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저는 미혼모입니다](中) 굴곡진 삶 꿋꿋이 이겨내는 미혼모들

우리 사회엔 다양한 가족구성원 형태가 있다. 양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구성원이 있는가 하면, 엄마나 아빠 중 한부모가 아이와 사는 한부모 가정이 있다. 혼인 없는 미혼 한부모 가정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미혼모 가정에 대한 특별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회적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일상에서 편견과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미혼모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우리사회의 왜곡된 시선이 더 고통스러운 상처로 남는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지난 10월 제주의 한 미혼모 신생아 거래 글 게시 파문을 계기로 미혼모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제도개선을 위한 특별 취재를 진행했다. 미혼모의 현실과 대안을 점검하는 기사를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편견과 왜곡의 시선. 대부분의 미혼모들은 이런 시선을 피해 기댈 곳 없는 외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정도 사회도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곳은 드물기에 그들의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곪고 깊어진다. 모든 책임의 화살은 오롯이 미혼모들에게만 향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워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기까지는 수 없는 고민을 거쳤다. 출산한 후 우리 사회에 녹아들어 자신과 아이를 위한 단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미혼모들이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자신의 힘으로 자녀를 꿋꿋이 키우고 있는 미혼모들을 대면과 비대면 방식으로 만나 그들의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아이 먹을 분유 걱정에 노심초사할 때도...“아이에겐 엄마가 우주에요”

“기댈 곳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하다 보니 제발 아이를 위한 분유만큼은 충분히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늘 맘속으로 간절히 빌었어요. 더도 말고 분유 딱 두통만이라도 사다 집에 채워두는 것이 절실한 소원이었습니다.”(김미선 씨 인터뷰 中)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난 미혼모 김미선(가명, 40대) 씨는 아이를 낳고 기르기까지 수없이 고민했다.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하곤 꿋꿋이 아이와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아이에게 모든 일을 말해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그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난 미혼모 김미선(가명, 40대) 씨는 아이를 낳고 기르기까지 수없이 고민했다.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하곤 꿋꿋이 아이와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아이에게 모든 일을 말해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그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를 낳고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저절로 눈물과 감정이 북받친다. 몇번이고 말문이 막히기를 반복하다 눈물을 삼킨 채 말을 이어간 김미선(가명, 40대) 씨. 그녀는 40대 초반에 아이를 낳은 미혼모다. 처음에는 엄마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우여곡절끝에 아이를 출산하게 된 데다 친부는 결혼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 오갈 곳 없어 시설에 입소하면서도 아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갑작스레 터진 양수에 병원에 실려 가 12시간이 넘는 진통 끝에 수술로 아이를 출산한 뒤,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산모 보호자가 입가에 적셔주는 물로 겨우 목을 축이면서도 '아이가 예쁘다'는 간호사의 말도 애써 외면한채 아이를 보지 않겠다 모질게 다짐하곤 입술을 깨물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선천적으로 장애도 가지고 태어났다. 심장에 구멍이 생긴 '심장(심방)중격결손' 장애를 갖고 태어난 데다 약 2.6kg의 미숙아로 처음 세상과 마주했다. 생계를 잇기도 힘든 미선 씨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임신 기간에 충분히 영양 섭취를 할 수 없었고, 태교도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아이의 장애가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힘겹게 세상과 마주한 아이는 엄마 품 안에 있을 때부터 엄마조차 자신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처럼 전혀 젖을 물지 않았다. 새벽마다 유축기에서 뽑아낸 모유만 겨우 먹고 내내 아팠다. 자연스레 떨어져야 할 배꼽은 기형이 됐고, 선천적 장애로 병원을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이 과정서 미선 씨는 병원서 다른 엄마들이 아빠나 할머니 등과 함께 그들의 아이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풍경을 보게 됐다. 가족 전체가 새생명을 따뜻하게 반기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교차됐다. 자신의 아이는 엄마조차도 제대로 반기지 않는 존재이지 않은가. 마음을 열어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한 아이를 향한 미안한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어떻게든 건강히 잘 키워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굳은 다짐은 높디높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낮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늦은 밤 지인에게 겨우 아이를 부탁한 채 술집 주방의 보조로 들어가 푼돈을 벌어온 것. 그 와중에도 아픈 아이는 매일같이 병원을 다녀야만 했다. 

