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14) 제주시 조천읍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거미가 오줌을 누었대.

근데
큰일 났어.

지나가던 지네가
그 오줌폭탄에
혼쭐이 났대.

거미는
그날 이후로
거미줄을 치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대.

그럴 수가 있니.
아무 곳에서나
생각 없는 일 하면
안 돼.                                       

- 김정희, 오줌폭탄 전문 -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함덕 비석거리 알동네 팽나무 옆 삼거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입구. 우측에 보이는 하얀 대문이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이다. 골목엔 책방지기가 그려 놓은 동시 올레 벽화가 오가는 이에게 동심을 안겨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시사철 쪽빛 바다에 발을 담근 서우봉이 빙그레 웃으면서 여행객을 품는 함덕리, 하지만 코로나19가 모든 이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며 서우봉도 쪽빛 바다도 쓸쓸하기만 하다.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책방지기 김정희 씨도 그 족쇄에 묶여 여러 날 책방 문을 닫고 있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어렵사리 만나기로 한 날, 날씨는 화창했다.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금방이라도 봄꽃이 피어날 것만 같았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책방 앞에 차를 세웠다. 설을 앞두고, 책방지기가 그려놓은 동시 올레 벽화에서 재잘대는 동심들이 뛰쳐나왔다. 때때옷을 입은 아이들도 세뱃돈을 챙겨 든 복주머니를 흔들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 재잘거림과 함께 동시 작가이자 시 낭송가이며 스토리텔러에 동화구연가인 책방지기 김정희 씨를 만났다.

“골목에서 조잘대는 작가의 동심 스토리텔링”
책방 앞 삼거리를 따라 뻗은 골목에서 조잘대는 동심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지금까지 어른 시집 2권, 동시집 6권 외에도 51권의 아이들 시집을 낸 책방지기 김정희 씨는, 텍스트로만 책을 내던 초창기와 달리 최근엔 본인이 직접 그림도 그리고 있다. 

김정희(58, 여) 씨가 책방을 시작한 지는 3년, 이곳은 책방지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웃은 모두 삼춘이라 불린다. 당년 93세인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마을 사람은 다 아는, 마을 유지였단다. 이처럼 골목에 동시 벽화를 그릴 수 있는 것도 고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릴 적부터 정을 나눈 삼춘들이라서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이다. 안채엔 현재 부모님이 살고 계시며 김정희 씨가 책방을 하는 곳은 바깥채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책방지기 김정희 작가의 코너.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지기의 작가 코너엔 본인이 출판한 책들이 빼곡하다. 특히 벽에 걸린 책방지기의 사진과 함께 책방지기가 낸 첫 동시집 “오줌 폭탄” 속엔 시인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시집 “오줌폭탄”은 작가 김정희 씨의 어린 시절 그대로다.

책방은 김정희 씨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신고식이 되었다. 올해 나이 쉰여덟 살, 하지만 동네 삼춘들이 보기엔 아직도 어린아이다. 삼춘들은 그 어린아이가 친정집 바깥채에 와서 독서논술 공부방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책을 파는 곳이었다. 신고식을 치른 후, 낯선 이가 지나갔다 싶으면 책방에 들렀느냐고 묻기도 하는 등 동네 삼춘들의 관심은 각별하다. 책방을 알리기 위해 마당에 불을 켜고 밤에 치르는 행사도 오직 예쁘게만 봐주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시끄럽다고 하지 않았다. 

동시전문서점인 만큼 차츰 행사도 낮으로 바꿨다. 2년 차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작가를 초대하며 1년 내내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도는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2018년과 2019년엔 손님이 없을지라도 장사가 안된 건 아니었다. 외부적으로 책 축제며 여러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가 많다는 건 그만큼 책을 많이 판다는 뜻이다. 행사장으로 들고 간 책들은 적잖이 팔렸다. 그래도 아동 책이든 어른 책이든 책방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할 만큼 책방 운영은 힘든 사업이다.

행사를 치르면서 작가를 초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부분 지원금으로 충당되었다. 하지만 손님을 접대하는 등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경비도 적잖았다. 팔린 책들도 수입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다. 예를 들어 온종일 다섯 권 팔고 오만 원을 받았다고 쳐도 겨우 만오천 원 벌이다. 책 한 권 팔아봐야 25~30%의 마진율, 자칫 잘못하면 동네 책방이 망할 수 있다는 증거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울타리. 책방 울타리 간판 벽화와 책방 내부의 벽화는 책방지기의 솜씨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문학 수업과 책방지기의 사업”
외부에서 문학 수업을 하는 김정희 씨는 나름 고급인력에 속한다. 그런 만큼 하루 벌이는 괜찮은 편이다. 외부수업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문학 수업이란 학교 선생님을 대신하여 전문가가 동시 지도를 하는 수업이다. 

