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저는 미혼모입니다](상) 기댈 곳 없는 제주의 어느 미혼모 “아이 팝니다” 이후

우리 사회엔 다양한 가족구성원 형태가 있다. 양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구성원이 있는가 하면, 엄마나 아빠 중 한부모가 아이와 사는 한부모 가정이 있다. 혼인 없는 미혼 한부모 가정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미혼모 가정에 대한 특별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회적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일상에서 편견과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미혼모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우리사회의 왜곡된 시선이 더 고통스러운 상처로 남는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지난 10월 제주의 한 미혼모 신생아 거래 글 게시 파문을 계기로 미혼모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제도개선을 위한 특별 취재를 진행했다. 미혼모의 현실과 대안을 점검하는 기사를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어느 언론 보도도 아이 아빠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어요. 무차별적으로 아이 엄마만 벼랑 끝으로 내몰았죠. 엄마의 행위는 당연히 잘못입니다. 그래선 안되었고요. 다만 엄마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없을까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 환경과 구조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지 점검하고, 안 된다면 고쳐야죠.”(임애덕 애서원장 인터뷰 中)

지난 10월 모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제주의 어느 미혼모의 신생아 거래 게시물은 제주뿐만 아니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상담받던 중 홧김에 글을 올렸다가 잘못된 행동임을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내렸으나 이미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후였다.

해당 사건이 일어난 뒤 아이는 엄마와 분리돼 보육시설로 옮겨졌고,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이와 동시에 유관기관과 협조해 산모 지원 방안이 다각적으로 검토되는 등 가능한 사회적 시스템을 통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 움직임도 일었다. 

당시 사회 여론은 미혼모의 행동이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과 함께, 아이의 책임을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미혼모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동시에 형성됐다.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친부와 위기에 놓인 미혼모의 현실적 문제 등도 여러 의견이 뒤따랐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원장 민무숙)도 미혼모의 신생아 거래 글 사건으로 인해 알려진 미혼모 관련정책의 사각지대를 개선하기 위해 「제주지역 미혼 한부모 관련정책 및 사각지대 해소방안」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연화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 ⓒ제주의소리
이연화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 ⓒ제주의소리

연구 책임을 맡았던 이연화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 신생아 거래 글 사건은 잠자고 있던 미혼 한부모 가족에 대한 사회 무관심과 획일화된 가족제도의 문제점을 의도치 않게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건”이라며 “이로 인해 제주도나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서가 제도적 문제나 개선점을 찾는 노력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관련 내용은 이번 [송년기획-저는 미혼모입니다] 하(下)편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이 같은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 [제주의소리]가 미혼모 보호시설 애서원을 운영하는 임애덕 원장을 만나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의 문제와 보호출산제, 입양특례법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임애덕 애서원장은 “최근 사건 당사자인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출산 직후인 데다 사람 마음은 오락가락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렇다면 우리는 그 엄마만 탓해야 하나.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아빠의 문제는 논외가 됐다. 아이 아빠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언론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먹먹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어 “미혼모들은 세상과 마주할 때 벽에 가로막힌 기분을 느낀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데다 세상과 맞서야 하니 아이를 내가 키워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것”이라고 공감했다.

그러면서 “아직 우리 사회는 결혼하지 않고 임신·출산한 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정적이다. 가족과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보듬어 주는 등 사회적 인식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원장은 “정상 가정이라는 틀, 가족 유형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식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1999년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들어서며 고용환경이 달라진 것처럼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법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개선키 위해선 사회운동도 중요하지만, 법적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어디 갔냐, 아빠가 왜 없냐 등 양부모 가정만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내뱉는 한 마디들이 미혼모 당사자들과 아이에겐 가슴에 평생 가는 대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애덕 사회복지법인 청수 애서원 원장. ⓒ제주의소리
임애덕 사회복지법인 청수 애서원 원장. ⓒ제주의소리

그러면서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할 부분 가운데 하나는 ‘가족’이라고 했다. 딸의 임신을 알았을 때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내 딸이 소중한 것처럼 딸의 아이도 소중한 자식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한 미혼모의 사례도 들려줬다. 그 미혼모의 부모는 동네 창피하니까 집에 오지 말라고 자신의 딸을 문전박대하고, 심지어는 애서원에 딸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미혼모 아버지가 칼을 들고 시설을 찾아와 "이런 데가 있으니 자기 딸이 애를 낳았다"며 원장과 딸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단다. 이 같은 행동은 정형화된 가족의 틀 속에서 미혼모 삶의 폭을 좁히는 행동이다.

임 원장은 이 과정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당사자의 변화라며, 부정적인 틀을 깨고 나오는 등 내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사자와 부모가 서로 당당한 삶을 살고, 비양육 친부도 아이를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엄마들이 강인하고 성실하게 내 아이를 지키고 살아가겠다 한다면 누구도 차별할 수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 마음 안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변화를 일으켜 애서원을 나간 엄마들은 자신감을 많이 얻고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편견과 차별에 놓인 미혼모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아빠의 존재를 물어볼 때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했고, 학교에 진학한 아이가 미혼모의 자녀라는 이유로 상처를 받거나 소외되지 않을까 늘 걱정한단다. 

