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주년, 한국전쟁과 제주] (16, 마지막 회) 도내 14곳 충혼묘지의 교훈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메시지

한반도가 한국전쟁 폐허로부터 다시 일어선지 70년이 흘렀습니다. 물론 제주는 한반도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6.25의 직접 피해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같은 환경은 6.25 전란 기간 동안 한국전쟁과 연관된 시설·기관들은 물론, 육지부의 피난민과 전쟁 포로들까지 대거 제주로 집중하게 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치르고 있던 당시의 제주사회는 한국전쟁으로 유사 이래 정치·군사·외교뿐만 아니라 가장 큰 지역사회 격변까지 경험하게 됩니다. [제주의소리]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기 육지에서 제주로 피난이 이뤄지는 과정과, 정부와 군에서 제주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남긴 ‘사람과 장소’들을 재조명해보는 [70주년, 한국전쟁과 제주] 기획을 연재합니다. 전쟁의 실상과 전후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한국전쟁기의 제주역사는 물론 제주인들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서 ‘항구적 평화’의 중요성을 미래세대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글] 

“나는 죽었노라 이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숨지었노라. (중략)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中)

한이 서린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의 봄이 찾아오나 했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마주한 것은 한겨레가 총칼을 서로 겨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열강 패권 다툼의 장이 돼버린 한반도는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동족상잔의 비극 ‘6.25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남북은 서로를 원수로 여기며 38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둘로 갈랐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청춘들은 셀 수 없이 쓰러져 갔고, 그들의 유해는 아직도 전선에 그대로 묻혀 있다. 제주도는 직접적인 전투가 벌어진 공간은 아니었으나 병력을 양성하고 물자를 조달하는 등 한국전쟁 최후방 전략기지로의 역할을 다했다.

 # 최후방 전략기지 제주, 해병3·4기 배출

낙동강 방어선을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한계 상황서 제주인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투혼을 발휘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제주는 훈련소를 설치해 육군을 양성하고, 대부분 도민으로 구성된 해병 3·4기를 배출하는 등 한국전쟁의 중심기지가 됐다.

전장으로 향한 제주인들은 각종 핵심 전투에서 활약을 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해병대는 1950년 9월 서울탈환작전, 1951년 6월 도솔산지구 전투. 1952년 3월 장단·사천강지구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무적 해병’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실제로 제주 출신들이 주축이 된 당시 한국 해병대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 해병대가 성공하지 못한 도솔산 공격작전에서 16일간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1개 연대의 병력으로 2개 사단 병력의 적을 궤멸시켰다. 도솔산을 점령함으로써 전술의 원리원칙을 깨뜨린 전승 기록을 다시 수립했다.

육군으로 입대한 제주인들은 이미 학생 때부터 ‘학도돌격대’를 편성했고, 제주농업중학교에는 육군 제5훈련소 제5교육대가 설치돼 제주사단이라 불리는 제11보병사단 자원을 배출키도 했다. 이들은 ‘강원도 고성 564고지’, ‘호남지구 작전’ 등 다양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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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충혼묘지 14곳에 있는 충혼탑. ▲첫 번째줄 왼쪽부터 Z자 순서대로 △한림읍 △한경면 △표선면 △추자면 △구좌읍 △조천읍 △제주시(노형동) △우도면 △애월읍 △남원읍 △안덕면 △대정읍(위) △성산읍(아래) △서귀포시(상효동) ⓒ제주의소리

이같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거침없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던 구국 영웅들은 현재 제주시, 서귀포시 충혼묘지를 비롯한 각 읍면 충혼묘지에 모셔져 있다. 

도내 충혼묘지는 제주시 8곳, 서귀포시 6곳으로 ▲제주시는 △제주시 충혼묘지(노형동) △애월읍 △우도면 △한림읍 △한경면 △조천읍 △구좌읍 △추자면 ▲서귀포시는 △서귀포시 충혼묘지(상효동) △대정읍 △성산읍 △안덕면 △남원읍 △표선면 등 총 14곳이다.

