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삶과 지혜 담긴 제주어말하기

10년 전, 처음으로 ‘제주어말하기 대회’에 내보내기 위해 학생들을 지도하였었다. 2명이 대화를 이어가면서 관중들에게 설화를 들려주는 방식이었는데, 아마도 원고를 쓰는 데만 2주 정도는 걸렸던 것 같다.

대본을 쓰고 나서 전공 교수님께 부탁하여 제주말을 제대로 표현하였는지 감수 과정을 거치고, 한 달 이상을 제주말 연습을 시켜 대회에 보냈다. 하지만 들인 공에 비하면 허탈하기 짝이 없는 대회였던 걸로 기억한다.
 
대회는 설화의 내용 전달이나 정확한 제주어의 구사보다는 연희적인 요소, 흥미성과 오락성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 후 몇 차례 더 대회에 참가하였는데, 횟수를 거듭하면서 행사의 규모는 점차 안정되어 갔지만, 대회의 성격이나 풍토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대회 입상을 위해 전문 연극인에게 사사를 받게 하는가 하면, 소품과 무대장치에 지나치게 열을 올림으로써 과연 제주말 구사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른들이 쓴 대본을 그대로 외워서 연기하다 보니 어휘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용언의 활용이나 구연상황이 어색한 경우도 많았다. 더욱이 제주말을 접하는 학생들도 대회 참가자에 국한되기 마련이었다.
 
대회 출전용 ‘제주어말하기’가 아니라 학교교육 또는 일상생활의 현실 언어로서 제주말을 생각하게 되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단 몇 개의 제주말을 익히더라도 모든 학생이 함께 배우고 익힌다는 목표 아래, 전교생이 참여하는 ‘제주어말하기대회’를 열어 보기로 했다.
 
우선 각 학년마다 4명~6명씩으로 모둠을 구성하고 공동 대본을 작성해 오도록 하였다. 대본 작성에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주었는데,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바쁜 일정을 감안하면 한 달은 아이들을 재촉하기 위한 교사의 말미이다. 그리고 소재는 어떤 내용이든 제한을 두지 않고, 어휘의 사용은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나 부모님,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얻도록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자주 쓰는 제주말에는 ‘욕앗져(성숙하구나), 지꺼지다(기쁘다), 적시(몫), 심으라(잡으라), 감저(고구마), 속앗져(수고했네), 임댕이(이마), 속숨하다(조용하다), 헤천베리지 말라(똑바로 걸어가라), 맨도롱허다(따뜻하다, 미지근하다), 요망지다(야무지다), 곱닥허다(곱다, 예쁘다), 와리다(서두르다)’ 등이 있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 비하면 꽤 많은 언어를 갖고 있는 셈이었다. 그만큼 풍부한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쥐는 뭐라고 해요?”, “조용하다는요?”, “‘속앗수다’가 ‘수고했습니다.’는 뜻 맞죠?”, “개새끼는 강셍이고, 말새끼는 몽셍이잖아요? 그럼 닭새끼는요?” 등등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간혹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지 표현해 보세요” 한다든지, 제주말을 들이대면서 “느낌을 살려서 표현해 보세요” 하는 야무진 아이들도 있었다.
 
모둠별로 1차 대본이 완성되고 나면 교사 몫의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대본은 한자어나 외래어, 외국어에 대체될만한 제주어가 따로 있는지조차 모른 채 무심코 쓴 어휘들, ‘~우다’ 또는 ‘~우꽝?’만 붙이면 모두 제주말이 되는 줄 알고 ‘여긴 고산중학교이우다.’, ‘공부는 잘 하우꽝?’ 같은 어색하고 기형적인 말들이 다반사였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촌’에서 온 나는 ‘시(市) 아이’인 같은 반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친구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 중에 ‘저녁 먹언요?’, ‘안 먹언요.’, ‘숙제 다 핸요.’, ‘교복 말란요?’, ‘잠깐 친구 배웅하고 오젠요.’와 같은 표현들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요’를 붙이면 표준어가 되리란 생각의 반영일 터이다. 그때만 해도 20년 쯤 후에, 표준어에다 억지로 제주말 어미를 갖다 붙이는 일이 일어나리란 생각은 당최 하지 못했었다.
 
이번 대회는 제주말을 구사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제주말다운 어휘와 어감에 맞게 일일이 바로잡아 주는 것은 교사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18개 모둠의 대본을 일일이 읽어주고 교정해주는 것은 소규모학교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큰 학교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다).

빨갛게 얼룩진 대본을 돌려주면 모둠별로 다시 수정작업을 거쳤다. 모둠원끼리 2차 교정을 거치는 동안 아이들은 점차 많은 어휘를 알게 되고, 또 각 모둠끼리 서로 교정을 도와주거나 물어보면서 상당수의 어휘를 알게 되었다. 2차 교정까지 끝나면 비로소 연습에 들어간다. 
 

생활환경부터 다른 까닭인지 도시의 아이들보다는 어휘를 익히는 감각이나 구연하는 상황이 훨씬 빠르고 현장감이 있었다. 어휘 하나를 던져 주면 또 하나의 어휘를 건져 올리는 식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제주말로 대본을 쓰고 말하기를 준비하면서 ‘하다(많다), 일뤠(7일), 조끗디레(옆으로, 가까이로), 재게재게(빨리빨리), 욕앗져(어른스럽구나), 임댕이(이마), 재게(빨리), 속앗져(수고했구나), 작산(것)(큰 것, 많은 것), 오시록허다(까불지 않고 침착하다)’ 등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누구에게서 주워들었는지 ‘구젱기 닥살로 임댕이 밀어불라(소라 껍질로 이마를 밀어버려라)’ 같은 재미있는 말들도 여럿 떠돌아 다녔다.
 
대본을 만들어내고 친구들과 함께 생동감 있는 언어로 표현해 내는 모습을 보니, 참 기특하고 신기하였다. 동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는 말, 엄마 아빠에게서 가끔씩 듣는 말들은 생명을 얻고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양영자 고산중 교사
과정이 힘들고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학생들 자신도 직접 제주말로 대본을 쓰고 무대에까지 올린 것에 대해 ‘우리가 했다.’ ‘스스로 했다.’, ‘함께 했다.’ ‘자부심을 느낀다.’ ‘많이 알게 되었다.’ 등 후일담을 말하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였다.
 
우리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녹아 있는 토박이말들.
 
무대 위에서 대회로만 치러지는 화석화된 언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생각하고, 표출되는 현실 언어가 될 때 더욱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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