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제주의 공립 예술공간을 말하다] ① 예술인이 ‘을’ 되는 공연장

제주 예술계에서 ‘공립 예술 공간’의 위상은 변함없이 높다. 하지만 진정 예술 현장과 도민 관객을 위한 공간인지, 선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앞선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제주지역 공립 예술 공간의 운영 상황과 문제점, 개선안을 제주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예술의전당 중심으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19년 한 해 동안 제주문예회관 공연장을 찾은 누적 인원은 9만1790명, 전시실 방문자는 8만604명이다. 제주아트센터는 6만9380명, 서귀포예술의전당은 6만4368명을 기록했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통해 도민들의 문화 향유를 충족시키는 예술 공간이지만, 예술 창작자들에게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

존재 이유를 고려하면 창작자와 관객이 우선돼야 함에도 조명·음향 등 전문 기술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사실상 ‘갑’인 고질적인 문제. 여기에 공간 기획 공연이 특정 장르에 치중돼 있어 다른 예술의 소외감과 관객 불만을 해소시키지 못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 질문 하나 던지기 어려워...

예술 공간마다 조명, 음향, 기계 등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업무는 전담 직원을 두고 있다. 그들의 고유한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지만 예술인들에게 고압적이거나 불친절하다는 논란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개선됐다는 의견도 있지만, 예술계 현장에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경험을 느끼고 있다.

제주에서 창작자 겸 기획자로도 활동하는 A씨는 “문예회관에서 직원과 예술인 간의 갈등은 1~2년이 아닌 10년 넘게 이어진 문제다. 무대 준비에 집중하다보면 일정에서 다소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현장 사정을 조금만 이해해주고 조율하면 될 법도 한데, 딱 정해진 것 이외에는 냉정하게 돌아서는 습성이 유독 강하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쉽게 다가가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2020년 연말 문예회관에서 대관 공연을 가진 음악인 B씨는 “넉넉한 형편으로 공연장 빌리는 예술인이 제주에 얼마나 되겠나. 그래서 이런 저런 부분을 따졌을 때 조명·음향까지 잘 챙기지 못해 문예회관 직원들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조작이라면 부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렇고 ‘우리는 못한다’면서 칼 같이 선을 긋는다. 그 분들도 신경 써야 할 공연이 한 두 개가 아니니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예회관과 관리자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쉬움도 든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문예회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중년의 예술인 C씨 역시 “기술 부문 직원들의 역할이 단순히 기계를 지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세금으로 보수를 받고, 예술가들이 창작을 펼치는 공간에서 일을 한다. 그렇다면 최대한 좋은 창작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하지 않나. 제주에 있는 예술 단체들이 무대를 올릴 때 좋은 기술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거기 극장가면 감독님이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더라’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질문 하나 던지기가 껄끄럽다”고 피력했다.

이 문제에 대해 제주문예회관을 꼽는 경우가 많았지만 제주아트센터와 서귀포예술의전당 역시 “사무적인 태도에 직원들과 소통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일부 나왔다. 한 쪽 의견에 일방적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일이지만, 녹록치 않은 지역 예술 여건과 다른 행정 부서와 달리 ‘공립 예술 공간’이라는 성격은 일선 직원들이 충분히 공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무대 운영 관련 제주도문화예술진흥원 관계자는 “지적에 대해 일부 공감한다. 이전과 비교하면 최근들어 계속 나아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 영향으로 공연이 몰리다 보니 나름 어려움도 가지고 있다. 정년 등으로 1~2년 안에 인력 교체가 이뤄지면 한층 더 개선될 것”이라고 답했다. 

# 음악 편중 기획 공연...다양성 배려해야

공립 예술 공간의 공연장은 대관과 자체 기획으로 운영한다. 자체 기획을 보면 각자 추구하는 방향성이 어느 정도 읽혀지는데, 음악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20년 기록만 남아있는 서귀포예술의전당을 포함해 제주아트센터, 제주문예회관까지 세 공간의 홈페이지에서 2019년~2020년 기획 공연 현황을 확인했다. 

