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2017년 1회 개최 후 갈팡질팡 끝에 올해 취소 결정...“제주형 국제미술전 거듭나야” 목소리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최하는 격년제 국제 미술제 ‘제2회 제주비엔날레’가 1월 20일 전면 취소됐다. 지역 미술계는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반면교사 삼으면서, 지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제주형 국제미술전’으로 나아가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최하는 격년제 국제 미술제 ‘제2회 제주비엔날레’가 1월 20일 전면 취소됐다. 지역 미술계는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반면교사 삼으면서, 지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제주형 국제미술전’으로 나아가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최하는 격년제 국제 미술제 ‘제2회 제주비엔날레’가 1월 20일 전면 취소됐다. 2017년 9월 제1회 제주비엔날레를 개최한 이후 햇수로 4년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물론 올해 개최를 취소 결정한 것으로 아직은 향후 개편할지 폐지할지는 미지수다. 

애초 2019년에 열렸어야 할 2회 비엔날레지만 관련조례 제정과 조직개편 등을 이유로 해를 넘겼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모를 통해 선임된 비엔날레 예술감독과 관장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져 나온데 이어 코로나19 감염병으로 국제 교류가 차단되면서 또 제동이 걸렸다. 

결국 도립미술관은 지난해 1년 더 연기하기로 결정해 2021년 개최를 기약했다. “1년 더 준비하는 만큼 비엔날레를 더 잘 치러내겠다”는 각오도 함께 밝혔다. 그러나 그 각오는 공염불이 됐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던 제2회 비엔날레는 급기야 도립미술관 측이 2021년 예산안에 사업비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을 공식 이유로 1월21일 취소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원희룡 도정에서 ‘제주 문화예술섬’의 핵심 정책으로 첫걸음을 뗀 제주비엔날레가 사실상의 ‘중단’ 내지 ‘폐지’를 선언한 셈이다. 

다만 사업 주체인 제주도립미술관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향후 추진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방향의 폭은 폐지부터 전면 개편까지 넓게 잡았다. 지역 미술계는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반면교사 삼으면서, 지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제주형 국제미술전’으로 나아가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제주비엔날레 이대로 끝? 

제주비엔날레는 2016년 8월 16일 임명된 김준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 직후 세 차례 제주비엔날레 추진 토론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공론화에 나섰다. 

도립미술관은 2017년 4월과 7월 중간보고회 성격의 언론 간담회를 열고 일정과 주제를 발표했다. 그리고 9월 2일부터 12월 3일까지 3개월간 도립미술관 포함 도내 6곳에서 ‘2017 제주비엔날레’를 동시 진행했다. 주제는 ‘투어리즘’(Tourism)’이었고, 소셜 아트(Social Art) 즉 사회적 예술을 지향하는 방향성도 제시했다. 개막 전후로 강연, 현장 토론회 등 비엔날레와 연계한 부대 행사들도 여러 차례 가진 바 있다. 

당시 제주에서 형식과 내용면에서 규모를 갖춘 비엔날레가 처음 개최되는 만큼 이목이 쏠렸다. 투어리즘이란 주제는 예술이 사회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반성에서 출발했고, 제주를 지탱해주는 것은 관광산업이지만 교통난과 쓰레기, 젠트리피케이션 등 관광객과 지역주민 사이의 갈등 문제도 예술로 기록하고자 했다. 결국 현대미술로 관광을 반성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  

당시 원희룡 지사는 9월 1일 개막식에서 “이번 비엔날레는 제주가 문화 예술섬으로 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방점을 찍는 계기”라며 "앞으로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성지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힘을 싣기도 했다. 제1회 비엔날레는 12월 3일 폐막식 겸 토론회로 3개월여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도립미술관은 2018년 4월 24일 ‘집담회-제주비엔날레의 성과와 전망’ 토론회를 개최하며 제2회 제주비엔날레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김준기 관장은 그해 8월 15일 임기를 마쳤고, 최정주 신임 관장이 2018년 10월 8일 임명된다. 

