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동백꽃 지기전에’ 쇼케이스

창작 뮤지컬 '동백꽃 지기전에' 쇼케이스 영상의 한 장면. 출처=자르트 앙상블 유튜브 채널. ⓒ제주의소리
창작 뮤지컬 '동백꽃 지기전에' 쇼케이스 영상의 한 장면. 출처=자르트 앙상블 유튜브 채널. ⓒ제주의소리

무대 예술로서 제주4.3은 마당극과 연극 중심이었다. 지난해 ‘순이삼촌’으로 오페라까지 확장했는데, 올해는 뮤지컬로 만날 기회가 생길 전망이다. (2019년 뮤지컬 '헛묘'가 있었지만 완성도를 고려하면 청년들의 도전에 가까웠다.) 바로 창작 뮤지컬 ‘동백꽃 지기전에’다. 서귀포관악단 연주자 김경택이 작곡을 맡았고, 극본 김지식, 연출과 개작은 김재한이다. 제주 설화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손 없는 색시’에서 손발을 맞춘 인원들이 다시 모였다.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28일 진행한 스탠딩 낭독 쇼케이스를 진행한 바 있다. 녹화 영상은 ‘자르트 앙상블(JART ensemble)'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비록 쇼케이스 명칭을 달고 있지만 10막·1시간 분량으로 배우들의 연기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기본 틀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4.3의 이야기입니다. 2020년, 제주 북촌 마을을 관광 명소로 개발하려는 사람들과 개발에 반대하는 정분임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 ‘동백꽃 지기전에’ 인트로

‘동백꽃 지기전에’는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를 배경으로 1947년과 2020년을 오가는 시공간이 배경이다. 북촌리에는 대규모 관광지 개발 사업이 추진되는데 정분임 할머니 집과 마당 동백나무가 걸림돌이다. 할머니는 4.3 당시 남편과 가족을 잃고 아들 춘식을 홀로 키웠다. 그는 동백나무를 보며 온 마을이 불타버린 4.3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동백나무를 절대 자를 수 없다고 맞선다.

작품은 4.3이란 역사를 기억하는 각기 다른 방식을 대비시킨다. 리조트, 면세점 같은 대형 개발 사업으로 “옛날 기억 모두 잊고 새로운 삶 살아보자”는 주민들. 그리고 추억, 고통, 미련 등 복잡한 감정이 서린 집을 절대 떠날 수 없다는 할머니. 여기서 개발 찬성 주민 편에 서서 “전과자 자식으로 사는 것도, 없는 사람처럼 숨어 사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는 춘식도 포함한다.

정상적인 삶을 살다가도 문뜩 떠오르는 총소리에 쓰러질 만큼 극심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주인공. 그의 사연과 고통을 종국에 모든 등장인물이 이해하는 구성에서 알 수 있듯 ‘동백꽃 지기전에’ 속 4.3 서사는 희생자 중심이다. 학살 장면에서 흐르는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우린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노래 가사는 매우 상징적이다. 동시에 마지막 곡(가사 : 이제 우리도 함께 할게요, 당신의 시간.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말아요)으로 공감과 기억에 힘을 실었다.

이 같은 접근은 4.3을 다뤄왔던 다른 문학, 연극 등에 비춰볼 때 심층·다층적이라기 보다는 비교적 무난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만 해도 ▲삶의 방향을 상실한 청년세대에 대한 일침(예술공간 오이 연극 ‘4통3반 복층사건’) ▲미래 SF 판타지와 4.3의 접목(예술공간 오이 연극 ‘프로젝트 이어도’) ▲가해자의 참회(연극 ‘잃어버린 마을’) ▲어린 희생자 영혼과의 교감 (임철우 소설 ‘돌담에 속삭이는’) ▲4.3 과정에서 도민 편에서 섰던 검사(김동현 소설 ‘쓸모의 시간’)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4.3을 다루고 있다. ‘동백꽃 지기전에’는 개발이라는 요소를 더했지만, 대대적인 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으로 나뉘어 갈등이 벌어지는 진행 구조 역시 친숙한 편이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이 평범하다’는 인식을 단점으로만 치부할까. 개인적으로 이번 경우에 대해서는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만약 마당극이나 연극처럼 수차례 작품 시도가 이뤄졌던 장르라면 무난한 접근이 비판 소지가 될 수 있지만, 4.3에게 뮤지컬은 낯선 장르다. 뮤지컬을 선호하는 대상이 주로 젊은 층이라는 통념까지 고려하면, ‘동백꽃 지기전에’는 4.3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으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아직 미완성 단계이기에 고민이 필요하거나 소소하게 바로잡을 부분도 눈에 띈다. 특히 시대-인물 설정은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과자 자식으로 사는 것도, 없는 사람처럼 숨어 사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이 나무가 내 인생을 막고 있다”는 4.3 피해자 춘식의 외침은 인물이 가진 아픔을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생존 희생자들이 그런 고통을 여전히 품고 있는 사실과는 별개로, 2020년으로 정한 극 배경을 고려할 때 극단적인 준식은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진상규명이 큰 제약을 받던 민주화 전후에나 어울린다. 춘식이 고뇌하는 근원적인 이유를 후반부에 몽땅 풀어내는 진행은, 춘식 역시 분임처럼 같은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앞서 조금씩 암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사족이다.

충분한 설명 없이 4.3특별법 개정안까지 언급하는 것은,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작품의 흐름을 깨는 ‘무리’라고 판단된다. 4.3 당시 제주 상황을 압축한 구조는 제작진의 판단이지만, 작품 전체에 있어 4.3을 묘사하거나 언급하는 대사는 보다 매끄럽게 가다듬거나 당시 시대에 사용된 고유 명사를 추가하는 식으로 보다 정교했으면 좋겠다는 인상이다. 주민들이 선출하는 이장을 공직자로 부르는 오류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제주어 대사는 이번 쇼케이스에서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본 공연에서는 추가할지 아니면 지금 정도가 될지 알 수 없으나 타 지역 출신에다 나이도 젊은 제작진, 배우 입장에서는 제주어가 부담될 만도 하다. 제주어가 중요하게 쓰이는 역사극도 아닌 이상, 제주어 구현에 힘을 쏟는 것보다 여러 면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오히려 관객을 위한 게 아닐지 사족을 다시 더해본다.

주저리 말이 길었지만 이제야 첫 단추를 끼웠다. 쇼케이스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몰입도는 본 공연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하리라 본다. 

앞서 언급했듯 ‘동백꽃 지기전에’는 공감과 기억에 비중이 실려 있다. 마을 개발로 분임 할머니와 갈등 관계에 놓였던 개발위원장 역시 4.3의 아픔을 충분히 알고 경험한 제주도민이기에, 결국 할머니를 이해하려는 자세는 인간적인 배려와 따스함이 느껴졌다. 70여년 전 불에 타버려 꽃은 피우지 못하지만 여전히 살아 서있는 동백나무처럼, 고통스러운 역사를 잊지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메시지를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쇼케이스 출연진은 강하나, 박기원, 허만, 류비, 임재은, 장두환이다. 강하나를 비롯해 임재은, 허만 등 ‘손 없는 색시’에서 만났던 배우들이 다시 출연한다. 

‘동백꽃 지기전에’는 올해 초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에 제작진은 ‘이 작품이 어떤 관객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가다듬었으면 한다. 연극뿐만 아니라 지난해 오페라에 이어 올해 뮤지컬까지, 꾸준히 도민과 4.3을 이어주는 무대 예술을 응원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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