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교육주체다] (11) 열악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흔히 교육의 3주체로 ‘교사·학생·학부모’를 꼽는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주체가 있다. 교육활동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소위 ‘비교사 노동자’로 호칭되는 이들도 분명한 교육주체다.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 노동의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존중도 보장되어야 한다. 경쟁과 차별을 넘어 협력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는 주민자치 교육감 시대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현장 전문가의 릴레이 와이드 인터뷰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 편집자

18세 현장실습생 고 이민호 학생의 죽음

제주시 학생문화원에 가면 18세 현장실습생 고 이민호 학생의 추모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고 이민호 학생은 2017년 11월 18세의 젊은 나이로 구좌읍 구좌읍 한 음료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기계에 목이 끼는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고 이민호 학생의 사망사고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겪는 산재사고와 부당한 노동착취 문제를 제주지역 사회에 알린 계기가 됐다.

지난해 11월 19일 제주학생문화원 '미래의 자리'에서 故 이민호군 추모조형물 제막식 및 추모제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은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신분으로 부당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 국가인권위가 지난 해 11월 연 ‘2020 아동인권 보고대회’ 청소년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현장실습생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은 ‘노후화된 작업시설 등 안전하지 않은 업무 환경’(38.1%), ‘적정 인원 부족 등 과중한 업무 부담’(33.3%), ‘충분한 직무․안전교육 없이 실무 투입’(28.6%) 등으로 산업재해사고 위험을 느꼈다.

법원은 고 이민호 학생의 죽음에 대해서 사업주에게 벌금 5백만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업주는 구속되지 않았고 향후 3년 동안 공장에서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업주의 책임은 끝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학교도 적용, 그러나.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2019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0명이고, 산업재해자수는 10만9242명이다. 코로나19로 죽은 국민이 2021년 1월 31일 현재 1420명이다. 코로나19라는 재난적 상황에서 죽은 사람의 수보다 한 해 산업재해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은 게 대한민국의 또 다른 재난적 현실. 영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노동재해 사망률은 25배나 높다.(2015년 기준)

올해 1월 9일 국회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산업재해로 1명 이상 사망하거나, 같은 사고로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사업주 등은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 이하 부과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안이 통과되자 중대재해처벌법은 누더기 법안, 중대재해차별법 등으로 불리어졌다. 그 이유는 전체 사업장의 8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이 3년 간 유예됐다. 작년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2020명 중 494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 해 산업재해 사망중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학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일부 교원단체와 학교장이 ‘학교는 사업장이 아니다“며 ”학교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반발했다. 일부 교원단체와 학교장은 ’고 이민호 학생 같은 현장실습생들의 부당한 노동착취와 산업재해 사고를 없애기 위해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환영하고, 더 나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하라는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을까.

반면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은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 후 1월 11일 ”다시는 고 이민호 군 사건과 같은 아픔이 없길 바라며, 안전한 학교 현장을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 알바, 노동인권의 사각지대

은유 작가는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 사회에 나와 부당한 노동착취의 현실을 겪는 십대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부분을 최전선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청소년 알바는 저임금 서비스 산업의 주요인력이 됐다. 국가인권위가 연 ‘2020년 아동인권 보고대회’에서 발표한 청소년 노동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 생활비를 마련한다고 일한다고 한 응답자가 절반을 훌쩍 넘긴 62.5%로 나타났다.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파트타임 노동에 생계를 위해 참여하고 있으나 다양한 노동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이 2018년 10월 발표한 ‘서울학생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경험자 중 둘 중 하나인 47.8%가 노동인권 침해를 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생활비 혹은 용돈 마련을 위해 일한다고 답한 청소년의 비율이 높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인권 보고대회 영상 갈무리
조사 결과, 생활비 혹은 용돈 마련을 위해 일한다고 답한 청소년의 비율이 높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인권 보고대회 영상 갈무리

국가인권위 ‘2020년 아동인권 보고대회’에서 발표한 청소년 노동인권 상황 실태조사 내용 중 폭언, 폭행, 성희롱, 성폭력 등을 경험여부를 묻는 조사에서는 ‘야, 너 등의 호칭과 반말, 무시’가 41.8%로 가장 많았고, ‘욕설, 폭언, 막말 등 경험’이 28.3%, ‘성적 수치심,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말과 행동’은 11.4%에 달했다. 

