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월평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고문서 자료집’ 발간

서귀포시 월평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는 월평마을에 있는 고문서를 모아 자료집으로 발간했다. ⓒ제주의소리

제주 서귀포시 월평마을의 역사와 선조들의 생활을 기록해 모아둔 책궤가 열렸다. 

서귀포시 월평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이하 서귀포월평도시재생센터)는 마을이 소장하고 있는 궤를 열어 고문서 자료집을 발간했다. 

자료집에 수록된 고문서는 월평마을 운영위원회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제공됐으며, 주민협의체 역사분과와 주민편집위원회의 활동 등 주민참여가 이뤄져 모였다.

서귀포월평도시재생센터는 마을의 궤와 서고에 있는 120여 건 문서 가운데 55권에 대해 탈고, 번역, 해제 작업을 진행하고 사료적 가치가 높은 29권을 자료집으로 제작했다. 나머지 26권은 별첨으로 해제가 담겼다. 

자료집은 작성 연도별로 배열됐으며 해제, 원문 이미지, 탈초문, 번역문 순으로 구성됐다. 또 고유명사나 전문용어 등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가 달렸다. 각각의 문서는 사진 자료와 함께 해석된 해제와 원문으로 구성됐다. 

박진희 서귀포월평도시재생센터장은 발간사에서 “고문서 발간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월평의 모습을 찾고 만들어가는 열망이 느껴진다. 마을회관 앞 정자에는 언제나처럼 마을 주민들이 모여있다.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삶의 기록이다”라고 소개한다. 

이어 “우리는 더 발견하고 보살피면서 월평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일상을 돌아보며 월평마을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고 말한다. 

책의 본문은 해제에는 1866년 병인 8월 ‘보민절목’을 시작으로 1960년대 월평리 지역사회 ‘회의록철’까지 다양하게 실렸다. 

연도순에 따라 가장 먼저 수록된 ‘보민절목’은 그간 월평마을의 기록이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확인된 1867년(고종 4) ‘호적중초’보다 1년 앞선 기록물이다. 고문서를 분류·분석하면서 이 같은 문서를 찾아낸 것이다. 

보민절목은 당시 대정현감이었던 한홍일이 대정현 관내 28개 마을에 흉년 구휼을 위해 지급한 자금과 운용 세칙 관련 문서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타 지역에서 소장된 바를 확인하기 어려워 중요한 문서로 판단된다. 

당시 보민절목에 참여했던 대정지역 향리, 향청임원 6명의 직책과 이름이 기록됐으며, 대정현 관내 28개 마을 명칭과 원금 총 1000냥 중 250냥이 마을에 지급된 사실로 대정현감의 수압(사인)도 나타난다. 6면으로 구성된 보민절목의 내용을 짧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릇 지방관은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관아의 곳간은 백성들의 납세에서 나온다. 이러니 어찌 상하(上下)가 서로 의지하는 단초가 아니겠는가. (중략) 마치 큰 난리를 겪은 것 마냥 백성들의 고통이 여태까지도 해소되지 않은 탄식이 있었으니, 이에 관아의 곳간을 백성들의 곳간으로 생각하여, 부임하여 업무를 보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두 끼만을 먹고 그쳤었다. 남은 것들은 항상 저축해둔 것이 조금씩 해서 천 냥이 되었는데, 아울러 구호하는데 귀속시켜 적당조치를 참작하여 비용에 쓰도록 하였다. 여러 각각의 마을에 나누어주어, 해마다 이자를 늘리면서 존속시켜 비용에 쓰도록 하였다. (후략)

이처럼 고문서 자료집은 발간 작업을 통해 역사적 의미를 더하고, 마을 사람들이 소중히 보존, 관리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소장문서를 소개한 역사서적 성격을 지닌다. 

자료집은 △조선시대 말기(1866~1910년) 15건 △일제강점기(1910~1945년) 9건 △해방 이후(1947~1983) 5건 등이 담겼다. 

내용은 조선시대 말기의 경우 시행규칙인 절목과 증명서인 명문, 인수인계서인 전장기와 공동체 관련 문서인 물건기 등이다. 일제강점기 기록은 전장기와 물건기가 담겼고. 해방 이후는 회의록, 마을지, 진정서 등으로 구성됐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문서는 1901년 ‘이재수의 난’ 삼장두 중 한 명으로 교수형을 받은 강우백의 명문이다. 책은 그가 월평마을 출신 인사임을 알려주는 문서로 영구 보존돼야 할 사료라고 소개한다. 

강우백의 명문 ‘이방구처명문’은 1890년 강우백이 마을 유력자인 이병구에게 빌려 쓴 돈을 갚지 못하자 보리쌀 4마지기의 밭을 대신 방매해주는 내용이다. 

‘제주신축민란’의 강우백의 사적 생활을 단편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고, 과거 제주지역 거래관행의 특징, 매도사유나 사표(四標)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조길용 서귀포 월평마을 고문서자료집 편집위원장이자 월평마을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선조들의 슬기로움이 담긴 기록들이 주민 뜻을 모아 공개되는 것이기에 뜻깊게 생각한다”며 “과거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했듯, 현재 마을의 실태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며 반듯이 기록 보존해야 하는 의무”라고 소감을 밝혔다. 

251쪽, 디자인 오투,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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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1910년 작성된 '화단장막 신조소입성책'. 당시 마을 임원 명단과 재정 출연자 명단 및 제작자 명단 등이 기록돼 있어 마을 공동체 의식과 비용 분담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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