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법 협의 과정서 '위자료'로 문구 수정...본 의미 퇴색 지적

[기사보강-22일 13:30]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4.3특별법 개정안의 최대 쟁점인 배·보상 문제에 대해 '위자료' 명목으로 국가 차원의 보상에 합의한 것과 관련, 그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18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주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정부와 당의 협의가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협의의 골자는 가장 큰 쟁점이 돼 온 '배·보상' 문제를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으로 수정한다는 내용이다. 

그간 4.3특별법 개정안은 배·보상 문제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완강히 반대하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정되는 4.3특별법에 따른 배보상이 이뤄질 경우 과거사 피해에 대한 정부 배보상 규모가 너무 커 국가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번번히 고배를 마셨던 개정안의 배보상 관련 조항은 '국가는 제13조에 따라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하여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며 필요한 기준 마련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부대의견으로는 재정지원을 위한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협의가 완료된 4.3특별법 개정안은 돌아오는 임시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도 커졌다.

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고, 정부와의 협의를 주도한 오영훈 의원은 "1999년 4.3특별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20여 년만에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시작할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민주당의 '정의입법'을 통해 제주의 역사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도 "이번 정부의 보상 합의 결정을 통해 그동안 4.3사건으로 희생당한 유족의 한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됐고, 12월 임시국회에서 4.3특별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생겼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각에서는 기존의 '배보상' 요구가 아닌 '위자료'로 조문이 변경 명시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배상(賠償)은 '남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이 그 손해를 물어 주는 일'을 뜻한다. 보상(補償)은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는다'는 의미의 단어다. '법률 국가 또는 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해 국민이나 주민에게 가한 재산상의 손실을 갚아 주기 위해 제공하는 대상'이라는 의미도 지녔다.

4.3과 관련해 배상과 보상을 묶을 수 있던 것은 국가가 이미 4.3진상보고서 발간을 통해 제주 4.3사건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었음을 정의 내렸기 때문이다. 이같은 내용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분명히 명시하고 진압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적 수단이 동원됐음을 국가가 인정하고 제주도민과 4.3희생자 유족에 사과까지 한 국가의 행위가 기반돼 있다는 점이다.

반면 위자료(慰藉料)의 사전적 의미는 '법률 불법 행위로 인해 생기는 손해 가운데 정신적 고통이나 피해에 대한 배상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단어에 포함된 위자(慰藉)란 '위로하고 도와줌'이라는 의미의 단어로서 궁극적으로는 배·보상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국가의 책임 유무가 불분명한채 '위로하고 도와준다'는 의미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어 사실상 배·보상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이라는 문구를 장황하게 덧붙인 것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지원'이란 '지지하여 돕는다'는 뜻이다.

단순 단어적 표현 뿐만이 아니라 법률적인 해석도 큰 차이가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위자료란 대개 '정신적 고통에 따른 배상'을 뜻한다. 손해배상은 희생자가 사망하거나 행발불명된 때를 기준으로 장래의 경제활동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데 반해 이를 '위자료'로 한정지을 경우 그 의미가 후퇴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3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법조계 전문가도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이 전문가는 "일반적인 손해배상에서 차지하는 위자료의 비중은 많아야 20~30%밖에 되지 않는다. 위자료는 배상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역시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4.3은 진상조사 결과 국가폭력에 의한 제주도내 학살이라는 것이 확인됐고,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며 "새삼스럽게 위자료라는 표현보다는 국가의 잘못을 더 명확히 하는 배·보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은 "광주5.18 보상법 등 과거사 관련 문제에서는 모두 배·보상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굳이 4.3에 위자료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는가"라며 "혹여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액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은 재정 부담을 들먹이며 4.3 배·보상에 끝까지 문제를 제기해오던 정부 내 기획재정부가 최근 당.정.청 합의에 응하게 된 배경이  '배·보상'에서 '위자료'로 바꾸자 수긍했다는 것에서도 그런 의문이 제기된다. 

이미 4.3진상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잘못을 인정했고, 대통령이 2번이나 사과한 일에 대해 굳이 배·보상이 아닌 '위자료를 포함한 특별한 지원'이라는 장황한 표현으로 바꿔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날카로운 지적들이다.

실제 과거사에 대한 배보상 문제가 담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등에는 배보상 규정이 명시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만일 '위자료'로 명시된 4.3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후 다뤄질 노근리 학살사건, 여순항쟁, 거창양민학살사건 등의 기준점이 될 수 밖에 없다.

4.3범국민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합의된 문구에 '위자료 등 특별한 지원'이라고 표현된 것은 주민 희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에 대한 이행임을 부정하고 국가의 재량이나 시혜 차원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고 문제인식을 같이 했다.

반면,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반론도 있다. '위자료' 명칭을 사용한 것이 오히려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배상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보상보다 강한 의미라는 주장이다.

국회앞 1인시위 등을 통해 개정 작업을 촉구해 온 허상수 재경4.3유족회 공동대표는 "4.3보상 법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문제 제기다. 배보상이 따로 있고, 위자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배보상이 이뤄질 때 지급하는 돈이 위자료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허 대표는 "이미 2013년 4.3 관련 희생자들의 유족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나온 판결문에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판례가 있다. 해당 판례를 인용한 것일 뿐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단어만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4.3과 관련 대전형무소 수형자 중 군경에 의해 집단살해된 희생자 36명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지급된 위자료는 희생자에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자녀 800만원, 형제·자매 400만원으로 매겨졌다.

허 대표는 "위자료가 되면 희생자를 비롯해 배우자, 형제·자매 등에게도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다. 배보상이라하면 경제활동에 대한 보상이 있는 것은 맞지만, 당시 희생자의 직업이나 소득을 산정할 근거도 없고, 계산할 수 없어 위자료 형식으로 지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 당선인은 "위자료라는 용어가 법률적으로 배상이라는 단어로 해석된다. 배보상 문제로 정부와 계속해서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선례도 있는만큼 배상에 준하는 방안으로 위자료 지급 방식으로 결정을 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오 당선인은 "이번 4.3특별법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배보상 문제이기도 하지만, 군사재판 무효화, 명예회복 등의 문제도 맞물려 있다. 이후의 정치 상황을 감안해서라도 반드시 이번엔 4.3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유족들의 열망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민주당과의 협의에 따라 연구용역을 통해 4.3의생자에 대한 재정 지급 방식과 기준, 절차 등을 마련해 2022년도 예산안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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