지난해 11월엔 2021년 하반기 준공, 2022년 상반기 개원을 목표로 제주시 충혼묘지(노형동 소재) 부지를 확장한 제주국립묘지 조성사업이 시작됐다. 완공될 경우 각 읍면동 14곳 충혼묘지에 모셔진 국가유공자들의 유해는 유족이 원할 경우 제주국립묘지로 옮겨갈 수 있게 된다.

 # 호국영령들의 넋, 14곳 충혼묘지서 2022년 제주국립묘지로 

[제주의소리]는 한국전쟁 70주년 특별 기획취재 일환으로 국립묘지가 완공되기 전, 도내 충혼묘지들의 현재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 곳에 묻힌 참전용사 등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현장 취재하고 위문했다. 

제주서 안장기수가 가장 많은 곳은 노형동 소재 제주시 충혼묘지다. 1981년 1만6932㎡ 규모로 노형동 3825번지에 조성됐으며, 제주국립묘지가 들어설 예정이기도 한 곳이다. 올해 10월 기준 1152분의 영령이 모셔져 있고, 묘역은 △순국선열·애국지사·의사자·공무원 △장교 △사병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에는 지난 9월 [제주의소리]가 기획보도한 ‘고태문로, 강승우로, 김문성로, 한규택로...길 위의 제주 호국영웅’ 기사의 주인공 故 고태문 대위가 모셔져 있기도 하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출생인 고태문 대위는 1952년 11월 강원도 고성 351고지에서 마지막까지 고지를 사수하며 중대원을 철수시키고 적을 저지하다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1995년 4월엔 ‘100인의 호국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 전경. 제주국립충혼묘지가 들어서면서 공사가 한창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 전경. 제주국립묘지로 격상돼 현재 이곳은 국립묘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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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충혼묘지는 충혼탑 뒤 언덕에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산소와 묘비가 마련돼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애월읍 충혼묘지는 1950년 4월 1일 수산리 산1-1에 9916㎡ 규모로 조성됐다. 현재 171분의 영령이 모셔져 있으며, 군인은 총 168분으로 장교 2명, 부사관 73명, 사병 93명이 잠들어 있다. 

묘역 왼편에는 이들의 숭고한 뜻을 간직하기 위한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뒤편에는 ‘죽어 썩어지면 한줌 흙이어늘 차라리 겨레위한 큰 뜻에 머리털 다 뽑아 날리시고 그림자로 돌아온 지금 여기 말없이 수산봉에 꺼지지 않는 등불로 영원을 밝혔도다’라는 글귀가 적혔다.

충혼탑 뒤편으로 뻗어있는 묘역 묘비 뒤편에는 전장 곳곳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제주인들의 사연도 기록됐다. 

“공은 서기 1930년 6월 6일 애월읍 하가리에서 출생. 부모님을 봉양하시다 6.25 전란이 발발하자 나라의 부름으로 군에 입대하여 서기 1951년 6월 5일 강원도 인제지구전투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산화하시니 그 비통함을 금할 길 없어 고독한 조카가 비를 세워 숙부님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심지어는 기나긴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휴전을 엿새 남겨둔 1953년 7월 21일 험준한 중동부 산악전선 강원도 양구전투서 산화, 사무치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하게 된 용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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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충혼묘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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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상효동 충혼묘지. ⓒ제주의소리

 # 충혼비에 새겨진 '조국의 주춧돌로 산화한 청춘들' 

제주시 구좌읍 충혼묘지는 1971년 세화리 1085-1번지에 1만3189㎡ 규모로 조성됐다. 현재 243분의 영령이 모셔져 있으며, 군인은 약 230여 명이 안장됐다.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충혼비가 세워져 있으며 ‘1958년 상도리 청소년 친목회원일동’이 세운 기록도 남아있다.

