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전문가 칼럼](1) 제주 '4.3 해결'은 우리의 자존심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라 우리의 일상과 삶이 위드(with)코로나와 포스트(post)코로나 시대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2021년 새해를 맞아 코로나19 펜데믹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각 분야 석학과 전문가 목소리를 싣는 신년기획 전문가 칼럼을 마련했습니다. / 편집자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지구촌을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그깟 바이러스,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확진자와 함께 사망자 숫자를 급증시켰다. 결코 무시할 존재가 아니었다. 도처에서 희생자가 늘어나자 방역대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가로 부상되었다. 상대적으로 아메리카나 유럽 국가들의 희생자가 폭증하는 바람에 더욱 비교되었다. 2020년의 지구촌은 코로나19와 함께 씨름해야 했던 우울한 한해였다. 연말에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완전 극복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때문에 새해도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다. 이제 코로나19와 동거하는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설혹 코로나 바이러스가 퇴치되었다 해도 우리는 이제 예전과 다른 사고방식을 내세워야 하게 되었다. 역병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는 코로나가 준 교훈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는 코로나 난국이다. 그동안 인간은 지구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가. 자연 파괴, 도시 개발, 환경오염 등 사람 탈을 쓰고 지구를 얼마나 학대했던가. 전쟁은 최악의 인재(人災)이다. 지구촌에서 언제 전쟁의 포화가 멈춘 적 있었던가. 오늘날도 지구촌 도처에서는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난민 문제가 이 점을 증거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아 문제로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은 많다. 빈부 격차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통계에 의하면, 세계 주요국가 상위그룹 10%는 전체 소득의 40%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8년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약49%를 차지할 정도다. 서울의 경우, 상위 10%의 종합소득은 평균 2억2,600만 원으로 하위 10%의 평균 116만 원 수준의 194배에 이른다. 엄청난 불균형의 소득 수준이다. 하기야 세계의 슈퍼 부자 8명의 재산은 세계 인구의 절반인 36억 명과 같은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세계의 억만장자 2천여 명의 부(富)가 인구 46억 명보다 많다. 불평등 사회가 문제이다. 우리네 어렸을 때, 마을의 살림살이는 그만그만했다. 그래서 평화로웠다. 하지만 자본이 들어오고 빈부격차가 생기고, 계급이 생기면서, 갈등은 늘었다. 빈부차이는 사회 갈등의 심각한 원인이다.

모순의 시대에 예술의 역할과 기능은 중요하다. 예술은 재미를 주지만 치유의 기능도 있다. 물론 예술은 상상력이나 감동을 안겨 주기도 한다. 조선말기에 채색 길상화(吉祥畵)가 유행했다.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화(民畵)라고 이상하게 명명한 그 분야를 일컫는다. 조선왕조가 기울어지고 식민지로 바뀔 때 유행했던 화려한 색채 그림. 그 그림의 내용은 대개 부귀영화 무병장수 등을 기원하는 상징 코드를 담았다. 한마디로 길상 즉 행복을 주제로 했다. 암흑의 과도기에 어째서 화려한 채색 그림이 유행했을까. 그만큼 살기 어려웠다는 증거일 것이다. 현실사회의 고통을 역설적이게도 화려한 그림으로 대체했을 것이다. 21세기의 역병과 모순의 시대는 새로운 현대 길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술은 심적 안정감을 자아내지만 더 적극적으로 치유의 기능이 있다. 역병시대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은 <코로나19- 재난과 치유>라는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을 주제로 한 미술작품은 의외로 찾기 어려웠다. 미술가들은 왜 재난을 그리지 않았을까. 온갖 재난을 겪으면서 한 세상 살기마련인 것을, 어째서 미술가들은 현실을 외면했을까. 이 점 코로나19가 짚어준 우리 미술계의 한계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은 음풍농월의 왕조시대와 차별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문제를 직시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한국 미술사에서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미술에서 희비애락을 여실하게 표현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평면이나 입체작품에서 깔깔대고 폭소를 터트리는 모습이거나 아주 슬픈 표정으로 통곡하는 모습, 정말 만나기 어렵다. 가까운 이웃나라만 가도 웃거나 울고 있는 모습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미술에서는 감정 표현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의 부재, 씁쓸하게 한다. 정말 한국미술은 무표정의 미술인가. 무엇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감정 표현을 억제하게 했을까. 6.25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 문제의 쟁투이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의사 표명을 확실히 하여 희생된 경우가 많았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태극기 혹은 인민기를 들어 희생되었다면, 아예 침묵 혹은 외면만이 살길이었을 것이다. 남북 이데올로기 쟁투는 20세기 중반 이후 즉 분단시대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왕조시대인 19세기 이전의 미술은 어째서 희비 표현을 무시했을까. 명분 위주의 유교사회라 해도 이는 ‘버려야 할 유산’이지 않을까.
  