책방지기는 보통 오전 7시 30분이면 집을 나선다. 7~8년 이상 문학 수업을 했기 때문에 알음알음 많은 학교가 연결되었다. 학교에 따라 수업 시간은 다르지만 한 학교당 대부분 100시간에서 150시간씩 잡혔다. 그러다 보니 평일엔 쉬는 날이 없다. 그렇게 평일 오전에는 학교에서 수업하고 오후엔 책방으로 출근한다. 

책방 운영은 오후 1시부터 다섯 시까지다. 이 시간대가 어린이 시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쩌다 오전에 출근했다고 해도 청소를 하거나 동네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낸다. 여름에는 아홉 시까지 벽화를 그릴 때도 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옆에 앉아서 벽화 그리는 걸 구경할 땐 마치 화가가 된 기분이다. 

오픈 시간에 못 맞출 때를 대비하여 지난 11월부터 책방지기는 아르바이트로 아들을 기용했다. 한 달에 5십만 원을 주지만 사실 그만큼 벌지 못한다. 용돈을 준다고 생각할 뿐이다. 

책방지기 김정희 씨는 “문학놀이아트센터” 사업자이기도 하다. 학교에 책을 팔러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수업 중 작가의 책을 구매하겠다는 학교도 있다. 문학 수업을 할 때는 문학놀이아트센터로 활동하고, 책을 판매하게 될 때는 책방에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것이다.

2020년도에는 아이들을 위한 “고사리손 동시학교”도 개설했다. 시집과 책방 이름을 같이 사용한 “오줌폭탄”처럼 동시 학교도 시집 제목으로 정했다. 동시 학교와 “고사리손 동시학교”란 두 번째 동시집을 연계시킨 것이다. 동시집 “고사리손 동시학교”에는 “오줌폭탄” 뒷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마당이다. 코로나19로 문을 열지 못하다가 간만에 책방에 나온 책방지기가 화분들을 정리하고 있다. 동해를 입은 다육식물들이 안쓰럽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도에는 동시 동인이 없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고사리손 동시학교”에 어른을 위한 성인부 동시 동인도 만들었다. 작년부터 시작한 동시 동인은 등단을 계획하는 이들이 한 달에 두 번 모여서 작품을 썼다. 그리고 이제 곧 그 결과물인 동시 동인지도 나올 예정이다. 아이들은 수시로 왔다가 수시로 간다. 하지만 동인은 한 번 맺으면 원하는 한 활동할 수 있다. 

작년엔 동시 학교에서 여름방학 특강을 받았던 아이들 책도 냈다. 이 또한 엄마들의 동아리가 결성되면서 동시집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인 결과물이다. 어린이는 아직 동인이나 동아리로 연결해줄 수 없다. 엄마들끼리 모여서 친목을 하든 말든 그것은 임시다. 책방지기가 계속 시를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몸을 사리고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2020년이었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문학 수업을 무사히 마친 것만도 다행이라고 위안받는 책방지기다. 

요즘 육지에서 온 엄마들은 아이들과 체험을 많이 다닌다. 문학 수업과 더불어 그들과 동시 쓰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 책도 51권 엮었다. 어린이들을 지도하며 이 정도 책을 낸 선생님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책방지기 김정희 씨로서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다.

결과물을 얻기 위해 책방지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꼬박 5년이란 시간을 투자했다. 하지만 책 한 권을 내는 데는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지도한 작품을 정리해서 학교로 넘길 뿐 김정희 씨가 관여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런데 학교에서 내는 건 대부분 비매품이다. 책을 판매하는 책방지기이자 시를 쓰는 작가로서 김정희 씨가 볼 때, 문집은 냄비 받침 역할에 불과하다. 애써 창작한 아이 이름이 들어간 동시집을 내서 졸업식 때 주면 그야말로 값진 선물이 된다고 말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내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첫 동시집 제목을 따서 “오줌폭탄”이란 이름으로 책방을 낸 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책방지기는 고정관념을 확 깨버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시를 쓸 뿐만 아니라 책방 이름으로 그렇게 지었다. 덕분에 홍보도 되면서 “오줌폭탄”은 2쇄를 찍게 되었다. 이제 “오줌폭탄”은 책방에 없어서는 안 될 효자 상품이다. 전국의 많은 문학가가 제주도에 가면 성지순례 하듯 책방 “오줌폭탄”에 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다 오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첫 시집 제목으로 책방을 내고 아지트를 만드는 것은 많은 이의 꿈이다. 

