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87)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아크로스, 2020

1. 공부의 쓸모

이제 머지않아 대학입시 절차가 모두 끝날 것이고,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은 다시 학습기계의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며, 입시에 성공한 많은 학생들은 학습기계의 삶을 살아온 시간에 대해 억울해 하며 공부와 담을 쌓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제부터 진짜 공부를 하겠노라고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진짜 공부가 이루어지려면 자신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의 공부가 가짜였다고 느끼는 이유는 공부의 목적이 그저 ‘합격’이라는 알맹이 없는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합격에 성공한 학생들이 우울증에 빠져 자신의 자취방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 공허한 목적이 가져오는 허탈감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하는 공부가 취업과 직결되거나,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공부라면, 마음을 다잡고 공부의 이유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리란 존재하는가?’,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따위의 답 없는 질문을 가지고 학문적인 답을 찾아야 하는 공부를 하게 된 학생들이 그런 이유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의 삶을 살만한 정신적, 육체적 강건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적당히 ‘학문적인’ 세계에 발을 들인 필자 역시 공부의 이유를 말하기가 난감하다. 세상일에 무지하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어떤 사소한 일도 해 본 적이 없이 운 좋게 세상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입장에서, 공부를 하면 나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딘가에서 진짜 공부에 매진하는 학자들을 욕보이는 셈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싱크대 수전이 망가지거나 마루가 훼손되어 수리가 필요할 때, 더 강해진다. 몸으로 하는 일을 배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수리 기사들의 손놀림과 판단력, 결단력을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매우 초라하게 여겨진다. 그들은 사태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한 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작업을 수행한다. 내가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그들은 자신들이 한 엄청난 일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양 시크하게 사라진다. 

우리 동네 작은 분식집 사장님은 수 십 년 동안 만두를 만드느라 손목에 병이 생겼다. 그래서 쉬는 날이 잦고, 문을 열더라도 그날 분의 재료가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좋아하는 만두를 사먹으려면 헛걸음할 각오를 해야 한다. 하루는 그 사장님이 한 번에 150개의 김밥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며 헛웃음을 쳤다. 처음에는 그 말이 장사가 잘 된다는 자랑인가 싶었으나 곧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주문한 사람에 대한 핀잔이었음을 알아들었다. 김밥과 만두에 들어가는 참치의 기름을 제거해야 한다는 원칙, 만두를 찌는 시간에 대한 철저함, 무리하게 일하지 않는다는 생활 태도 등등이 아마도 만두의 맛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분식집 문이 닫혀 헛걸음을 할 때마다 사장님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평생을 공부한 나는 수리기사님들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듯이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있을까,(고민을 더해 준 경우는 많이 있을 것이다.) 공부를 너무나도 열심히 한 나머지 건강을 상한 적이 있었던가?(생각해보니 여러 대학에 시간 강사를 나가면서 학위논문을 쓸 당시 심한 빈혈로 고생한 적이 있지만, 공부가 원인이었다기보다는 아마도 경제적인 궁핍이 문제였던 것 같다.) 건강상의 이유로 휴강을 할 경우 과연 나의 건강을 염려할 학생이 있을까?(환호하는 학생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쩌다 쓸모없는 인문학자가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공부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공부를 해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 올바로 공부하기

나의 공부는 재작년에 작고하신 고려대학교 화공과의 김용준 교수와의 만남과 더불어 시작된 것 같다. 함석헌 선생의 수제자이자,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두 번이나 해직된 경력이 있는 김용준 교수는 그런 경력과 달리 철학책 읽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독서인이었다. 학부 2학년 때 겉멋이 들어 독일어 원서를 끼고 다니던 필자가 공부깨나 하게 생겼던지 생판 모르는 선배가 다짜고짜 작은 교회 사무실에서 독회를 열고 있던 해직교수의 독서모임에 나를 끌고 갔다. 그렇게 시작된 김용준 교수와의 독서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35년 정도 지속되었다. 매주 4시간 정도 만나서 철학책을 원서로 읽는 그 모임은 그러나 공부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책읽기가 좋아서 습관적으로 책을 읽었던 모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화학공학이 전공이었던 김용준 교수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고, 학부생이 철학박사가 되어 책의 맥락을 짚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컬럼으로 젊은이들의 환호를 얻고 이후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컬럼계의 ‘아이돌’이라는 애칭을 얻게 된 서울대 정치학과의 김영민 교수가 쓴 ‘공부란 무엇인가’(아크로스, 2020)는 진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을 위한 좋은 가이드이다. 아니 공부에 관심이 없어도 읽어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재미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소리 내어 웃은 책이 거의 없었는데, 이 책만큼은 중간 중간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웃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시린 느낌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소위 같은 업계에 종사했는데,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쓸모 있는 학자가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가져오는 자괴감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가슴시린 유머와 쉬운 문체는 오랜 수련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깊이를 보여준다. 저자는 일상의 경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의미와 연관성을 재기발랄하게 끌어낸다. 

인터뷰를 다룬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4개의 장으로 나뉜 이 책은 공부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재치와 유머가 가득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공부를 하는 사람은 정확한 단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논술문을 쓰기위해서는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 책에 대해 올바로 설명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런 내용은 수많은 글쓰기 입문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굳이 이 책을 통해서 배울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 읽어야 할 것은 그런 뻔한 내용이 아니라 그런 뻔한 내용을 말하면서도 독자의 자아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아픈 부분을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건드리는 저자의 섬세함과 날카로움이다. 이것은 저자 스스로가 공부의 기대효과라고 정리하고 있는 내용과 맞닿아 있다. 

“대상을 섬세하게 판별하게 되는 일이 꼭 축복만은 아니다. 그에 수반하는 저주도 만만치 않다. 안목이 밝고 섬세해져 대상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되면, 그간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도 감각할 수 있게 되지만, 그간 몰랐던 더러움도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시집을 가까이 해보라. 이제 곧 지하철역에 걸린 시들 상당수가 거슬리기 시작할 것이다. 술자리에서 읊어대는 삼행시들 대부분이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시들 자체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83쪽)

공부를 하는 사람이 이러한 섬세함에 도달해야 하는 이유를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수적”(84쪽)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은 흐릿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상대에게 쉬운 말만 늘어놓거나 잠깐의 공부를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약을 팔게 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세상의 쓸모와 무관해 보이는 것에 관한 오랜 공부를 통해 이런 섬세함을 갖춘 까다로운 인간은 ‘간지’가 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간지’가 난다. 그런데 평생 책을 읽었으나 그와 같은 섬세함과 간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에게 저자가 말하는 공부의 생애주기에 관한 이야기는 옳은 만큼 뼈아프게 느껴진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저자는 중년이 되면 결핍을 받아들이고, 기력이 쇠하는 노년이 되면 그때까지 안 읽은 책들은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읽지 않은 책들을 이제 슬슬 버려야 할 나이에 도달해서야 공부를 올바로 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접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자신의 삶에 간지를 더하고 싶은 스무 살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 이유선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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