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교육주체다] (9) 제주 학교비정규직 와이드 인터뷰-과학교육실무원

흔히 교육의 3주체로 ‘교사·학생·학부모’를 꼽는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주체가 있다. 교육활동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소위 ‘비교사 노동자’로 호칭되는 이들도 분명한 교육주체다.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 노동의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존중도 보장되어야 한다. 경쟁과 차별을 넘어 협력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는 주민자치 교육감 시대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현장 전문가의 릴레이 와이드 인터뷰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 편집자 
과학교육실무원은 실험을 위해 자재와 시약 등을 미리 준비한다.
과학교육실무원은 실험을 위해 자재와 시약 등을 미리 준비한다.

학교 현장에는 30여 직종의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제주도내 공립학교에 과학·발명교육실무원(이하 과학교육실무원)이 77명이 있다. 과학교육실무원들은 과학실험수업을 전후 업무를 준비하고, 과학실험수업 시 교사를 도와 실험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학교육실무원들은 과학수업에 사용하는 각종 실험 자재와 유해물질을 다루고 있다.

과학 실험은 사고 위험이 있는 각종 실험자재와 유해물질을 다룬다. 교육부도 2016년에 발표한 ‘과학교육종합계획’ 15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과학실험실 안전 체계 강화‘를 꼽았다. 제주도교육청은 다른 시도교육청보다 안전대책을 빨리 도입한 편. 예를 들어 다른 시도교육청이 2015년 이후에 실험실에 도입한 밀폐시약장을 제주도교육청은 2013년부터 설치를 시작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러한 안전대책을 비교적 빨리 시작했으나 유해인자를 다루는 과학교육실무원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은 아직 실시하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30조 [특수건강검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02조 [특수건강진단의 실시 시기 및 주기 등]에 따르면 사업주는 소음, 분진, 화학물질, 야간작업 등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노동자에 대해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해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2016년도부터 과학실험실 종사 노동자를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했고, 대전시교육청과 충청북도교육청도 올해 2020년부터 과학실험실 종사 노동자를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과학교육실무원이 밝힌 바에 따르며 제주 도내 초등학교에서 과학실험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과산화수소, 백반, 석회수, 수산화나트륨, 시트르신, 아이오딘, 염산, 황산, 이상환망가니즈 등 총 14가지 시약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해진 유해인자에 해당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산업안전보건법 특수건강진단에 해당하는 유해인자는 더 늘어난다. 중학교는 30여가지 시약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해진 유해인자에 해당된다. 

교육부,한국과학창의재단 발행한 학교 화학약품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과산화수소의 경우는 산소발생실험을 할 때 사용한다. 유해 및 위험성 정보로 △심한 피부 화상 및 눈 손상 유발, △흡입하면 치명적임, △암을 일으킬 수 있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학교 화학약품 안전관리 매뉴얼/과산화수소 유해․위험성 정보(교육부, 한국과학창의재단 발행)
학교 화학약품 안전관리 매뉴얼/과산화수소 유해․위험성 정보(교육부, 한국과학창의재단 발행)

이들 유해인자들을 취급하는 과학교육실무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특수건강진단의 시기 및 주기]에 따라 연1회 특수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용자가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은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위반 시 벌칙조항도 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고용노동부령에 따라 특수건강검진 비용 의무는 사업주가 책임져야 한다.  

일반건강진단이 고혈압, 당뇨 등 일반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건강진단이라면, 특수건강진단은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노동자의 직업성 질환을 조기에 발견, 예방하고 사후관리 등을 통해 위험집단을 관리한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올해 9월 초 과학교육실무원을 대상으로 안전실태 온라인 설문조사 및 인터뷰 조사를 진행했다. 70명의 과학교육실무원이 참여했다. “유해인자에 노출된 과학교육실무원에게 특수건강검진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92.9%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제주지역 과학교육실무원으로 20여년 간 일한 김경화씨(가명.53세)는 “밀폐시약장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13년, 2014년 경부터였다. 그 전에는 나무 시약장이었다. 사실 시약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시 쓰던 나무시약장은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재로 만든 찬장 같은 가구였다. 과학교육실무원이 거주하는 공간에 나무시약장이 있다보니 유해물질로 인한 나쁜 영향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온 몸으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김경화씨는 “나 같은 경우에는 과학실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얼마나 수 많은 유해성분이 내 몸에 쌓여 있는 건지 알 수 없잖아요”라고 지적했다. 또 김경화씨는 “경력이 15년 이상 된 과학교육실무원이 4명이 그 동안 암으로 죽었다. 직접적인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근무 환경이 병을 더 빨리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을까 싶어요”라고 토로했다.

일선 학교에 설치된 과학실 폐수보관함.

또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과학교육실무원은 S고의 경우 2016년도에도 나무시약장에 그냥 유해약품을 보관하고 있어 “근무하기에 너무 괴롭웠다”고 토로했다.  

과학교육실무원은 근무환경 중 건강과 안전을 위협 하는 요인으로 시약 관리, 폐수 및 페기물 관리, 실험 시 각종 사고 등을 꼽았다. 과학교육실무원은 실험 준비 및 지원, 마무리 과정에서 데이거나 화상, 베임이나 절단, 안질환과 피부질환, 손목저림이나 요통 등, 기침, 천식 등 호흡기 및 폐질환에 시달린다. 