노동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청소년들은 주로 참고 계속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이 2018년 조사한 ‘서울학생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35.3%가, 국가인권위 ‘2020년 아동인권 보고대회’ 청소년 노동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8.8%가 부당한 처우에도 참고 계속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시작…학교 내 노동인권 교육 갈길 멀어

이러한 현실로 인해 청소년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 증대와 노동인권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지자체 차원에서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조례가 속속 제정되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이 시작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도 현장실습생과 아르바이트 학생의 노동인권 보호와 노동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청소년 노동인권 캠프 및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도교육청은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노동인권 및 산업안전보건 사이버교육(12시간)’을 수강하도록 하고, 아르바이트 학생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나 관련 교과에서 2시간 이상 노동인권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직업계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청소년 노동인권 캠프 ‘숫자들’ 공연을 열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노동인권교육 지도자료’와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청소년 고용 사업주 안내’를 발간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주최로 열린 2020년 청소년 노동인권보호 캠프. 사진=박진현

하지만 공교육 노동교육이 갈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노동인권 교육 시수가 너무 적어 제대로 된 노동인권 교육을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2017년 4월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여전히 중학교 사회의 경우 2.2시간, 고교 통합사회에서 2.3시간 정도로만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다. 2015년 4월 한겨레신문은 교과서에 노동자의 권리 내용은 2%뿐이라고 보도했다. 공교육 전체 내에서 노동인권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지적할 수 밖에 없다.

노동존중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과정 개정 필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연구지원비로 2020년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진행한 ‘학교 노동인권 활성화를 위한 국가교육과정 개정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교육과정은 진로교육과의 연계성은 높지만 노동교육의 관점이나 이해에 있어 연계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제시해 온 진로․직업교육에서는 ‘노동 현실의 문제’는 외면해 왔다는 것. 현재의 진로직업교육은 ‘장래의 특정한 일에 대한 기술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을 목적’으로 하거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고 공급’하는 관점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이어 보고서는 노동자의 권리 및 노동자 시민으로서 사회변혁적 역할 등은 교육되지 않고 있다며 공교육 내에 ‘인간존엄’과 ‘노동존중’의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과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간 개개인의 삶에서 ‘일하는 존재’, ‘노동하는 존재’로서의 일상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 한국 사회에 풀아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로 언급되는 일터에서의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 산업 민주주의의 핵심은 바로 ‘노동존중’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교육이 인간을 ‘도구화’했던 것에서 벗어나 ‘인간존엄’에 있음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학교 노동인권 활성화를 위한 국가교육과정 개정 방안 연구’(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20년 정책연구 보고서)는 교육과정 내 해외 노동인권교육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덴마크의 노동인권교육은 ‘인간 존엄성이 존중 받는 삶’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노동인권교육이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로 이어지도록 체계적으로 교과과정 내에 구성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노동조합이 노동교육 관련 교육용 자료를 제공하는 등 학교 노동교육을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시 ”복잡다단한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 교수는 “독일은 초등학교에 ‘모의 단체교섭’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놓았다“며 ”1년 동안 6번 가량 ‘모의 단체교섭’을 진행하는데, 학생들이 노동자와 경영자 역할을 번가랑 맡아 토론과 논쟁을 벌이며, 강의식 주입식 방법이 아닌 토론식 체험식 방법으로 노사관계를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강연을 할 때 실제 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영상을 틀기도 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해변에 여러 마라의 꽃게가 모여 있는데, 크게가 작은 게가 갈매기에게 먹힐 위험에 처하자 다른 꽃게들이 그 게를 둘러싸 갈매기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10초 안팎의 동영상이 끝나기 직전에 'Union is strength'라는 문구가 선명히 떠오른다. 학생들은 사회적 배려와 연대의 가치를 초등학생 때부터 학습을 통해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조해진 작가의 ‘하나의 숨’(창작과 비평. 2019년 겨울호)은 현장실습생이 겪는 산재사고와 부당한 노동착취의 현실을 다룬 작품. 현장실습생 ‘하나’는 기간제 담임교사에게 ”샘, 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안될까요“라고 물었다.

고 이민호 학생의 사고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삼다수 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거의 같은 이유로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장실습생과 노동자의 죽음이 무감한 소식이 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은 ‘노동존중’과 ‘인간존엄’을 학교 교육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면 말하면 과한 것일까.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의 슬로건, ‘노동존중 평등학교’는 교육공무직노동자(학교비정규직) 뿐만 아니라 학생, 모든 교직원 더 나아가 모든 시민에게 해당된다. ‘인간존엄’을 강조하는 학교교육으로부터 ‘노동존중 평등학교’는 시작한다.

# 박진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1천3백여명의 제주지역 최대노조다. 박진현은 2014년 4월부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교육선전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공공운수노조 중앙에서 일한 햇수를 합하면 20년 가까이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박진현 국장은 원래 부산 사람이다. 2013년 제주로 이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로 이주하면 노동조합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 떠들었지만 헛말이 됐다. 지금 제주 와서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한 것이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한 해도 파업과 투쟁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하는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노동존중 평등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노동과 삶을 전하고자, 제주의소리에 연재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