또 아이가 아빠를 계속 찾는데 정작 아빠에 대한 존재를 말하지 못할 때 괴로워하며 남몰래 뒤에서 눈물을 훔친다고 했다. 어떤 엄마들은 무책임한 아빠의 존재가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까 아빠가 외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거나 세상을 떠났다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단다. 

아빠를 찾는 아이에게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더니 아이가 슬퍼하며 무덤을 알려달라 하고, 화장한 뒤 뿌렸다고 하니 어느 곳에 뿌렸냐고 되묻는 등 아빠의 존재를 알고 싶은 아이의 본능 앞에서도 차마 솔직하게 사정을 말할 수 없어 속앓이만 하며 눈물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더불어 친부에 대한 책임 관련 양육비 소송 제도 등 관련 법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미혼모들이 소송에 이겨도 친부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이겨봐야 허당’이 되거나 양육권을 빼앗기는 경우도 생긴다. 

이 같은 소송은 아이 아빠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나 미련, 아이 아빠라는 이유 등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 대부분이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 만난 미혼모 박진서(가명, 30대) 씨는 여섯 살배기 아이를 둔 미혼모다. 용기를 내 인터뷰에 응한 박진서 씨는 미혼모들의 현실과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박진서 님의 이야기는 이번 기획 中편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 만난 미혼모 박진서(가명, 30대) 씨는 여섯 살배기 아이를 둔 미혼모다. 용기를 내 인터뷰에 응한 박진서 씨는 미혼모들의 현실과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박진서 씨의 이야기는 이번 [송년기획-저는 미혼모입니다] 중(中)편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정말 생판 모르고 책임질 수 없는 데다 누구한테 갈지도 모르는 그런 곳(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에 올리는 것은 진짜 무책임한 행동이죠. 출산했다면 그 시점부터는 아이를 버리지 않는 것은 엄마의 의무와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미혼모 박진서 씨 인터뷰 中)

법에도 개선 소기가 있었다. 임 원장은 입양특례법에 대해 “이 법이 생기면서 가족관계증명서에 엄마의 존재를 명시하게 됐다. 입양이 이뤄지면 말소되지만, 만일 파양될 경우 친엄마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이가 자동으로 다시 등록된다는 문제가 있다”라며 “이 때문에 미혼모들이 출산 이후 아이들을 베이비박스에 보내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고 했다.

베이비박스(baby box)는 국내 일부 교회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산모들을 위해, 교회가 만든 작은 상자 안에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유기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다. 베이비박스를 두고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는 찬성 여론과, 아기를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대 여론이 모두 존재한다. 

임 원장은 그러면서 “아동의 권리와 엄마의 권리 가운데 어떤 부분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가 문제”라며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든 엄마가 아이를 입양시킬 방법이 있었다면 중고거래 같은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16일 국내 유명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에는 제주의 미혼모가 신생아를 20만원에 입양시키겠다는 글을 게시해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사건을 통해 미혼모에 대한 사회시스템 보완과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친부에 대한 논란까지 다양한 사회여론이 형성됐다. ⓒ제주의소리

최근 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보호출산제’에 대해 임 원장은 “엄마도 아이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결국 보호출산제는 이런 절차를 손봐 엄마의 권리를 인정해주겠다는 것 같다”고 의견을 표했다.

이어 “아직 한국에서는 보호출산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 물론 집에서 가족과 지역사회가 미혼모에 대해 적극적으로 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라면서도 “덴마크나 핀란드, 스웨덴 등 선진국서는 가정에서 잘 받아들여 보호출산 시설이 한 두 곳밖에 없지만, 한국은 오갈 곳 없는 미혼모들이 많아 포용할 시설이 아직도 더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시설에 입소하는 미혼모 역시 사회와 가족이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 무서워 들어오거나 가족이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 아빠도 받아주지 않고, 친정 부모님께는 미안한 마음에 나날이 눈물로 지새우며 아픈 가슴을 부여잡는다는 것이다.

임 원장은 “귀한 생명은 아무렇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식이 귀한 것처럼 찾아온 생명도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며 “미혼 한부모들을 위해서라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돌잔치도 벌여줄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났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책임지고 제주의 괸당문화 속에서 아이가 축복받을 수 있도록 동참해줬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엄마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기준 제주에서 살아가는 등록 미혼모는 약 460여 명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정책 탓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기댈 곳 없는 미혼모에 대한 인식변화와 실질적 지원정책이 절실한 것은 내 아이를 키운다는 개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양성한다는 국가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따른다. 

사회안전망이 튼튼한 나라가 건강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말처럼 지원정책이 아직 부족하다면 적어도 미혼모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만큼은 따뜻하게 변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한 수저의 따뜻한 밥을 아이에게 떠먹이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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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미혼모 보호시설 애서원 전경.ⓒ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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