’과학교육실무원으로 근무한 이후 현재 이유 없는 두통이나 호흡기 등 각종 질환을 경험하거나 시달리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40%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설문조사 참여자 중에 갑상선암, 유방암 등을 앓고 치료를 받고 있거나, 받았던 과학교육실무원들이 있었다. 적지 않은 과학교육실무원들이 원인 모를 투통에 힘들어하고, 부비동염, 비염과 천식 등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온몸에 알러지 등 피부질환에 괴로워하는 과학교육실무원들도 있었다. 고혈압, 당뇨, 빈혈 등에 만성질환에 힘들어했다. 학교에서 일을 시작한지 2~3년 정도 밖에 안되는 과학교육실무원도 발진, 두드러기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밀페형 환기식(필터식) 시약장이 있으신 경우 해당 약품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50%는 ‘작동하고 있지만 유해약품 냄새가 나고 있다’고 답변했다. 밀폐시약장 설치 이후 주기적인 점검 및 부품교체 등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문조사로 알 수 있다.  

일부 과학실의 경우 실험 이후 발생하는 폐수, 폐시약, 폐기물 보관함도 필터 및 환기 설치가 되지 않고, 폐수통도 일반플라스틱 용기라서 악취가 심하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본인도 인터뷰 조사를 위해 A학교 과학실에 들렀을 때 폐수보관함이 아무나 접근할 수 없도록 별도의 분리된 공간에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필터 및 환기 장치가 없는 나무장식장에 폐수, 폐시약을 보관하고 있었다. 폐수보관함 문을 여는 순간 참기 힘든 독한 냄새가 밀려왔고, 그날 이후 2~3일 정도 두통에 시달렸다. 

경기도교육청 소속 공립학교에서 과학실험 종사자로 일하는 이은영씨는 ”포르말린 병이 깨져서 교사와 아이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며 사고사례를 증언하면서, ”포르말린은 1급 발암물질이라 흡입하면 안 되어서 교사에게 아이들을 인솔해서 대피하라고 말하고 치우는 과정에서 증기를 흡입했다“고 말했다. 이은영씨는 그날 사고 이후로 과호흡증으로 119에 실려고 치료 받고 온 날도 있었고, 두통과 이명 증세로 시달리고 있다. 

이은영씨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특수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사후관리 대상자가 되었다. 사후관리 대상자가 지정되면 검진의사의 사후관리조치 내용에 따라 건강보호조치를 계속 받을 수 있다. 퇴직 이후에도 질병이 발생할 경우 산업재해 신청을 할 수 있다. 

대전광역시교육청 과학실험실 관련 종사자 특수건강진단 실시 계획(2020.7.)
대전광역시교육청 과학실험실 관련 종사자 특수건강진단 실시 계획(2020.7.)

제주지역 한 과학교육실무원은 안전실태 설문조사에 ”과학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실 업무가 위험하기에 각종 장부와 대장을 작성하고, 안전점검에, 외부업체까지 같이 점검에 점검을 하는데, 정작 그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생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도 학교에서 근무하고, 과학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최근 제주도교육청이 학교 급식소 음식물쓰레기 감량기에서 잇따라 발생한 손가락 절단, 골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관리강화에 나선다며 관련 내년도 예산을 신설 또는 확대했다고 밝혔다. 2018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4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손가락이 잘리거나 으스러지는 사고 이후 대책이라 아쉬운 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도교육청이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고에 안전조치를 마련하고자 대응에 나선 점 적극 환영한다.

충북도교육청, 대전시교육청이 올해부터 과학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올해 특수건강검진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해당 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아 과학교육실무원 안전실태 설문조사 한 내용을 알리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특수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 고용노동청이 노동조합의 요구에 동의하고 충북도교육청, 대전시교육청에 과학교육실무원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지부장 김은리)는 지방고용노동청을 찾기 전에 12월 중순 도교육청 해당사업부서 면담을 했다. 노동조합에서 실시한 과학교육실무원 안전실태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특수건강검진이 필요한 산업안전보건법상 근거와 현실적 이유를 설명했다. 과학교육실무원들은 도교육청이 2021년부터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기를 바란다고 면담을 마무리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노동부에 찾아가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석문 교육감은 11월 12일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모사를 내고 ”열사의 삶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할 때 이뤄짐을 깨닫는다“며 ”우리 아이들도 노동하면 살아갈 세상에서 ‘사람의 존엄성이 존엄하게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실현하는 데 제주교육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고 밝혔다. 

제주지역 과학교육실무원도 직업성 질환 예방을 위해 2021년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 보장된 특수건강검진을 받기를 바란다. 다른 지역처럼 굳이 고용노동청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이석문 교육감이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모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사람의 존엄성을 위해 제주교육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도교육청이 과학교육실무원에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글쓴이 박진현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1천3백여명의 제주지역 최대노조다. 박진현 국장은 2014년 4월부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공공운수노조 중앙에서 일한 햇수를 합하면 20년 가까이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박진현 국장은 원래 부산 사람이다. 2013년 제주로 이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로 이주하면 노동조합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 떠들었지만 헛말이 됐다. 지금 제주 와서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한 것이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한 해도 파업과 투쟁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하는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노동존중 평등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노동과 삶을 전하고자, 제주의소리에 연재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