“에너지원과 두 아들” 
김정희 씨는 1년에 약 3천 명가량의 어린이를 만난다. 적잖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옛날엔 말 그대로 날고뛰었다. 하지만 5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은 면역력도 떨어졌고 건강도 염려된다. 그저 로봇처럼 일하고 있을 뿐이다. 

책방지기의 부모님은 자식들이 모두 떠나면서 바깥채는 세를 놓고 있었다. 처음엔 그 집을 사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자신의 체취가 서린 곳에서 아이들에게 동시를 가르치며 서재로 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책방을 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부모님께서 100세까지 사신다고 해도, 주인이 바뀌면 책방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노년의 아지트로 생각하고 차린 책방인데……. 함덕이 워낙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서 시골치고는 좀 비쌌다. 다소 부담되었지만 일을 저질렀다. 책방을 시작한 지 일 년 후, 형제들로부터 집을 사들였다. 

부모님께선 오빠들에게 과수원을 물려주고, 마지막으로 남은 집은 으레 큰오빠 몫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큰오빠가 형제 중 집을 살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혼자 차지할 수도 없고, 남에게 팔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들 부모의 피땀과 형제의 추억이 서린 집을 남한테 팔고 싶을까. 그 자리에서 김정희 씨는 본인이 사겠다고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친정 부모님의 집은 김정희 씨가 맡게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내부. 벽에는 동시들이 열매인 듯 걸려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형제자매 중 김정희 씨는 과수원을 받지 못했다. 아니, 일도 못 하거니와 촌에서 살 거라는 생각을 않다 보니 반납한 것이다. 김정희 씨가 제주시에서 한창 독서논술 공부방을 하고 있을 때, 약 3,305m²의 땅이 주어질 뻔도 했다. 이때 김정희 씨는 그래도 뭔가를 해보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멈추는 바람에 잡초만 무성해졌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 땅을 거둬버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땅은 농사짓는 사람에게 가야 한다는 아버님의 사고가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손님은 80~90%가 관광객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지난 12월부터 문을 닫아야 했다. 손님이 뚝 끊겼다는 뜻이다. 그래도 3년 동안 나름 노하우가 쌓였다. 겨울 장사는 안되는 편이다. 궂은날은 아예 공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오면 외부에 있다가도 곧바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 겨울은 시국이 시국인 만큼 조금 쉬어야겠고 생각한다. 그동안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코로나19도 대수롭지 않게 다가온다. 오히려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기회가 되었다.

수업 계획안을 짜는 등 외부에서 일하자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필요한 에너지를 김정희 씨는 책방에서 충전한다. 책방엔 마당조차도 할 일이 태산이다. 하지만 책방지기는 다육식물 하나를 옮기는 일에서도 에너지를 얻는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온종일 마당에 서 있을 때도 있다. 이 또한 책방지기의 충전 방식이다. 로봇이라 해도 방전되면 움직일 수 없다. 어쨌든 책방지기는 외부에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책방에서 충전하는 것이다. 책방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나이 60이 되기까지는 계속 일을 하고, 책방은 노후의 아지트로 여기고 있다. 상황이 힘들어질 땐 현재 사는 집을 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책방지기에겐 아들이 둘 있다. 이제 막 서른한 살이 된 큰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 문학상을 받으면서 소설을 썼다. 엄마는 그 아들이 문예창작과에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들은 문헌정보학과를 택했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 글을 쓸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재작년, 남편이 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남편은 당신이 하던 사업을 아들한테 얘기했고, 아들은 아빠를 돕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들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주었다. 아들이 받는 월급은 사회초년생이 버는 것보다 두 배가 더 많았다. 차츰 돈의 맛(?)을 알게 된 아들은 아빠의 대를 잇는 사업자의 길을 택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내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엄마는 아들이 소설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같다. 하지만 어찌할 수가 없다. 창작에 올인했다면 아빠 일을 돕겠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모든 일을 접었다고 생각했을 때, 사회초년생인 아들이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나마 2기 때 발견되면서 남편의 수술도 잘 되었다. 아들이 독립할 때까지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도 돌아왔다. 다행일 뿐이다.

