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열 네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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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을 기억한다. 오스트리아 빈 역전 카페에서다. 후회하는 커피 한 잔은 4년 전 아버님 임종(臨終) 생각이 떠오른다. ⓒ제주의소리

소낙눈 내리던 서울역 광장, 바쁜 출근길 아침 1월 19일, 너무 추워 커피 한 잔 부탁한 노숙인에게 점퍼·장갑 모두 벗어주고 홀연히 사라진 한 ‘시민 천사’가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보도.

소낙눈이 쏟아진 18일 오전, 거센 눈발이 그치기 전 사진 취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서울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바쁜 출근길 시민들도 지각이라도 할세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내 멀리 광장 한켠 흡연구역 앞 두 남자가 뭔가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진기자의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온다. 깔끔한 차림의 한 남자가 자신이 입고 있던 긴 방한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혀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주머니 속 장갑과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노숙인에게 건넨다.

‘무슨 일일까?’ 상황이 끝난 듯해, 얼른 뛰어가 노숙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잠바랑 장갑이랑 돈도 다 주신 거예요?”, “네, 너무 추워 커피 한 잔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주위를 둘러보자 점퍼를 건넨 남자는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미끌미끌 눈길 위로 뒤쫓아 갔지만 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숙인에게 다시 상황을 물어보려 돌아봤지만 그도 어디론가 없어진 뒤였다. 5분 아니 3분도 안 되는 짧은 찰나, 마치 단편영화 한편을 본 듯했다. ‘그 남자는 왜 자신의 점퍼와 장갑을 그 노숙인 에게 선뜻 내주었을까?’ 강한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리던 소낙눈은 점점 그쳐갔다. 천사(天使)가 다녀간 것이다.

다음은 9분짜리 단편 흑백영화 ‘The Lunch Date’(1989) 대사(臺詞) 요약.

백인 귀부인이 붐비는 기차역에서 흑인과 부딪쳐 쇼핑백을 떨어뜨린다.

쏟아져 나온 물건을 주워 담느라 기차를 놓치고 역내 음식점에 가서 샐러드 한 접시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은 그녀는 포크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알고 포크를 가지러 간다. 그 사이 걸인처럼 보이는 흑인이 자신의 샐러드 앞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만다. 귀부인은 화가 나서 포크를 집어 들고 샐러드를 같이 먹는다. 귀부인 한번, 흑인 한번 교대로 음식을 먹는다. 다 먹은 후 흑인이 커피를 두 잔 가져와 하나를 귀부인에게 건넸고 커피를 마신 귀부인은 기차를 타러 나간다.

순간 쇼핑백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나 급히 음식점으로 뛰어오지만 흑인도 쇼핑백도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귀부인이 음식점 여기저기를 살펴 보는데 아까 그 옆 테이블에 손도 대지 않은 샐러드 접시가 놓여있고 의자 위에 쇼핑백이 있었다. 자리를 잘못 잡은 귀부인이 흑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던 것이었다. 흑인은 화를 내지 않고 음식을 먹는 귀부인과 나누어 먹었고 커피까지 대접했던 것이다. 이 흑인은 참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진 검은 천사였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을 기억한다. 오스트리아 빈 역전 카페에서다.

2017년 11월 말 국제학술대회가 빈에서 열렸다. 전차가 오가는 길목에서 쓸쓸한 겨울 초입, 복잡하지 않은 도시가 좋았고 커피향이 너무 그윽했다. 이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문: 왜 대칭(對稱) 인가(A Beautiful Question: Why Symmetric?)’란 논문을 발표하고 기립 박수를 받아서인가. 논문의 요약은 우크라이나 샤가프(E.Chargaff, 1905-2002)가 DNA구조(아데닌A 30%, 티민T 30%, 구아닌G 20%, 사이토신C 20%)의 함유량을 세계 최초 1950년에 실험적으로 밝혔는데, 수학적으로 증명을 못했다. 이를 이중 확률(Double Stochastic) 대칭 개념으로 증명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코로나19의 RNA 원조다. 인터넷에서 쉽게 논문제목을 치면 확인이 가능하다.

후회하는 커피 한 잔은 4년 전 아버님 임종(臨終) 생각이 떠오른다.

시월 저녁 일곱 시경, 집안 식구가 병실에 모여 ‘커피 한 잔’을 했다. 그때, 아버님께는 커피를 못 올려 드렸다. 세 시간 후에 돌아가셨다. “못난 놈들, 자식이라고, 설러 부러….” 두고두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 다음은 이문호의 논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문: 왜 대칭(對稱) 인가(A Beautiful Question: Why Symmetric?)’ 전문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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