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여행객 줄자 만족도 급상승…의미 새겨야

북적임을 극도로 싫어해서 뭍 나들이를 할라 치면 늘 한적한 산사 하나쯤은 일정에 넣곤 한다. 가급적 성수기를 피하는 것도 이런 체질(?) 탓이다. 인구 1000만의 수도, 서울은 기피 대상 1호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방문이 꺼려진다. 서울 사는 지인을 만나야 할 때도 가까운 지방으로 불러낼 묘안이 없을까 고민할 정도다. 

스스로 생각해도, 다분히 모순적이다. 성미는 급한데 호젓함을 좋아한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순서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워낙 산사를 좋아하다보니-여행 자체는 드문 편이다-어느새 그 분위기가 몸에 배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어느 관광지를 가든 사람에 치이는 것은 질색이다. 

어쩌면 코로나19로 관광이 얼어붙은 지금이 호젓한 여행을 즐기기에는 제격이다. 물론 그래선 안되겠지 싶다. 달리 방도가 없다. 코로나19가 하루빨리 물러나길 바랄 수 밖에.

알고보니, 혼자 그런게 아니었다. 호젓한 여행이 개인적 취향의 문제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통계가 최근 나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히려 상당수가 그걸 원한다는게 입증됐다. 

제주관광공사가 지난해 9월 실시한 ‘가을시즌 제주여행 계획조사’ 응답자를 대상으로 추적조사한 결과를 지난 20일에 발표했다. 사전 계획조사에 응한 사람 가운데 실제 제주여행에 나선 사람을 대상으로 재조사를 한 것이다. 

무엇보다 여행의 질이 부쩍 높아졌다. 사전 조사에서 긍정 응답이 37.1%였으나, 추적 조사에선 57%로 껑충 뛰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관광객이 적어서’가 단연 1위였다. 응답자들은 관광객이 적어서 ▲충분하게 둘러볼 수 있었고(55.5%, 이하 2가지 복수 응답) ▲이동 편의성이 증가했으며(47.3%) ▲유명 관광지·맛집에서 기다림이 적었다(45.3%)고 대답했다. 4위를 차지한 ‘관광지, 공용시설의 위생·청결 수준이 좋아졌다’는 응답(28.2%)도 관광객 수와 무관치 않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줄자 되레 관광객의 만족도는 더 높아진 셈이다. 역설이라면 역설이다. 이른바 ‘코로나의 역설’. 

단지 역설로 치부하기엔 시사점이 작지 않다. 여기에 해답이 들어있을 수 있다. 제주 관광의 묵은 숙제를 풀 수 있는, 질적 전환을 꾀할 하나의 계기. 

제주관광공사가 모처럼 역할을 했다. 여행객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데 일조했다. 빅데이터 기반 ‘실시간 관광지 혼잡도 분석서비스’를 통해서다. 관광객을 분산시킴으로써 코로나 전파 위험을 줄이고,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했다는 점에서 UN 산하 세계관광기구로부터 ‘스마트 관광의 리더’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공적 주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본보기가 됐다. 

ⓒ제주의소리
제주관광공사의 조사 결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줄자 되레 관광객의 만족도는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코로나의 역설'이다. 그 의미를 관광당국과 업계가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픽 디자인=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바야흐로 세계는 오버투어리즘에 직면해 있다.

한해 관광객이 200만명에 이르던 ‘파티의 섬’ 필리핀 보라카이는 ‘금지의 섬’으로 변신했다. 벌써 3년여 전 얘기다. 변신은 일사불란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다. 그가 “시궁창”이라고 비난하며 섬을 폐쇄한지 6개월만에 400개 호텔과 식당이 문을 닫았다. 관광객은 아무리 많아도 하루 1만9200명을 넘지 못하게 총량을 제한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배경으로 소문이 나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는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도 당국이 관광버스 감축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한다. 

멀리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이 대표적이다. 사생활 침해 등 주민들의 불편 호소가 잇따르자 서울시는 북촌로 일대 ‘관광 허용 시간제’를 도입했다. 

제주는 또 어떤가? 삶을 침범당한 현지인들의 반작용을 뜻하는 투어리즘 포비아(관광 혐오증) 조짐이 도민 사이에서도 감지되는 것 같다. 

쓰레기와 하수대란. 과잉관광의 폐해는 도민들도 익히 경험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내놓은 ‘제주 관광산업의 생산성 성장에 대한 연구’ 결과는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제주 관광산업 매출액 증가율은 84.9%에 달했고, 종사자수와 사업체수 증가율도 각각 55.6%, 46,2%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기간 사업체당 고용인원은 0.2명 느는데 그쳤고, 관광산업 1인당 매출액도 오르다가 떨어졌다. 관광산업 부가가치율 역시 2014년(35.5%)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사실 제주관광의 체질 개선 요구는 꽤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그동안 목청만 높였지 어느 누구도 메스를 들지 못했다. 

보라카이를 재개방할 당시 필리핀 정부는 “천국이 되살아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절대권력의 일방적, 극단적 처방의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추진 주체 면에서 보라카이는 제주도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제주도 관광당국과 업계는 이번 추적조사 결과를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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