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신동주, 오호진 할아버지 마지막 진술...피고인만 332명-21차례 심리-38명 법정 진술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2019년 6월3일 제주지방법원에 행불수형인에 대한 첫 재심 청구서를 접수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2019년 6월3일 제주지방법원에 행불수형인에 대한 첫 재심 청구서를 접수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검찰측, 변호인측 더 제출할 증거 없으시죠. 그럼 행방불명된 수형인에 대한 재심 심문절차를 오늘로 모두 마무리하겠습니다”

제주4.3으로 시신조차 찾지 못한 4.3행불수형인에 대한 역사적인 심문 절차가 끝이 났다. 2019년 6월3일 유족들의 첫 재심 청구 이후 꼬박 1년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故 홍칠석 할아버지 등 행불수형인 33명에 대한 마지막 심리 기일을 21일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故 신동찬씨의 동생인 신동주(82) 할아버지와 故 오호진씨의 동생인 오일남(83) 할아버지가 재심청구인 신분으로 출석해 4.3당시 상황을 생동감 있게 진술했다.

신동주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가족들과 지냈다. 광복 후 2년이 지난 1947년 5남매는 부모님과 함께 할머니가 살던 고향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로 돌아와 터를 잡았다.

당시 군경은 폭도들을 색출하겠다며 수시로 마을을 드나들었다. 불안한 동네 청년들이 마을을 떠나 몸을 숨겼지만 신 할아버지의 17살 둘째 형은 우리말을 몰라 집에만 머물렀다.

1948년 여름 검은색 옷과 모자를 쓴 경찰이 집으로 쳐들어와 둘째 형을 잡아갔다.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형은 대꾸를 안 한다며 오히려 곤봉으로 맞고 발길질을 당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주정공장을 거쳐 인천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무런 통보도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9년 가을 집으로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사망통지서였다.

신 할아버지는 “우리말도 못하는 형에게 다짜고짜 폭도들 위치를 얘기하라며 두들겨 팼다. 사망통지서에 병환이라고 적혔지만 우리는 지금도 굶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일남 할아버지는 4.3 당시 창천국민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안덕면 상천리 중산간 마을에서 9남매와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평화롭던 상천리도 4.3의 광풍은 피하지 못했다. 1948년 음력 10월. 당시 안덕지서는 성을 쌓는다며 마을 청년들을 소집했다. 8형제 중 형 2명은 약속한 날짜가 아닌 다음날 지서를 찾았다.

돌을 쌓으러 간 형들은 이튿날 수레에 실려 마을로 돌아왔다. 몸에는 총상과 혈흔이 또렷했다. 하루아침에 아들 2명을 잃은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

살아남은 7남매는 마을을 벗어났지만 이중 3남매와 부모님, 할머니는 무장대에 붙잡혀 마을회관으로 끌려갔다. 이후 경찰이 들이닥치자 무장대는 주민들만 남기고 마을을 떠났다.

경찰은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들을 창고로 끌고 가 곡괭이 등으로 연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후 정방폭포로 끌고 가 총살시켰다. 오 할아버지는 부모님의 시신을 찾기 위해 정방폭포로 향했지만 보이는 건 드넓은 바다뿐이었다.

오 할아버지는 “당시 사라진 호진형은 행방조차 모르고 있다. 죽은 날도 몰라서 집을 떠난 날, 부모님은 태어난 날에 제사를 지낸다. 부디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법정에 호소했다.  

재판부는 오 할아버지의 법정 진술을 끝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재심사건에 대한 심문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2019년 6월3일 행불수형인에 대한 첫 재심 청구 이후 현재까지 집단 재심사건에 동참한 행불인은 332명이다. 고인이 된 이들을 대신해 소송에 뛰어든 재심청구인(유족)은 325명이다.

당초 피고인은 349명, 재심청구인은 342명이었지만 재판 도중 재심청구인이 사망하거나 재심 청구를 취하하는 일이 생기면서 인원이 바뀌었다.

올해 6월8일 행불수형인에 대한 첫 심문절차가 시작된 이후 6개월에 걸쳐 총 21차례 심리기일이 열렸다. 심문 절차를 통해 법정에서 진술한 유족만 38명에 달한다.

법원은 11월30일 행불수형인 332명 중 故오형률 할아버지 등 10명에 대해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나머지 322명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재심 개시 여부가 결정된다.

재심 개시가 결정되면 행불인들은 피고인 신분으로 72년만에 정식 재판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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