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영신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도청앞 천막촌 사람들)

‘숙원’이라는 미망(迷妄)

제주 제2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명분 중의 하나는 제2공항 건설이 ‘제주도민의 숙원’이라는 것이다. 제주도청뿐만 아니라 국토부도 즐겨 사용하는 논리이다. 일반적으로 숙원(宿願)이라고 하면 오래된 소원을 말한다. 그런데 제2공항 건설이 언제부터 어느 정도로 강한 숙원이었는지,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은 숙원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나 지역 주민들이 ‘숙원사업’에 목을 매고, 이 언어를 즐겨 사용한 이유는 명확하다. 민주화 이후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면서 각 지방정부는 국책사업의 유치경쟁에 경쟁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는데, 대형 개발프로젝트의 유치는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 수장들의 정치적 명운을 좌우하는 잣대가 되었다. 이때, 대형 개발프로젝트가 지역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라는 주장은 좋은 명분이 된다. 민주화와 지방자치의 열린 정치적 공간 속에서 지역사회의 요구가 ‘국책사업’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커졌고, 다른 한편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도 지역의 숙원사업에 재정을 투여하는 것이 추진 과정에서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다양한 요구들 가운데 특정 과제가 ‘숙원사업’이 되는 것은 정치적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선, ‘숙원사업’의 공간적 범위와 주체가 마을, 시(군), 도 가운데 어디를 의미하는지는 자연스럽게 결정되지 않는다. 노인들의 의료시설을 원하는 마을과 거대한 관광공항을 원하는 도의 요구는 하나로 수렴되기 어렵고, 마을 분교를 유지해서 젊은 세대의 유입을 바라는 마을과 4차선 관광도로의 건설을 추진하는 시의 요구도 자연스럽게 수렴되지는 않는다. 또한 숙원이라고 할만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과거와 사회경제적 조건이 변함에 따라 새로운 요구가 제기되거나 개인들의 이해관계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제2공항 건설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말에 건설된 비행장을 1958년에 제주비행장으로 개편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제주공항을 확장하고 현대화하라는 요구는 늘 존재해 왔다. 초기에 그것은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는 몇몇 특권층의 요구였고, 항공이 제주도민의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개장 이후에도 제주공항은 세 차례에 걸쳐 활주로를 확장했고, 몇 차례에 걸친 여객청사의 신축과 증축을 거쳤다. 특히 1980년대에 내국인 관광 활성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자 1990년대부터 제주도정과 관광업계를 중심으로 공항인프라 확장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항인프라 확충 요구가 곧 바로 제2공항 건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5년 11월에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가 나오기 전까지 제주도와 정부에서 내놓은 보고서들의 대안은 또 하나의 공항을 짓는 ‘제2공항 건설’이 아니라, 현 공항을 폐쇄하고 항공 기능을 하나의 공항으로 통합하는 ‘신공항 건설’ 방안이었다. 그러니까 제주의 개발주의자들과 부동산 투기자들이 금과옥조로 들먹이는 “제2공항은 제주도민의 숙원사업”이라는 주장은 햇수로 6년차에 불과한 새로운 주장이며, 정치적 언설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이 주장은 ‘제주도민의 결정’이라는 정치적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도지사의 정치적 전횡의 결과물일 따름이다.

도민 여론의 추이

그렇다면 이 문제를 결정할 일차적 주체인 제주도민의 여론은 어떠한가? 제2공항 문제에 대한 도민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면, 그 결론은 명확하다. 초기에 대형 국책사업의 유치가 제주 경제를 회복시키고 지역균형개발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제2공항 찬성으로 기울었던 여론은 추진 과정의 비민주성,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 주민 생존권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제2공항 반대 쪽으로 기울었다. 아래의 표는 2015년 말에 제주도정이 사전타당성 보고서의 결론대로 제2공항 건설을 공식화한 시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으로 검색가능한 여론조사의 결과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각각의 여론조사는 제2공항에 대한 찬반 입장을 직접적으로 묻는 것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질문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질문들에는 현 수준 이상의 공항인프라 확충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부터, 정석비행장을 활용하는 방안, 현 제주공항의 시스템 개선, 보조활주로의 확장 방안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제2공항 건설에 대한 다양한 대안적 입장들도 제2공항 반대 여론에 포함시켰다. 반면, 새로운 부지를 택해서 제2공항을 건설하자는 입장은 제2공항 찬성 여론에 포함시켰다.

ⓒ정영신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정영신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도민여론의 추세는 명확하다. 제2공항안이 발표되었던 2015년 말과 2016년 초 이후로 반대의견은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2019년을 기점으로 반대의견이 더 많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제주의 공항인프라 확충이나 관광사업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제주도민들은 과거와 달리 과잉관광의 문제나 환경수용력 등 환경이나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점차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직접 펴낸 보고서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민의 공론을 수렴하여 제주도가 2016년 2월에 발표한 <제주미래비전 – 청정과 공존사회를 향한 제주의 전략>은 “제주는 섬관광지로 관광객 수 증가에 의존하는 양적 성장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경우 관광수용력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는 제주의 양적 성장과 자원 중심 개발, 가격 중심의 경쟁구도, 관광수용력 한계로 인한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는 질적 성장과 가치창조 중심의 관광개발 방식으로의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요컨대, 관광객의 양적 증가에 대응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사회적 가치도 반영하고 있지 않은 제2공항 건설 계획은 제주도의 비전과 정책 목표와도 상충되며, 비전과 가치가 부재한 계획이다.

둘째, 제주의 공항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 중에서 최종 대안을 제2공항 건설로 결정한 과정 자체가 심각한 거짓과 부실에 기반한 것이어서, 제주도민의 분노의 원천이 되었다. 첫 번째로 현 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은 바다를 대규모로 매립하는 방식 하나만 제시되었고(그래서 공사비와 환경 문제 때문에 대안에서 탈락했다), 더 가까이에 활주로를 건설하는 방안이나 보조활주로를 활용하는 방안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외국의 전문기관(ADPI)이 보조활주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공항수요량을 처리할 수 있다는 하도급 용역 보고서를 제시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은폐했다가 나중에 마지못해 공개했다. 두 번째의 신공항 건설방안은 제대로 된 검토도 거치지 않고 2015년 9월 원희룡 도지사의 요청에 의해 정치적으로 배제되었다. 그랬던 원 지사는 이후에 시민들이 공항인프라 확충 대안과 입지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도민결정권을 주장하자, 이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며 일반 시민들이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제2공항 건설방안은 현 공항의 최적 개선방안과 상관관계에 있다. 현 공항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그것으로 부족한 용량만큼의 규모로 건설하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 전문기관은 현 공항 개선으로 충분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고, 그것이 이 보고서가 은폐된 진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들은 시민활동가들과 지역 언론에 의해 차례대로 폭로되었는데, 양파 껍질처럼 끊임없이 드러나는 거짓과 부실은 반대 여론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다. 즉, 반대여론의 상승은 누군가의 선동이나 조종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실과 거짓으로 점철된 제2공항 건설안 자체가 자멸해 온 과정일 따름이다.

정영신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정영신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카톨릭대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제2공항 추진 과정 자체는 비민주적인 불통의 연속이었다. 국토부와 제주도정은 주민들의 반대의견은 묵살하고 제2공항 건설을 전제로 한 민원만을 듣겠다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따라서 제2공항에 관한 공론조사는 제주도의 파괴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반세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가치들, 제주의 지속가능성과 정의로운 미래라는 가치를 확보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제주 도민들은 ‘숙원’이라는 이름의 낡은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미래를 결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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