구좌읍 충혼묘지는 제주 전체 읍면지역서 가장 많은 영령이 모셔졌다. 묘비에도 1953년 1월 19일 고성지구 전사, 1950년 7월 28일 산청지구 전사, 1953년 6월 30일 연천지구 전사, 1953년 4월 20일 묵호지구 전사, 1950년 10월 1일 인천상륙작전 전사 등 악전고투의 기록이 새겨졌다.

상효동 소재의 서귀포시 충혼묘지에는 1999년 3만2525㎡ 규모로 총 483분의 영령을 모셨다. 규모가 큰 덕분에 △애국지사·장교 △경찰 △사병 △공무원 등 12개 묘역으로 나눠 구성됐으며, 안장은 총 936기까지 가능한 규모다.

충혼탑 옆으로는 ‘충혼합동비’를 포함한 충혼비들이 놓여 있다. 한 충혼비의 경우 ‘단기 4286년(1953년) 4월 5일 서귀면민대표 면장허’, ‘단기 4286년 4월1일 건립, 중문면출신’ 등 건립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기록과 호국영령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묘비 뒤를 살펴보면 ‘1930년 6월 20일 서귀포시 토평동 출생, 1951년 6월 8일 강원도 향로봉 지구에서 전사’, ‘1930년 7월 2일 서귀포시 신효동 출생, 1951년 6월 8일 도솔산지구에서 전사’ 등 20대 초반 꽃다운 청춘들이 쓰러져간 가슴 아픈 기록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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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조성된 서귀포시 대정읍 충혼묘지는 가장 많은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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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안덕면 충혼묘지. ⓒ제주의소리

서귀포지역 충혼묘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대정읍 충혼묘지는 하모리 411-2번지에 1951년 4291㎡ 규모로 마련됐다. 현재 149명의 혼이 잠들어 있으며, 개인 묘역을 제외한 가장 많은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충혼비 △순국전우기념비 △전몰장병추도비 △순국장병충혼비 △전몰장병기념비 △순국장병기념비 △애국동지추도비 등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곳 충혼비 상단에는 태극기나 해병을 나타내는 표식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서귀포시 안덕면 충혼묘지는 1999년 3월, 동광리 381번지 일대 약 1만400㎡ 규모로 조성돼 119분의 영령이 모셔져 있다. 안덕충혼묘지공원화조성비 아래로는 ‘위국헌신’, 옆으로는 그들의 넋을 달래는 충혼비들이 세워졌다.

이곳에선 1930년에 태어나 1950년 8월 28일, 만 스무 살이 되던 해 전장으로 뛰어들어 이듬해 7월 강원도 월산령 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청춘의 혼도 잠들어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충혼묘지는 1964년 고성리 1031번지 일대 5134㎡ 규모로 조성됐으며, 현재 191분의 혼이 모셔졌다. 1933년 태어나 1950년 18살의 나이로 학도병에 입대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장단전투서 실종, 전사처리 된 사연도 있다.

입구 우측 충혼비엔 ‘그대 삶과 피와 뼈가루 마저 조국의 주춧돌로 바치고 낯익은 마을 연춘동산에 돌아오다 그대의 핏물 거름하여 호국의 꽃나음 강산에 그 충혼 천추에 남으리 어화 어화 기리 구천에 진하시라’는 위로의 문구도 남아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충혼묘지는 2008년 기존 충혼묘지를 이설해 성읍리 3146번지 일대 1만6995㎡ 크기로 만들어져 163분의 영령이 모셔졌다. 이곳 역시 다양한 계급으로 치열한 전장서 산화한 유공자들의 혼이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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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성산읍 충혼묘지에는 1933년 5월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전장에 나서 1952년 10월 서부지구 장단전투서 실종, 전사처리 된 구국의 혼을 불사른 그의 넋을 기리는 묘비가 존재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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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표선면 충혼묘지. ⓒ제주의소리

이밖에도 다양한 충혼묘지가 남아있는 가운데 제주는 오는 2022년 ‘제주국립묘지’ 개원을 앞두고 있다. 현 제주시 충혼묘지를 포함해 27만4033㎡ 면적에 봉안묘 5000기, 봉안당 5000기 등 안장 능력이 갖춰질 예정이다. 

