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기록적 한파 몰아친 제주, 월동무 등 겨울 농작물 피해 가시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기록적인 북극발 한파가 몰아친 새해 벽두부터 설마하던 농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가을 지독한 가뭄을 겨우 견뎌낸 농작물들이 이번 폭설로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11일 취재진이 찾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의 월동무 밭. 수확을 앞둔 월동무 이파리 위로 나흘 넘게 차곡차곡 내려앉은 흰 눈의 풍경을 누군가 설경이라고 말한다면 그처럼 민망한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수확만을 기다려온 농민들에겐 절망의 현장이었기 때문.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월동무 밭. ⓒ제주의소리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월동무 밭. ⓒ제주의소리

해발 60~70m의 경작지에는 땅 위로 파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어야 할 월동무 윗동들이 나흘째 쌓인 눈으로 꽁꽁 얼어붙고 있었다.

이 곳에서 월동무 농사를 짓고 있는 채종태(54)씨는 "아무리 겨울 날씨가 매서워도 이렇게까지 오랜기간 눈이 쌓인적이 없었다. 이렇게 지독한 한파는 처음"이라며 망연자실했다.

지난 6일부터 나흘간 몰아친 폭설과 강풍은 제주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빙판길로 인한 극심한 교통체증을 비롯해 낙상 사고가 잇따르며 부상자도 속출했다.

한파의 기세가 약간 꺾여 눈이 녹아내리면서는 농작물 피해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최대 적설량 50cm를 웃도는 눈으로 인해 농작물의 냉해 피해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월동무 밭. ⓒ제주의소리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월동무 밭에서 농민 채종태(54)씨가 눈 속에 파묻혀 한파 피해를 입은 월동무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일대의 월동무 밭을 드론에서 내려다 본 모습. ⓒ제주의소리

특히 겨울철 우리나라 무 공급량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제주산 월동무의 피해는 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8월 중순부터 9월말까지 파종을 거친 월동무는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초까지 한창 수확철이다. 추웠다가 따뜻해지기를 반복하는 제주산 무는 수분과 탄력이 월등해 이 시기에 출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연초 수확을 목전에 두었던 이 일대의 월동무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폭설로 올 겨울 작황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채씨는 "냉해를 입은 무를 보통 '바람이 든다'고 한다. 푸석푸석해지고 멍이 들게 되는데, 이러면 상품성이 절반 이상 떨어진다. 올해는 평년에 비해 생산량도 떨어졌는데, 상품의 질까지 떨어졌으니 농민들이 진짜 죽겠다는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하필 제주에는 지난해 가을 극심한 가뭄이 들어 가뜩이나 작물의 생육이 더디던 상황이었다.

70~80일 간 비가 내리지 않다가 지난 12월 중순께 사흘 정도 비가 내리면서 겨우 '이제 살았다' 싶었지만,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기록적 한파가 덮쳤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당장 농작물 피해는 향후 눈이 모두 녹아내린 3~4일 후를 기점으로 판가름 나게 된다. 피해야 당연히 감수해야 할 상황이고, 피해가 적을지 클지 그 규모를 두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작물을 겨우 살려낸다 하더라도 성장발육제며, 냉해방지제며, 농비 부담이 가중되는 것도 문제다.

채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식당이든, 예식장이든 집합금지 조치에 따라 영업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무 소비량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물론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피해가 크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작 농민들의 피해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소비 위축에 생산량도 줄고 자연재해까지 겹치니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월동무 밭. ⓒ제주의소리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월동무 밭.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제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폭설로 인해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제주시 구좌읍 월동무 밭. ⓒ제주의소리

무 뿐만이 아니라 겨울철 수확이 이뤄지는 월동 채소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제주 서부지역에서도 비트나 콜라비 등의 농가 피해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재해 피해를 접수하기 시작하면 그 규모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제주시 농정부서 관계자는 "지난 주말 직접 현장을 찾아보면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도에서 관련 지침이 내려오고, 눈이 서서히 녹으면 피해 신고도 본격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폭설·한파에 의한 피해는 공공시설은 7일 이내, 사유시설은 10일 이내에 신고하면 현장 확인 후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