제주아트센터는 2019년 기획 공연을 14건 진행했다. 음악이 9건으로 가장 많았고 무용 3건, 연극 1건, 뮤지컬 1건이다. 지난해는 전체 10건 가운데 음악이 6건을 차지했다. 그 뒤로는 오페라 2건, 연극 2건이 뒤를 이었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은 2020년 기획 공연 14건을 진행했다. 이 중 음악이 10건으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고, 그 다음은 오페라 2건, 뮤지컬 1건, 영화 1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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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아트센터 조감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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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예술의전당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문예회관은 2019년 기획 공연을 29건 진행했다. 이 가운데 영화 상영 16건을 제외하면 음악 7건, 연극 3건, 무용 2건, 오페라 1건 순으로 역시 음악이 가장 많았다. 2020년은 9건인데 음악 1건, 연극 2건, 뮤지컬 2건, 영화 2건, 무용 2건으로 고르게 분산됐다.

대관 공연도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음악 비중이 결코 낮지 않은 모습을 감안하면, 극-무용 등 기타 장르 예술인이나 그런 예술을 보고 싶은 관객들 모두에게 아쉬움을 가져다준다.

연극인 D씨는 “제주 극단이나 배우들에게 아트센터를 비롯해 문예회관, 서귀포예술의전당은 꽤 멀게 느껴진다. 큰 무대를 밟는 경험이 쌓여야 예술 역량도 함께 축적될 텐데, 제주 연극·뮤지컬에서는 좋은 작품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인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이 같은 볼멘소리에도 공립 예술 공간들의 역할은 감안해야 한다. 세 곳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등이 진행하는 중앙 공모사업으로 제주에서 쉽게 만나지 못할 공연을 제주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아트센터의 국립합창단 공연과 창극 ‘사방지’, 제주문예회관의 음악극 ‘카르멘’, 서귀포예술의전당의 국립오페라단 콘서트 오페라 ‘사랑의 묘약’ 등을 꼽을 수 있다.

제주에서 이런 작품들을 초청 공연할 수 있는 주체는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다양성 측면에서 제주 공립 예술 공간들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각 공간마다 추구하는 기획 방향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역 예술이 골고루 발전하기 위해 힘을 보태달라는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다. 공연 단체에 큰 도움을 주는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에서 세 곳 모두 빠진 건 행정 중심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제주 관객들의 선호 성향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11년 고가연 씨는 석사 학위 논문 ‘제주 문예회관의 역할제고 방안 연구’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제주도민 240명에게 선호하는 공연 장르를 물었는데 1위가 음악으로 48.3%였다. 2위는 뮤지컬이 29.8%였다. 

그런데 지난해 서귀포예술의전당이 공연장 만족도 온라인 조사(109명 참여)에서는 향후 관람하고 싶은 공연 장르로 뮤지컬이 61%를 차지했다. 대중음악 11%, 오페라 10%이며 그 뒤로는 양악 6%, 연극 5%, 무용 4%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두 조사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제주에서 거의 만나지 못하는 종합예술, 그중에서도 뮤지컬에 대한 요구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 오죽하면 지난해 9월 도청 신문고에 “문예회관, 아트센터, 설문대 등 제주도 주요 공연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을 보면 뮤지컬, 연극 비중은 현저히 낮다. 뮤지컬과 연극을 좋아하는 관람객들은 어쩔 수 없이 타 지역에 가서 봐야한다. 벤허, 시라노, 스위니토드, 헤드윅, 알앤제이(R&J) 등 제주에서도 이런 뮤지컬과 연극을 접하고 싶다”는 민원이 올라올 정도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주문예회관이 올해 처음 시작한 ‘제주 뮤지컬 페스티벌’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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