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민예총 '2020 4.3예술축전'

제주민예총 ‘4.3예술축전’의 전신은 1994년 ‘제1회 제주4.3예술제’이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예술인들이 수고와 고통을 감내하며 기억투쟁의 전선에서 활동했지만,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제’ 성격으로 바라보면 1994년을 시작으로 봐야할 것이다. 김석윤은 제주문화예술재단 소식지 ‘삶과문화’ 2013년 여름호에 “4.3예술제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게 되면서 역사의 중압감은 털어버리고 다양한 재해석과 창조적인 예술 활동을 펼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4.3예술축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리와 현장을 지켰다. 1947년 3월 1일 도민들이 모였던 그 거리, 그리고 비명횡사한 수많은 생명들이 잠들어 있는 제주 곳곳까지 찾아가 현장위령제를 지내며 4.3을 기억했다. 그렇지만 전 세계를 덮친 역병, 코로나19에는 어쩔 수 없이 ‘비대면’이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둬야만 했다.

2020년 몇 차례 연기 끝에 성사된 4.3예술축전은 현장 행사 대신 영상으로 대신했다. 27년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순지오름 꽃놀이’ 라는 전체 주제 아래 ▲1948년의 봄의 노래 ▲그곳은 ▲순지오름 꽃놀이 ▲그 기억의 터上·下까지 다섯 편으로 새로운 예술축전을 구성했다. 영상은 12월 7일부터 21일까지 차례로 영상 플랫폼 유튜브 ‘제주민예총’ 채널에 등록됐다.

비록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지만 4.3예술축전은 음악, 문학, 영상, 연기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모인 현장 분위기를 재현한 구성에, 온라인으로서만 가능한 시도들까지 더하면서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 1948년 봄의 노래

4.3예술축전의 문을 여는 첫 영상 ‘1948년 봄의 노래’는 4.3을 대하는 제주민예총의 마음 가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흑백 화면은 제주시 조천읍 이덕구 산전에서 시를 낭독하는 김경훈 시인을 비추고, 소리는 그가 본인의 시 ‘이덕구 산전’을 낭독한다. 낭독이 끝나갈 무렵, 영상은 자연스럽게 최상돈 가수의 노래로 이어진다.   

“우린 아직 죽지 않았노라.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라는 시 구절. 그리고 20세기 말 이탈리아 무솔리니 독재 정권에 맞선 비정규군(partisan, 빨치산)이 불렀다는 노래 ‘Bella ciao'를 번안해 “저 눈 덮인 산, 그 아름다운, 그늘 아래 나를 부디 묻어주오. 벨라 차오, 그 무덤에 꽃 한 송이 놓아”달라는 노래 가사 모두 이덕구를 상징한다.

4.3예술축전의 흐름은 2018년 4.3 70주년을 지나면서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있는 4.3 역사 속에서 ‘항쟁’을 비중 있게 바라보고 있다. 덧붙여 대중성 확보, 청소년들과의 소통 역시 중요한 방향으로 삼고 있다.

이런 면에서 ‘1948년 봄의 노래’는 이덕구라는 인물을 비추며 4.3 항쟁성을 부각시킨다. ‘탄압이면 항쟁’이라는 피맺힌 절규가 왜 튀어나왔는지, 왜 그들은 1948년 4월 3일 봉기했는지 원인을 주목하는 것이다. 

김경훈에서 시작한 영상 속 흑백 처리는 최상돈이 노래를 끝나갈 때가 돼서 색이 입혀진다. 그리고 고유한 흥겨움으로 ‘Bella ciao' 원곡을 부르는 제주 밴드 사우스카니발이 무대를 이어받으며 영상은 끝난다.

살아서 전달돼야 생명력을 가지는 기억처럼 4.3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표현 방식은 다를 지라도 그 뜻을 공감하는 다음 그 다음 창작자들이 나타나야 4.3예술도 존재할 수 있다. 김경훈, 최상돈, 사우스카니발로 이어지는 구성과 흑백 편집은 이러한 계승을 보여주는 듯하다.

# 그곳은 

4.3예술축전의 두 번째 영상은 앞서 선보인 ‘김경훈-최상돈’ 조합을 이어가면서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띄고 있지만, 내포한 메시지는 묵직하다.

4.3을 노래로 알려온 음악인이자 4.3거리굿 예술감독 최상돈은 자작곡 ‘세월’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른다. 그의 대표곡이라고 부를 만 한 ‘세월’은 4.3의 과정과 아픔을 단도직입적인 가사와 호소력 짙은 음성으로 보여준다.

누가 분단을 강요했는지
누가 동포를 죽이라고 했는지
제국과 정권욕에 휩싸인 족속인지
성조기의 그늘 아래 피울음 울던
아 숨막히는 세월 아 숨막히는 세월
아 숨막히는 세월 아 아
한마디 말을 못한 채 흘러버린 세월

- 최상돈 노래 ‘세월’ 가운데

이제 제대로
진실을 말하자

제주4.3은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
억울한 것이다

- 김경훈 시 ‘아무런 이유 없이’ 가운데

해방 전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옛 영상 자료들, 4.3 평화공원 비석들을 높은 시선에서 펼치듯 살피는 영상이 더해져 노래가 품고 있는 간절함은 힘을 더한다. 노래 말미 최상돈의 처절한 외침은 김경훈의 시 ‘아무런 이유 없이’ 낭독이 덧입혀지며 더욱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고독한 최상돈의 절규 속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 또 다른 슬픔이 느껴졌다.

