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수필의 향연 ‘2020 vol. 16’
제주수필문학회가 코로나19로 ‘집콕’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난 추운 겨울, 안방을 훈훈하게 만들 제주인의 이야기가 담긴 수필 문학 모음집 ‘다시 읽고 싶은 수필’을 펴냈다.
새 책의 주제는 ‘다시 읽고 싶은 수필’로 제주수필문학회원들이 발표한 43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작가당 한 작품을 뽑아 다시 읽고 싶은 수필로 정해 문학집으로 모아낸 것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았고, 담백한 삶의 성찰을 이어갔다. 살고 있는 동네의 역사를 풀어헤치며 제주4.3의 아픔을 써 내리거나 ‘궤’를 통해 친정어머니를 향한 가슴 저린 감정을 내보이기도 했다.
등단 이후 수많은 내공을 쌓아온 작가들의 작품은 언제든 술술 읽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묻어난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며칠 후, 어머니의 머리말에 놓였던 궤 속엔 생전에 당신이 썼던 흰색 모시 저고리며, 노란색 베치마, 광목천을 하얗게 햇빛에 바래어 만들어 놓은 버선과 그걸 만들 때 썼던, 누런색 기름종이로 된 버선 본 등이 들어 있었다. 그 유년의 끝자락 언저리쯤에서 뒤척이다 듣는 허밍으로 나지막이 부르던 어머니의 고운 음색이 가슴 속 깊이 잠들어 있다가 팔랑거리며 감정을 싸하니 뒤흔들어 놓는다. 딸한테만 4대째 대물림되는 물건이다.
- 이애현 ‘궤櫃’ 중에서 -
쾌청한 날이면 바다는 호수가 되어 햇빛에 반짝인다. 그런 날 밤이면 달과 별들이 바다를 희롱한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지면 바다는 표변한다. 천군만마가 밀려오듯 파도가 날을 세워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라봉은 사시사철 소나무를 품어 키우니 늘 푸르다. 바람이 불어도 산은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이다. 자연의 동動과 정靜을 보면서 내 마음속의 동정을 살핀다.
지는 해를 응시한다. 하늘과 바다를 수놓았던 저녁 노을, 아름다움의 극치인 하늘그림을 서서히 거두며 바다로 지는 해의 선홍빛 미소, 할 일을 다 하고 유유히 이승을 떠나는 노인의 모습이다. 하루를 마감함이 저리도 고을 수 있으랴!
- 조명철 ‘지는 해를 보며’ 중에서 -
정수현 제주수필문학회장은 책머리에서 “이번 호는 제주수필문학의 향연 제16호로 제호를 다시 읽고 싶은 수필로 정하고 문우들의 옥고를 모아 한 편의 뜻 있는 문학집을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회고해보면 인생의 뒤안길에서 우리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장래 남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고 이 한 편의 문학향연일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우리는 작품을 후세에 남기고 있으니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할 것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수필의 향연 편집위원들은 책 끝에서 “2020년은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을 마주해야만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이 문학을 만나는 시간으로 승화시켜 지혜롭게 코로나를 뛰어넘으면 좋겠다”고 편집후기를 남겼다.
도서출판 열림문화, 219쪽, 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