책방은 작은아들한테 물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하루에 책을 한 권씩 읽도록 하면서 엄마는 둘째 아들을 키우고 있다. 꾸준히 하다 보면 글 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책방지기가 보는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하다. 막내아들은 시집 한 권을 읽고 다섯 편 정도는 쉽사리 암기한다. 아들은 맘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엄마 앞에서 암송한 다음 평론도 한다. 책방지기는 아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아들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이처럼 자신이 맘에 드는 시를 엄마에게 들려주는 값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상은 아르바이트비와 상관없이 만 원씩 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코로나19는 허락지 않았다. 

“동시 씨앗을 가슴에 뿌리던 시절”
어린 시절, 막내인 김정희 씨는 학교 갔다 오면 늘 혼자였다. 아니, 정겨운 벗들이 마당 가득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혼자가 된 김정희 씨는 마당 가득 핀 꽃들을 마주하고 앉았다. 채송화 앞에 앉으면 “넌 왜 이렇게 키가 작은 거니? 너는 작은 씨앗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작은 거지?”하고 말을 건네며 동시 씨앗을 가슴에 품었다. 그 외에도 가까이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친구들, 비 오는 날 넓은 마당에 물이 고이면서 동글동글 떠다니는 부글레기(풍선) 등 맑은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 주변 환경은 모두 어린 김정희 씨의 동시 씨앗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내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돌랑돌랑 학교를 함께 오가던 친구들도 한 집 건너 쪼르르 살고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책방지기더러 요망지다(야무지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시내로 입성하면서 의외로 조용히 살았다. 어릴 적 그 친구들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김정희 씨 눈으로 볼 땐 그 친구들이 오히려 요망진 아이들이었다. 예를 들면, 솔잎을 긁으러 갈 때다. 친구들은 솔잎을 긁어 와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갔다. 하지만 어린 김정희 씨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달랑 비료 포대 하나를 들고 따라갔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솔잎을 한 짐씩하고 등에 지고 와도, 어린 김정희 씨는 친구들이 흘린 솔잎 몇 줌 포대에 담고 말 그대로 돌랑돌랑 산에서 내려왔다. 그나마 이런 경험도 어쩌다 한 번이었다. 부모님께선 과수원 농사를 50년 넘게 하셨지만, 막내인 김정희 씨가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었다. 

“추억이 서린 과수원과 원더우먼 어머니”
어린 시절 책방지기는 과수원에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곳엔 먹을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선 과수원 귀퉁이마다 과일나무란 과일나무는 다 심으셨다. 덕분에 일 년 내내 과일을 먹고 살았다. 돈 주고 과일을 사 본 일도 없었다. 반공일(토요일)이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막내 오빠랑 요즘 같으면 차로 10분 걸릴 거리를 걸어서 갔다. 약 1만9000m²인 과수원엔 여름철 과일이 지천으로 깔렸다. 가을이면 밤이며 감 등도 콘테나로 몇 개씩 집에 있었다. 부모님이 파는 건 단지 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집에서 과일을 사 먹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보니 아니었다. 채소며 과일도 돈을 주고 사 먹는 것이었다. 

어린 김정희 씨는 밭에 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며 사진을 품에 안고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기형도 님의 “엄마 생각”처럼 마당을 몇 바퀴 돌아도, 숙제를 다 해도, 부엌으로 가서 삶은 고구마 하나를 갖다가 다 먹어도 부모님은 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부모님을 온종일 기다리는 건, 집에 오실 적에는 꼭 뭔가를 들고 오시기 때문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동시 올레 벽화 골목. 책방 내부의 벽화는 책방지기의 솜씨이나, 외부의 벽화는 책방지기와 3년 동안 책방 북 콘서트에 참여한 아이들이 함께 그렸다. 책방지기는 아이들에게 자연 그대로 날것의 스케치북을 제공하고 옆에서 지도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어느 날이었다. 부모님께서 돌아오시면 씻을 물을 데우다가 불이 날 뻔도 했다. 부모님이 밭에서 돌아올 때쯤 물을 데우는 건 어린 김정희 씨의 몫이었다. 문명이 바뀌며 석유를 사용할 때였다. 석유병을 깨트리는 바람에 불길이 활활 번져 올랐다. 마침 그때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 그때 어린 김정희 씨가 본 어머니는 괴력을 지닌 원더우먼이었다.

