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06) 내 발등의 불을 꺼 놓아야 남의 발등의 불을 끈다

* 꺼놔사 : (불을) 꺼놓아야, 꺼놓고 난 뒤에야

자기 집이 불타는데 그냥 놓아둔 채로 남의 집에 난 불을 끌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우선 자신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자신의 일부터 먼저 하기 마련이다. 각자도생이면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자기 위주의 처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데 이 대목을 잘 풀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취하되, 남에게도 이익되게 한다는 함의(含意)로 볼 수 있다 함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있다.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하되 남을 이익되게 한다 함이다. 이는 상호 간의 상생(相生)과 공존을 뜻한다.

이를테면 벌과 꽃의 관계다. 수만 리 먼 거리를 날아온 벌이 꽃에 앉아 붕붕거리며 꿀을 따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벌은 꽃에서 꽃으로 옮아 가며 가루받이(수정)을 해 줌으로써 열매를 맺게 중요한 역할을 해 준다. 

그러니 벌은 꿀을 따고 꽃은 귀중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이다. 벌과 꽃, 둘 다 서로 간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전혀 없다. 서로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나 발등에 불’을 먼저 끄고 난 다음, 남의 불을 끄는 게 순서다. 선후가 다르나 먼저 내 발등의 불을 끄고 나서 남의 발등의 불을 끄는 것, 그게 차례다.  

‘애비아덜이 몰 탕 가민 이녁 몰 메여뒁 아방 몰 탄다(父子가 말을 타고 갈 때, 아들이 자기 말 메어두고 대신 아버지 말을 탄다)’와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부자지간이라 하지만, 우선 제 일을 처리하고 난 연후에 아버지 일을 도와 드린다는 얘기다.

1982년 5월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서 촬영한 사진. 두 남정네가 각각 쟁기를 지고 밭으로 가고 있다. 앞에 있는 남정네는 고삐를 잡고 있다. 소 대신 말로 밭을 갈려는 모양이다.
1982년 5월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서 촬영한 사진. 두 남정네가 각각 쟁기를 지고 밭으로 가고 있다. 앞에 있는 남정네는 고삐를 잡고 있다. 소 대신 말로 밭을 갈려는 모양이다. 출처=고광민, 제주학아카이브.

하물며 남남 사이임에랴. 당연히 자신의 일을 하고 나서 남의 일을 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남의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서 제 일을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 수밖에 없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제 발등에 불이 붙었는데 그냥 놓아 두고 남의 발등의 불을 끌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자기밖에 모른다, 이기적이라 꾸짖을 수만도 없다. 문제는 화급하니까 제 발등의 불을 끈 연후, 남의 발등의 불을 끄려고 나서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람은 호모 폴리티구스(HOMO POLITICUS), 사회적 인간이다. 개인이면서 전체 속의 개인으로 존재한다. 사회라는 관계망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처럼 자기 우선의 처신을 두고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한다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이익되고 남도 이익되는, 자리이타로 가는 단계가 아닌가. 남의 어려운 처지를 뒷손 지고 서서 소 닭 쳐다보듯 하는 경우와는 엄연히 다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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