그럴수록 미선 씨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을 깎아나갔다. 하루 두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잠깐의 쪽잠으로 눈을 붙이면서도 아이를 돌보기 위해 돈을 벌어올 수밖에 없었다. 월세를 내기도 빠듯한 탓에 곰팡이가 슬어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기도 했다.

지금 미선 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떳떳한 엄마로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늘도 고생하는 미선 씨를 도왔다. 선천적 질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가 5살이 지나면서 심장(심방)중격결손이 자연 치유 됐다. 기적 같은 행운이 찾아온 것.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주거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아이의 건강도, 생활 환경도 조금씩 나아졌다.  

미선 씨는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변하니 아이도 변했다. 오늘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에겐 엄마가 우주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다면, 많이 인내해야 한다. 스스로 즐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할 생각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미혼모 박진서(가명, 30대) 씨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했다는 짐을 아이에게 안겨주기 싫어 굳세게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 미혼모는 왜 가난해야죠?…딸 원망하던 부모님 지금은 ‘손주 바라기’

“왜 미혼모는 가난해야 하나요? 일정 기준 소득 이하면 국가가 정하는 한부모 기준에 들어가 지원받으면서 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살기 싫어요. 돈도 지금보다 더 많이 벌고 싶고, 아이와 함께 지금보다 더 좋은 집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에요.”(박진서 씨 인터뷰 中)

입도 6년 차를 맞은 미혼모 박진서(가명, 30대) 씨는 여섯 살배기 아이를 둔 미혼모다. 아이는 엄마가 외국서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한 유학 과정서 갖게 됐다. 

당시 진서 씨가 머물던 국가에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과 너무 달라 아무렇지 않았고, 평소 결혼과 별개로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출산을 결심했다. 편견이 없는 곳에선 그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외국에서 출산할 수는 없었기에 2014년 귀국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부모님이 계신 본가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척 신경 쓰였다. 당시만 해도 청소년 미혼모 지원에 집중된 정책으로 자신 처럼 30대는 나이 제한에 걸려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이 없었던 터라 지인의 추천으로 제주행을 택하게 됐다.

그래도 임신 사실을 본가에 알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진서 씨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걱정했던 아버지는 몸조리를 잘 하라는 격려만 했을 뿐이었고, 되려 개방적인 어머니가 화를 내며 노발대발하셨다. 딸이 걸어갈 힘든 길이 눈에 선해 눈물을 훔치셨다는 것. 

그러나 막상 출산한 손주의 얼굴을 본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 누구보다 손주를 예뻐하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계신다. 매일 영상통화를 걸어 손주의 모습을 보고 아이가 아프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제주까지 내려와 보살펴 준다는 것. 덕분에 진서 씨는 자신의 삶을 조금씩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진서 씨는 “미혼모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과의 단절이에요. 가족이 포용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에요. 배우자가 없어 혼자 모든 일을 해 나가기가 힘들수 밖에요”라며 “저 같이 도움을 못 받는 미혼모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저희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시고 좋아해 주시니 나를 위한 삶,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진서 씨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했다는 짐을 아이에게 안겨주기 싫어 굳세게 살았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나’를 위해 대학원에 등록하는 등 미래를 위한 튼튼한 다리를 놓고 있다.

#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 희망 메시지는 없는가? 