# 순지오름 꽃놀이

‘순지오름 꽃놀이’는 4.3예술축전에서 빠질 수 없는 거리굿을 요약했다. 거리굿은 해방, 3.1절 기념대회, 탄압과 입산, 학살 등 4.3의 과정을 여러 예술 장르를 융합해 보여줬는데, 순이오름 꽃놀이 역시 큰 틀에서 이런 구조를 띄고 있다. 

‘친일파·민족반역자 타도’, ‘통일 독립 전취하자’ 등 당시 도민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구호들을 깃발에 적고, 신나는 풍물 소리에 맞춰 노래하고 춤춘다. 이는 해방 이후 제주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이 품었던 희망이다. 

“미군정은 일제강점기에 갖은 악행을 저질렀던 친일파, 경찰, 군인, 공무원들을 재임명해서 똑같이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고발한 3.1절 기념대회는 곧바로 4월 3일 봉기로 이어진다. 환한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구성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뿐만 4.3 봉기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심각한 도민 사회의 분위기와도 겹쳐진다.

“4.3 오늘은 당신님의 아들, 딸, 동생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어둠 속 북소리·횃불과 함께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 구속자들이 유치장에 차고 넘칠 정도로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억누르는 부당한 처사에는 결국 맞설 수밖에 없다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횃불을 든 출연진들이 노래 ‘입산’을 부르는 후반부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순지오름 꽃놀이’는 전 과정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촬영했는데, 봉기 부분에서 횃불을 높이 올린 출연진은 위쪽, 희생자 비석은 아래쪽으로 나눠 한 화면에 담았다. 이런 촬영 구도는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마치 침묵하며 고통 받는 무수한 도민들을 대신해 일어섰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동시에 ‘탄압이면 항쟁’이라는 제작진 의도에 희생자들을 편입시켰다는 용감한 시도로도 풀이되지만, 왜곡·폄훼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순지오름 꽃놀이’편은 앞서 연속 출연한 최상돈 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들, 전통공연예술단 마로, 풍물굿패 신나락이 함께 모여 만들었다. 4.3예술축전을 든든하게 지켜온 주역들이다.  


# 그 기억의 터上·下

2020년 4.3예술축전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편은 ‘그 기억의 터 상·하’이다. 제주민예총은 “그 기억의 터는 4.3예술축전의 기록이다. 축전이 개최됐던 공간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며 제주4.3과 예술을 통해 미래 세대에 4.3문화예술의 가치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소개한다.

만약 4.3예술축전이 현장에서 열렸다고 가정하면 ‘1948년 봄의 노래’부터 ‘순지오름 꽃놀이’까지는 무대를 중심으로 열린 거리굿, 공연들에 해당하고, ‘그 기억의 터’는 아카이브 전시에 가깝다.

다만, '그 기억의 터'는 영상 콘텐츠의 매력을 십분 살려, 배우 현애란·오상운의 연기와 박경훈 전 제주민예총 이사장의 설명을 교차했다. 제주시청 일대, 관덕정 마당, 탑동야외공연장, 시민회관 그리고 지난 4.3예술축전 기록들이 모인 제주민예총 사무실까지. 현애란은 4.3예술축전을 포함해 4.3 행사들이 열렸던 장소들을 돌면서 지난 기억을 소환한다. 오상운은 고통스러운 몸부림으로 ‘4.3 기억’이란 가치가 얼마나 무거웠고 때로는 힘겨웠는지 몸소 보여준다. 세 예술인의 각기 다른 증언은 ‘그 기억의 터 하’편으로 향하며 하나로 모아진다. 

“제주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싶다면 제주4.3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한 할 일이 있다면 동참해야 한다. 예술가이라면 예술로, 아니라면 다른 방법으로. 제주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4.3을 알고 공유·공감하는 것”이라는 박경훈의 당부는 어린 아이들에게 억새풀을 나눠주며 함께 뛰노는 현애란의 모습과 이어진다. 4.3과 4.3예술은 반드시 미래 세대와 손잡고 전승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 그리고 공연장을 돌며 넋들임하는 오상운을 맨 마지막에 배치하며 4.3을 위해 애쓴 예술인을 포함 모든 이들을 위로한다.

이렇게 ‘2020 4.3예술축전’은 정체성처럼 이어온 4.3 자체를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지난 예술 활동까지 넓게 돌아보며 남은 과제까지 감각적으로 짚는 시도를 더했다. 인물 소개, 자막 등에 있어 노력이 추가됐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는 바람은 있지만 첫 시도임에도 방향을 잃지 않은 제작진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백신과 치료제 소식이 들려오지만 언제부터 코로나19에 안심하고 생활할지는 아직 장담하지 못한다. 2021년 4.3예술축전을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을지 불확실 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려만 할 필요 없다는 것을 이번 영상 시리즈를 통해 확인했다.

출처=제주민예총 유튜브. ⓒ제주의소리
어린 아이들에게 억새풀을 나눠주며 함께 뛰노는 현애란의 모습과 이어진다. 4.3과 4.3예술은 반드시 미래 세대와 손잡고 전승해야 한다는 것. 출처=제주민예총 유튜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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