최 관장은 2019년 1월 24일 언론 간담회를 통해 두 번째 제주비엔날레를 2020년 5월에서 9월 사이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기 이유는 조례안 마련, 조직 개편 등이었다. 제주도의회는 5월 ‘제주비엔날레 자문위원회 설치·운영 조례안’을 제정하고 ‘제주비엔날레 방향성 및 제도 모색’ 토론회도 개최한다. 도립미술관은 2회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김인선 윌링앤딜링 대표를 7월 선정했다. 9월 5일에는 ‘2020 제주비엔날레 사전 준비, 행사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해를 넘겨 2020년 2월 도립미술관은 제2회 제주비엔날레를 5월이 아닌 6월(6.17~9.13)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3월 들어 코로나19를 이유로 6월이 아닌 8월(8.18~11.1)로 또 다시 연기하고, 4월 8일에는 잠정 중단 결정을 내리는 등 오락가락을 반복했다. 결국 지난해 5월 28일, 행사를 1년 뒤로 미루겠다고 발표한다. 이런 와중에 김인선 예술감독은 6월 22일 도립미술관과 제주비엔날레 자문위원회로부터 예술감독으로서 권리를 침해 받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다. 

김 감독은 동시에 도립미술관으로부터 권리 침해를 받았다는 같은 내용을 제주도 감사위원회에 조사 청구한다. 결국 최정주 관장 체제에서 비엔날레 개최도 못해보고 갈팡질팡하며 2년 임기가 끝나버렸고, 감사위원회는 김 예술감독의 조사 요청에 ‘도립미술관 행정 처리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결과를 연말 확정한다.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는 제주비엔날레 예산 전액을 유보금으로 전환하고, 12월 15일 전체 사업비 19억원에서 절반 가까이 삭감한 10억3000만원을 예비비로 배정하고 2021년 본 예산안을 최종 의결한다. 

그사이 지난해 11월 19일 이나연 신임 관장이 임명됐고, 이 신임 관장은 올해 1월 20일 제2회 제주비엔날레를 전면 취소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제주비엔날레 첫 행사 시작부터 두 번째 취소 까지 진행 과정.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비엔날레 첫 행사 시작부터 두 번째 행사 취소 까지 진행 과정.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미술관, 제주도, 도의회 모두 발목 잡아

제주도립미술관은 1월 2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대내·외 코로나19 확산과 비엔날레 예산 미반영으로 인해 전면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코로나19가 제주비엔날레에 큰 악재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현 시국에서 국제미술전이라는 비엔날레의 전통적 성격을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온라인·비대면이라는 대안을 고려하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아 보인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지난해 9월 24일부터 10월 23일까지 특별기획전을 가졌는데 거리 미술관, 지붕 없는 미술관, VR(가상현실) 전시관 등 코로나에 대응하는 온·오프라인 전시를 시도했다. 10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한 창원조각비엔날레는 34개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했다. 

VR, AR(증강현실), 고도화되는 영상 기술 등 추진 의지가 있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제주비엔날레의 명맥을 이어가는 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상상해본다. 물론 코로나19 발병 이전부터 논의돼온 방향을 단번에 뒤집긴 쉽지 않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허나 코로나19 보다 더 큰 난관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해 2021년도 본예산 편성 과정에서 비엔날레 예산은 아예 편성하지 않았다가 ‘제주의소리’ 보도( 원희룡 ‘문화예술섬 방점’ 치켜세우던 제주비엔날레, 예산 통째 싹둑? ) 등으로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사업 예산을 편성한 제주도, 문화관광체육위원회가 ‘감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반영하라’는 이유로 비엔날레 예산을 전액 유보금으로 배정하며 사실상 일괄 삭감하고 난 뒤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예비비 활용을 제안한 도의회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초 예산심의 과정에서 비엔날레 예산을 통째로 날리면서 이유로 내건 ‘감사위원회 조사 결과’는 이미 11월 조사 청구자인 김인선 예술감독에게 결과가 전달됐다. 삭감을 기정사실로 정해놓고 이유를 찾은 게 아니냐는 시선을 지우기 어렵다. 감사위원회 조사 결과도 김인선 예술감독이 제기한 의혹은 사실상 전부 ‘기각’했고, 도립미술관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도의회의 삭감 사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업 추진이 탄력을 받아야 할 때, 예술감독과 도립미술관 간의 갈등 양상은 가뜩이나 제1회 비엔날레 개최 이후 갑론을박하며 위태로웠던 제주비엔날레의 입지에 치명타를 날렸다는 해석이다. 열악한 형편에 사무국을 구성하지 못해 대행업체와 계약해야 하는데 1년마다 새로 계약하는 기형적인 구조 역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제주비엔날레 사정을 잘 아는 제주도 관계자 A씨는 “지난해 예산 편성과 의회 심사 과정을 살펴볼 때 ‘비엔날레가 없으면 절대 안되는 중차대한 사업이었나’라는 질문에 도청과 의회 모두 ‘No’라는 분위기가 짙었다”고 밝혔다. 정책 우선순위에서 제주비엔날레가 밀려났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여러 이유를 나열했지만 이미 소는 잃어버렸고 버스는 떠났다. 더욱이 지난해 행사 준비 과정에 대한 비용을 두고 법적 다툼까지 불거질 우려마저 나온다.