그날 그 순간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집으로 들어서던 어머니가 부엌에 불길이 치솟는 걸 보았다. 순간, 어머니는 무협지 속의 협객처럼 보릿짚 단을 물에 적시고는 부엌으로 슈웅~ 날렸다. 순식간에 불길이 잡혔다. 그때 어머니는 완벽한 원더우먼이었다.

“시련 끝에 찾아든 행운과 바람난장에서 태어난 시집”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은 행복한 기억이 더 많다. 친구들도 책방지기를 행복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보니 녹록지 않았다. 삶을 직접 꾸려야 하는데, 결혼 전 돈 걱정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살자니 힘들었다. 그래도 헤쳐나갔다. 걱정보다는 긍정 마인드로 이겨냈다. 두 번의 부도, 남편의 갈비뼈가 다 부러지고 죽을 뻔했던 교통사고, 요즘 시세로 아파트 두 채는 말아먹었다고 할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 사실조차 모른다.

누군가는 책방지기에게 어떻게 그 많은 아동문학과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김정희 씨는 서슴없이 “낮에는 동시를 쓰고 밤에는 시를 쓴다.”고 대답한다. 어릴 적 행복한 기운으로는 아동문학을, 결혼 후 30년 동안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들은 모두 시로 썼기 때문이다. 책방지기에게 글이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다. 글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었고 살았을 것이라며 제주수선화처럼 뽀얀 향을 내뿜는다. 

책방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 본인이 낸 책을 직접 팔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객 중 60~70%는 스토리텔러이자 낭송가인 책방지기의 책을 싸인 받으면서 구매한다. 본인의 책을 팔면 기본적으로 수입도 두 배로 커진다. 게다가 너무나 감사하게 대부분의 책은 지원금으로 출판했다. 자비로 책을 낸 건 ‘할망네 우영팟듸 자파리(김정희 글, 한그루 출판)’ 제주어 동시집이다. 그런데 이 동시집은 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가 되면서 3쇄까지 찍었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으랴. 제주어 동시 그림책 ‘청청 거러지라 둠비둠비 거러지라’는 제3회 한국지역출판연대 천인독자상 공로상도 받았다. 작가로서는 행운이 두 번씩이나 찾아온 셈이다. 2016년에 출판한 시집 ‘물고기 비늘을 세다(김정희 글, 한그루 출판)’ 는 동시집 ‘오줌폭탄’과 달리 작가의 어려운 이야기와 함께 책방지기가 직접 낭송한 시낭송 CD도 들어있다. 책방지기는 작가로서 책을 낸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오늘도 글을 쓴다. 

바람난장은 오승철 시인과 김해곤 미술가가 만든 제주 예술인의 모임이다. 제주도에 가볼 만한 곳, 미처 가보지 못한 곳, 역사가 있는 곳,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곳 등 두루 계획을 짜고 기본적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작가, 화가, 음악가, 낭송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 4년 동안 100회 이상 제주도 곳곳을 다니면서 책방지기는 ‘순간, 다음으로 – 바람난장에서 시를 스케치하다, 김정희 사진시집(한그루 출판)’을 출간했다. 행사 마지막에 발표되는 1분짜리 즉석 시들이 모여 나온 시집이라 마음을 담고 말고도 없다. 물감도 안 들어가고 염색도 안 들어간 그냥 날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사진 시집은 운 좋게도 출판사가 후원을 해 줬다.

바람난장이란 제주도의 좁은 곳, 큰 곳, 구멍 난 곳 할 것 없이 다 휩쓸고 다니는 바람이 장을 펼친다는 뜻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시인의 어린 시절이 들어 있는 첫 동시집 “오줌폭탄”.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오줌폭탄은”
동심이 그리우신가요? 쪽빛 바다 함덕해수욕장에 발을 담근 서우봉이 가까이에 있는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을 찾아가 보세요. 제주수선화처럼 뽀얀 향을 내뿜는, 동시 작가이자 시낭송가이며 스토리텔러에 동화구연가인 책방지기와 함께 동시 올레 벽화에서 조잘대는 동심도 줍고, 탁 트인 바다와 서우봉도 만날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조천읍 함덕5길 8-23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opekjh1022/222158293376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p/CIKtpp0B-Vj/?igshid=t1wwpl34tut1
영업시간 : 화요일~ 일요일 13:00~ 17:00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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