. 

과거 종달리 지미봉 주변은 현재와는 달리 바닷물에 잠겨있는 염습지였다. 지미봉을 중심으로 바닷물이 하도리 양어장과 종달 마을까지 들어왔다. 즉, 지미봉은 성산일출봉처럼 옛날에는 섬이었고 지금의 종달리 마을은 해안가였다. 

종달리 일대는 옛날, 넓은 염전지대였으며 도내 최대의 소금 생산지였다. 이후, 논으로 활용되다가 쌀농사가 쇠퇴기에 접어들자 논도 사라지고 일부는 매립도 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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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달 해안과 지미봉 일대. 지미봉은 옛날, 섬이었다. 종달리의 옛마을인 안카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이곳은 옛날 도내 최대의 염전지대였다.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를 살다가는 인간에게 이러한 변화는 좀체 감지하기 힘든 것이다. 책으로만, 구전으로만 알뿐 그것을 체감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종달리의 옛마을인 안카름 일대에서 종달리 패총이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안선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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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달 해안사구. 이곳에도 흰물떼새가 산란을 한다. 

# 제주제2공항과 동부지역 철새 벨트

그런데 하도- 종달--오조리-천미천 하구를 잇는 동부지역 철새벨트와 흰물떼새 산란처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제주제2공항이 이곳 일대에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뜨고 내리는 만큼, 비행기는 안전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칫하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비행기와 새가 부딪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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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제2공항의 예정부지는 동부지역 철새 벨트 안에 있어서 사실상 철새도래지 안에 공항을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KEI도 제2공항 사업 예정지에 대해 “조류 충돌 위험이 있어 입지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었다.(사진 : MBC)

2019년 8월, 러시아의 한 공항에서 승무원과 승객 등 233명을 태운 항공기가 이륙 직후 활주로에서 1㎞ 떨어진 옥수수 밭에 비상착륙했다. 최소 27명이 다친 사고의 원인은 버드스트라이크이었다. 갈매기 떼가 엔진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2016년 1월에도 김포공항에서 이륙한 제주행 진에어가 여객기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가는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184명을 태우고 이륙하자마자 새가 엔진에 빨려 들어가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한 것이다.

시속 370킬로미터로 상승 중인 항공기에 중량 900그램의 청둥오리 한 마리가 충돌할 경우 항공기가 받는 순간 충격은 4.8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국토부가 정한 내부 고시인 ‘조류 및 야생생물 충돌 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에도 공항에서 13㎞ 주변에 대해 조류와 야생동물을 유인할 토지 이용이나 농작물 경작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제2공항 예정지 반경 13㎞ 안에는 도내 최대 철새도지인 하도리와 오조리뿐 아니라 종달에서 성산 신천리의 천미천하구를 잇는 동부지역 철새벨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사실상, 철새도래지 안에 공항을 짓는 셈이다. 

해안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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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2공항 계획 과정에서 철새도래지 보호와 버드스트라이크 문제는 소홀히 다뤄졌었다. 국토부는 제주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도 문제가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다가 문제를 제기한 곳은 주민이나 시민단체도 아닌 국책연구기관이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제주제2공항 전략환경환경영향평가 초안 분석 과정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했다.

KEI는 제2공항 사업 예정지에 대해 “조류 충돌 위험이 있어 입지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의 입지는 공항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 내린 것이다.

표선부터 하도리까지의 동부지역 철새벨트는 수많은 새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제주제2공항이 건설된다면 비행기는 정확하게 철새들이 분포하는 동부지역 철새벨트 하늘 위로 이착륙을 하게 된다.

철새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동선인 것이다. 

그래서 국토부가 제출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환경부는 철새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제기했고 보완 요구를 한 상태이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양수남 제주환경연합 대안사회국장
양수남 제주환경연합 대안사회국장

 

현재의 제주제2공항 입지는 버드스트라이크 때문에 안전성에 큰 문제가 있어 공항입지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주도 최대의 철새도래지의 상실이란 측면이다. 

영화 ‘곡성’의 대사에 나오는 “뭣이 중한디?”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설사, 건설되더라도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제주제2공항 건설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이 희생되고 있다.

대대손손 터전을 지키며 농사와 바다밭을 일구던 농촌공동체마저 5년 넘게 이어진 제주제2공항 갈등으로 붕괴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수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이 작은 섬에 또 하나의 공항을 짓겠다는 것인지,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원희룡 지사는 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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