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 증․감액 411억 중 30% ‘배정유보’…도의회 “앞에선 동의해놓고 뒤로는 꼼수” 맹비난

[기사보강=1월5일 15시50분] 새해 벽두부터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사이에 전운(戰運)이 감돌고 있다. 지난 연말 도의회에서 의결된 2021년도 예산안 중 일부 신규 편성 및 증액사업에 대한 예산 배정 유보를 알리면서다.

도의회는 2021년도 예산안 확정을 위한 표결에 앞서 원희룡 지사가 계수조정 내역에 대해 “동의” 해놓고, 막상 예산안이 통과되자 뒤통수를 친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등에 따르면 도는 1월4일자로 ‘2021년 일반회계 배정 유보사업 알림’ 공문을 시행했다. 도본청은 물론 의회와 양 행정시, 직속기관, 사업소 등 전 부서가 해당됐다.

제주도는 확정된 예산 중에 집행부의 재정원칙에 불부합한 사업에 대해 배정을 유보해 별도 관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배정유보 1순위는 의회에서 신규 편성된 사업이다. e-호조 자체에 입력이 안된 사업들이다. 최초 입력된 e-호조 요구액을 초과해 증액된 경우도 배정이 유보된다. ‘과다 증액’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배정을 유보한 예산은 126억7499만원 규모다. 이는 전체 증․감액 411억2306만원의 30.8%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지난달 15일 열린 제389회 제2차 정례회에서 도의회는 5조8298억원 규모로 편성된 2021년도 제주도 세입․세출예산안에 대해 411억여원을 감액한 후 주민불편해소 사업 등으로 399억8900만원을 증액하고, 나머지는 예비비로 돌리는 것으로 조정했다.

표결에 앞서 원희룡 지사는 도의회의 계수조정에 ‘동의’ 의견을 냈고, 예산안은 그대로 수정 의결됐다.

당시 원 지사는 예산안 의결에 따른 인사말을 통해 예산안을 심의의결해준 의회에 감사를 전한 뒤 “민생경제를 회복시키는 소중한 재원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의 이 같은 ‘예산 배정유보’ 방침소식을 접한 도의회는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의회 길들이기’, ‘예산 심의권 무력화 시도’ 등 격한 표현을 쏟아내며 집행부를 성토했다.

예전에도 제주도가 사업비를 배정하지 않아 예산이 집행되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긴 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예산안 처리 때 ‘부동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 사업들로 한정됐다.

A의원은 “예산안 처리에 앞서 의회 조정분에 대해 동의 여부를 물었고, 도지사가 동의한다고 해서 예산안이 통과된 것”이라며 “예산안이 통과되자 신규 편성 및 증액사업에 대해 예산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양두구육의 모습”이라고 맹비난했다.

B의원도 “의회에서 심의·의결된 예산에 대해 집행부가 배정을 유보하는 것은 집행부 예산편성-의회 심의의결이라는 메커니즘을 깨는 것”이라며 “이는 누가 보더라도 의회를, 의원들을 길들이기 위한 꼼수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 예산부서 관계자는 “예산 배정을 유보한 것이 곧 예산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신규 편성 또는 증액 규모가 큰 사업들의 경우 사업적절성을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유보한 것”이라며 “긴급하게 집행할 사유가 발생할 경우 예산부서와 사전협의를 통해 수시 배정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앞서 제주도 예산부서 C팀장은 지난 연말 직원들에게 보낸 쪽지를 통해 “정상절차를 거쳐 편성된 예산에 대해 과도한 증․감액이 이뤄질 경우 사업의 시너지는 고사하고, 주먹구구식 사업추진이 악순환될 수 밖에 없다”고 의회에서의 과도한 증․감액을 꼬집은 바 있다.

그러면서 “혁신의정의 출발은 국회와 같이 투명하게 예산안 증․감액과 수정이유, 의원명을 공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떤가”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집행부 내부를 향해서도 “일부 공직자의 원칙에 벗어난 증액 요구는 지출구조조정 시 의회의 의결권 침해로 확대 해석돼 논란거리를 양산하게 된다”며 “한정된 재원범위 내에서 편성하는 예산이지만 정말 필요한 예산이라면 집행기관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반영하는 시스템이야말로 재정운영의 건전성과 책임성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쏜소리를 건넸다.

한편 제주도의회가 제주도의 새해예산안을 부결시킨 경우는 2010년, 2011년, 2015년 세 차례다. 집행부가 과도한 증액을 문제 삼아 ‘부동의’ 한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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