 # 제주국립묘지 봉안묘 5000기, 봉안당 5000기 규모

제주국립묘지가 완공될 경우 서울·대전 현충원과 호국원, 민주묘지 등 안장대상자 유골이나 시신을 제주로 모셔올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제주에는 국립묘지가 없어 국가유공자들을 충혼묘지나 공설·개인묘지에 안장해 왔다.

특히 애국지사, 순국선열 등 일부 호국영령들의 경우엔 개인 묘지에 모셔졌으나 후손이 끊기거나 후손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묘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묘지가 완공되면 이곳에 안장돼 국가가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제주국립묘지에 대해 “제주국립묘지가 완공되면 제주의 국가유공자를 편히 모실 수 있게 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 분들의 공헌과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제주국립묘지가 신설됨에 따라 기존 도내 14곳 충혼묘지 공간을 어떻게 활용·보존할 것인지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새롭게 조성되는 국립묘지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기존 충혼묘지 부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해나갈 것인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관계자는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제주국립묘지가 조성되고 있음에 따라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생각 중인 유족분들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기존부지 활용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며 “각 지역 충혼묘지에 남아계실 분들을 고려해 여유 공간에 대한 활용 등 구체적 계획을 세울 방침이다”라고 답변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제주 영웅들’의 참전 실화를 꾸준히 집필한 정수현 작가는 “국립묘지가 생기면서 각 지역 충혼묘지에 잠든 용사들이 이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역 충혼묘지가 잊힐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며 “지역 충혼묘지에는 참전용사들의 충혼비도 남아있어 의미가 깊다. 앞으로의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 한국전쟁 역사, 평화와 통일의 단단한 주추 돼야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제주의소리]는 올 한해 연중기획으로 한국전쟁과 관련된 제주도내 ‘인물과 장소’를 집중 재조명해왔다. 한국전쟁의 역사가 서린 공간과 장소에 남아있는 흔적부터 시작해 참전용사와의 만남, 이를 기록하는 작가, 신문 기록, 전쟁 문학 작품 등 전쟁의 참혹한 실상과 전후 변화상 등을 꾸준히 살펴봤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과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에 따른 숭고한 뜻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이 땅에 자유롭게 발 딛고 서 있는 우리의 몫이다. 

세월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부터 70년이 흘렀다. 1945년 해방 후로부터는 75년이 흘렀다. 수많은 영령들은 치열했던 단장(斷腸)의 고개 너머 쓸쓸히 잠들어 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의 땅인 한반도 역시 아픔을 간직한 그대로다. 

이제는 과거사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는 지혜로운 사고를 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이 일관되게 지향할 일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통일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직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 각각 두 개의 적대적 정부를 세운 과오는 뼈아프게 비판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결과는 동족끼리의 무자비한 살육과 폐허가 된 한반도 뿐이었다. 

남녘 제주 곳곳에 남은 전적지의 역사와 충혼묘지에 참든 호국영령들은 이 땅에서 다시는 이같은 무력과 폭압의 방법으로 통일을 꿈꾸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남북 동족간 날섰던 증오심과 적대감은 서서히 여과되고 있는 만큼, 평화와 상생, 화해와 협력의 정신이 후속들에게 오롯이 전해지도록 70주년을 맞은 한국전쟁의 역사를 평화와 통일의 단단한 주추로 놓아야 한다. 그것이 수많은 전적지와 충혼묘지에 잠든 호국영령들의 뜻이다.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고 항구적 평화가 깃든 대한민국이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서로를 모략하고 죽이는 끔찍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故 고우석 용사의 말이 무겁게 와 닿는다. / [70주년, 한국전쟁과 제주] 2020년 연중기획(1~16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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