분열과 갈등의 시대이다. 역설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죄 많은 인간들로 하여금 얼굴을 가리고, 그것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근신하라고 일러주었다. 외출의 필수 지참물인 마스크, 바로 마스크는 부끄러운 얼굴을 가리게 하고, 입조심하라고 경고한 것과 다름없다. 복면시대의 새로운 풍경은 인간의 위상을 반성하게 한다. 코로나19는 수많은 사망자를 보게 하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을 새삼스럽게 재인식하게 한다. 생명, 그 어느 것보다도 위대한 개념이다. 생명의 상징으로 탯줄이 있다. 산모와 신생아를 연결시켜주는 탯줄. 탯줄은 생명의 상징이다. 탯줄은 코일처럼 생겼지만 내부를 절단하면 세 개의 구멍이 있다. 여기서 3은 생명의 상징이다. 천지인, 혹은 불교의 불법승이나 기독교의 삼위일체 등 숫자 3의 의미는 중요하다. 그야말로 삼세번이다. 김영균 박사의 저서 [탯줄 코드]에 의하면, 3의 상징성을 조형적으로 가장 잘 들어낸 곳은 제주의 삼성혈이라고 했다. 고,부,양 3성씨의 설화를 가지고 있는 곳. 삼성혈은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생명의 상징 공간이다. 생명성의 상징인 제주는 이런 면에서도 소중하다.
  
나는 삼성혈이 있는 제주에 가기를 좋아한다. 고향을 떠나 유학하기 위해 서울이나 뉴욕 같은 객지를 제외하면, 또 예술감독 같은 업무로 인연을 맺은 광주, 경주, 창원 등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제주를 제일 많이 방문한 것 같다. 무엇보다 제주는 이국적 풍광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내가 눈길을 두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제주에는 설화, 민속, 역사, 예술 등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생각하게 하는 재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분야는 다 사람의 일이다. 제주에 친지가 많은 것도 나의 제주 사랑의 한 결과이리라. 제주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런 제주에 아픔이 있었다. 4.3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평화의 섬 제주에 어찌하여 이런 비극을 초래했는가. 정말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4.3 해결의 완성은 우리의 자존심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미술(문화)의 자존심 살리기. 나는 이런 표현을 자주한다. 오늘날 한국 문화의 주류는 이른바 구미 일색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메리카 문화가 상층부를 이루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 분야를 들여다보면 이 나라의 정체성을 의심할 정도로 구미 선진국 일색이다. 하기야 국내 미술이론가나 큐레이터들의 전공은 대부분 서양 현대미술사다. 미술계에서 한국미술사 전공의 이론가나 전시기획자를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언제까지 서구 추종주의에서 맴돌고 있어야 할까. 그래서 우리 미술의 자존심 살리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굳이 미술 분야만도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분단국가로 남북 갈등은 상존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쟁의 포화를 멈추고 경제 대국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로서, 원조를 받았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 밖에 없다. 국제무대에서 삼성 스마트 폰을 비롯해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 손흥민 등 ‘코리아’의 활약은 결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5천년 역사의 저력, 그것도 문화적 민족의식 등이 내재된 성과일 것이다. 위기가 기회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시적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뚝 설 수 있다. 한류의 힘은 우리 민족의 문화자원이다. 진정, 우리는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