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86. 감응의 유물론과 예술, 최진석 엮음, 도서출판b, 2020.

감응의 유물론과 예술, 최진석 엮음, 도서출판b, 2020. 출처=알라딘.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역사 속의 수많은 저서들이 답을 해왔고, 동시대 또한 그 일을 지속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질문과 해답은 크게 3가지 양상을 띄고 있다. 첫째는 역사적 관점에서 예술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하여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예술사의 관점이다. 특정 예술 영역의 연대기나 양식의 변화를 토대로 하는 예술사는 따라서 맥락 속에서 예술을 파악하는 데 유리한 관점이다. 

둘째는 미학적 관점이다. 서구에서 들어온 미학(美學)의 원어 ‘에스테티카(Aesthetica)’는 미학 보다는 감성학으로 번역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에스테티카는 ‘미(美)’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기 보다는 감성적 인식의 완성태를 ‘미(美)’로 보았기 때문에 번역어를 ‘미학(美學’으로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미학/감성학이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감성적인 것’은 주로 음악이나 건축, 회화, 조각, 문학 등 예술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과 동행하였다.

셋째는 예술학적 관점이다. 위의 미학/감성학은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므로 그것의 학문적 토대는 당연히 의식이다. 의식이라는 관념에 비해 예술작품이나 현상은 훨신 더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미학’이라는 기치 아래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학(藝術學, science of arts)이 태동하였다. 예술학의 독일어 원어인 ‘쿤스트비센샤프트(Kunstwissenschaft)는 예술(Kunst)과 과학(Wissenschaft)의 합성어로서 예술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감응이란 느끼고 호응하는 것, 새로운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도 따른 관계의 형성을 촉발하는 힘의 운동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 묶인 각각의 글이 차이를 드러내고 또 상호간의 충돌과 변현형을 촉진한다면, 이는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감응되고 감응하는 관계 속에 있음을 뜻할 것이다. 이점에서 감응의 사유 도한 언제나 도 다른 감응을 생산하는 긍정적 능력이라는 애초의 정의로 우리는 돌아갈 수 있다.”

엮은이 최진석이 쓴 서문에 나오는 이 문장은 위에서 언급한 예술에 대한 이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관점, 그러니까 미학-감성학적인 관점과 예술학적인 관점을 함께 지니고 있다. 감응이라는 말은 스피노자가 쓴 ‘affectus, affect’라는 말에서 나왔다. 일본어 번역으로 정동이라는 말도 있다. 정서의 움직임에 주목한 정동이라는 말에 비해 감응은 정서적 인식과 그것의 상호관계성에 좀 더 주목한 번역이다. 

이 책을 저술한 연구자들의 면면을 보면, 주제에 대한 흥미가 훨씬 더 커진다. [수유너머104]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기획하고 저술한 이 책에는 문학평론가 최진석 등의 연구자들이 ‘감응’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예술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예술학과 철학, 생명과학, 문학, 문화비평, 사회비평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이들의 작업은 예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이 인간의 감성적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개별의 감성적 인식들이 상호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면서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어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 장, ‘감응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진경은 감응의 본질과 특이성, 통일성, 다양체 등을 다루며 감응을 막연한 관념이 아닌 연구대상으로서의 실체적 존재로 세운다. ‘공생의 생물학, 감응의 생태학’에서 최유미는 공생 생물학이라는 관점에서 난초와 꿀벌의 공생과 같이 예술과 감성적 인식의 공생으로 감응을 설명한다. 현영종은 ‘감응의 동력학과 자기인식’에서 스피노자의 감응 이론이론이 이성적 인식과 감성적 인식의 균형을 잡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신체 또는 감응의 전도체’에서 권용선은 신체를 기억의 저장소, 감응의 전도체로 부른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을 매개하는 실체로서의 신체를 통하여 사유에서 감응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한다. 송승환은 ‘증언의 문학성과 시적 감응의 정치성’에서 문학에서의 상상과 증언이라는 문학적 형식과 그 언어가 감응과 이러지는 국면을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최진석은 ‘감응과 커먼즈’를 통하여 공유재로서의 예술을 다룬다. 결국 정서적 호응으로서의 감응은 개별과 집체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준다. 

예술이라는 것도 사람의 일이라 인간의 정신과 신체, 인간 개인과 인간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형식의 물질로 존재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인간 사이, 공동체 내부의 정신적인 작용으로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예술에 대한 이해를 예술의 감성을 통하여 나타나는 정신적 작용을 단순히 작품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그것의 외연을 폭넓은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느낌과 나눔’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감응이라는 정신적 작용을 토대로 예술에 대한 보다 포괄적 이해를 촉구하는 유물론적 예술론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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