# “불씨 끄지 말라” 한목소리

제주미술계에서는 코로나19로 위협받는 창작 여건, 원희룡 지사의 핵심공약 ‘문화예술의 섬’, 그리고 어렵게 시작된 국제미술전이라는 성격과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제주비엔날레를 마냥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창훈 제주미술협회장(한국화가)은 “냉정하게 바라보자. 제주비엔날레는 제주 미술인들의 염원을 담아 충분한 기간을 두고 추진위원회 같은 여론이 실체화 돼서 추진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제주미술계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는 대형 이벤트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통상적인 국제전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정 기간에 끝나는 오프라인 전시가 아닌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국제전시가 필요하다. 여기에 제주미술제, 4.3미술제 등 제주의 복합적인 전시들을 묶어 한 단계 발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제주비엔날레를 ‘제주형 국제미술전’으로 전환하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또한 그는 “다만 비엔날레가 제주도립미술관의 핵심 사업이지만 미술관 학예사들은 이미 기존 업무를 수행하는 상태이고, 관장도 미술관 위상을 높이기 위한 종합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도립미술관 직원들이 비엔날레만을 위한 직원일 수는 없다. 비엔날레를 재개하든 새로운 행사로 탈바꿈해 추진하든 전담 인력을 갖추고 추진해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비엔날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문석 탐라미술인협회 회장(조각가)도 “제주비엔날레가 취소됐다는 사실은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일각에서는 제주비엔날레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너무 결과물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욕심이 앞서서 행사에 부정적 이미지가 입혀진 게 아닌가 싶다”고 입장을 전했다.

더불어 “처음부터 성공한다면 바랄 나위가 없지만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나아가는 방향도 있지 않나.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미술전시라는 보편적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좋겠다”면서 “1회 개최 당시 지역 미술계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제주비엔날레가 어떤 방식으로 재개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고 당부했다.

제주 출신 40대 미술작가 B씨는 “국제적인 예술 기조를 소개한다는 원론적인 비엔날레 취지 이외에, 외부 기획자들이 잠깐 머물러 전시를 만든 뒤 돌아가는 행태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과연 제주비엔날레는 제주의 기획 역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B씨는 “설사 지금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제주의 학예사, 기획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전국적으로 비엔날레 회의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다시 비엔날레 같은 대형 국제미술행사를 제주에 연다고 한다면 이런 부분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이나연 도립미술관장은 “현재까지 확정된 사실은 올해 개최할 예정이었던 제주비엔날레가 취소됐다는 것이다. 새로운 행사로 대체할지, 폐지할지 그 이후는 앞으로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통해 정해질 방침”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남겼다.

그러면서 “이미 국제적으로 비엔날레 가치가 퇴색되거나 다시 검토되는 시점에 왔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비엔날레 의미에 대해 질문을 가지게 된다. 코로나로 지치고 힘든 도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예술은 분명 할 일이 있다고 믿는다. 여러 제약 속에 제주비엔날레가 문화예술섬 제주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제주형 미술 행사로 변모한다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술이 밥 먹여 주냐’고 누군가 묻는다. 이제 예술이 밥 먹여주는 시대다. 다만 엘리트주의가 강한 국제 예술행사인 비엔날레는 변해야 한다. 대중과 지역 안으로 들어오는 제주형 비엔날레가 그 답이 될 순 없을까.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 예술은 사회 안에서 존재한다는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제주비엔날레의 폐지를 만지작거린다는 것은 그 주체가 누구든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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