[제주의소리]가 만난 미혼모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 기준’을 개선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르면 저소득 한부모가족 양육비 지원 기준은 중위소득 52% 이하다. 2인 가구 월 소득인 약 155만 원을 넘기면 현금성 지원은 받을 수 없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 등 고정 지출을 제하고 나면 저축은커녕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만 남는 이들에게 155만 원 기준은 결국 가난해져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모순에 부딪힌다. 한달 156만원 이상을 벌면 지원대상에서 배제되는 현실이다. 법정 미혼모로 인정받으려면 중위소득 기준 이하여야 하고, 이는 결국 가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가난의 대물림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사진=여성가족부. ⓒ제주의소리
현재 여성가족부의 정책에 따르면 중위소득 60% 이하가 돼야만 한부모가족증명서를 발급받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금성 지원이 이뤄지는 저소득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은 중위소득 52%인 약 155만 원 이하일 경우만 가능하다. 2020년 최저시급은 8590원이며, 이에 따른 최저 월급은 179만5310원이다. 이처럼 최저월급도 안 되는 일을 해야만 지원 받을 수 있는 현실이다. 사진=여성가족부. ⓒ제주의소리

진서 씨는 “기준 중위소득이 낮아 미혼모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모든 정책은 미혼모 증명서가 기준인데 결국 가난함을 스스로 증명해서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원이 절실한 미혼모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결국 미혼모 울타리에 들어가기 위해 가난해지거나 운이 좋아야만 한다. 취재 과정에서 익명의 한 미혼모는 지원 기준을 가까스로 넘기는 돈으로 먹고살 수 없으니 고용주가 급여 대장을 조정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미선 씨는 “저출산에 따라 애를 많이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세세한 부분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어느 부분에 비용이 많이 드는지 살펴보고 꾸준한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설움을 토해냈다.

더불어 성교육에 대한 문제점도 꼽혔다. 피임 문제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서 씨는 “미혼모 관련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본인 감정이나 쾌락만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숙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되물으며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피임도 제대로 않고 자기 인생을 확률에 맡기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교육은 어떻게 하면 임신을 피할 수 있는지, 임신하게 되면 어떤 몸의 변화나 결과가 나타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라며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올바른 교육을 통해 자신의 몸을 확률에 맡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별·상대적 지원을 통한 기준 밖 위기가정 지원, 담당 사회복지사 업무 숙지 부족에 따른 전담 복지사 배치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구원해줬다는 어느 미혼모의 말처럼 제주에 있는 많은 미혼모는 오늘도 아이를 바라보며 꿋꿋히 나의 삶을 펼쳐가고 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정책지원과 더불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희망찬 메시지는 없어요. 어불성설에 불과합니다. 그냥 잘 이겨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희망에 차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녜요. 흔들릴 때마다 아이를 보고 견디는 중입니다.”(김미선 씨 인터뷰 中)

미선 씨는 “결국 우리 삶은 누구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이왕 시작한 거 멋지게 살았으면 한다”며 “아이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줬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생각보다 아이를 통해 바뀌는 자신을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응원했다.

진서 씨는 “아이가 태어난 이상 엄마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 전까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 나온 아이는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거나 입양을 보내는 등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또 다른 미혼모 당사자들은 익명으로 진행된 [제주의소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기 아빠와 헤어지게 됐다’나, ‘임신 사실을 안 뒤 남자친구로부터 버림 받았다’ 등 책임지지 않는 친부 이야기들과 서러움을 토해냈다.

부모님도 모르는 상황서 갈 곳이 없이 숙박업소를 전전하다 미혼모 보호시설에 입소하기도 했다. 출산을 앞둔 미혼모들은 모아둔 돈도 없는 데다 마땅히 지원받을 곳이 없어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미혼모로 살아가는 가장 큰 어려움은 ‘낙인 찍는 시선’이었다. 

현재 우리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시각은 개인의 일탈 행위로 규정하고, 여기서 발생한 책임도 개인이 부담해야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다행히도 미혼모 문제를 사회적 연대 책임으로 보려는 시각이 생겨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미혼모를 단순히 보호 받아야 할 대상에서 탈피해 다양한 가족 형태의 하나로 수용하려는 개념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다.

미혼모 문제를 사회적 공동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며, 미혼부에게도 그 책임을 의무화한다는 면에서 미혼부의 법적 책임을 더 강화하고 미혼모를 차별하는 법제도의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혼모의 출산과 양육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정책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단계별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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