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09) 왼 도리께는 메지 마라

* 웬 : 왼, 왼쪽
* 도께 : 도리께.  곡식을 타작(打作)해 장만할 때 쓰는 도구

도리께란 예전에 보리, 조, 메일, 콩, 산도(山稻), 팥, 녹두 등을 거둬들여 마당에서 타작(打作)할 때 쓰던 아주 요긴한 도구다. 지금은 산간오지 같은 데서나 쓰일까. 매우 드물거나 아마 쓰이지 않을 것이다. 탈곡기가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리께는 농사 전반에 걸쳐 기계화되기 전에 긴요하게 사용되던 도구였다. 도리께가 없으면 거둬들인 그 많은 작물을 장만할 재간이 없었다. 양이 많아, 유채를 막대기로 터는 식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니까. 젊은 농군들이 콩을 경운기 바퀴로 타작하는 걸 보면서 농촌이 그새 상당히 진화했음을 보는 감회, 유별하였다.

도리께질은 힘이 많이 들어간다. 많이 거둬들일수록 도리께질 해야 할 일의 양이 많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인데다 마주 서서 도리께질을 하는데, 상대방이 왼손잡이일 때는 보통 가탈스럽지 않다. 도리께에서 마당에 깔아 실제 타작하는 부분이 도께아덜(도리께에 달려 어께 너머로 돌려가며 작물을 두들기는 단단한 나뭇가지. 목질이 질긴 윤노리나무로 만듦.)인데, 마주 서서 도리께질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왼손잡이이면, 그 도께아덜이 대각선으로 오가게 되어 위험천만하다. 까딱하다 부딪치면 사람을 후리치게 되기 때문이다. 도리께질은 힘껏 내리치는 동작이어서 더욱 그렇다.

둘 다 오른손일 때는 도께아덜이 공중으로 한 번 돌며 후려칠 때 왔다 갔다 어께 넓이만큼 간격을 두고 이뤄지는데, 한쪽이 왼손일 때는 대각선 방향이 되므로 자칫하면 서로 부딪치게 된다.

그러니 교통사고(?)가 나게 마련이라 왼손잡이와는 같이 도리께질을 할 수 없다. ‘웬 도께랑 메지 말라’ 한 것은 정한 이치를 지적한 것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예전에도 도리께질이 아닌 경우까지 ‘웬’ 손을 들고 나올 것은 못된다. 더군다나 요즘 사람들을 살펴보면 왼손잡이가 의외로 많아 놀랍다. 옛날 같으며 왼손으로 숟가락 젓가락질을 하면 어른에게 욕을 사발로 얻어먹었는데, 이젠 아니다. 왼쪽 오른쪽을 다 쓰거나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기구를 잡아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습관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테니스, 탁구, 야구, 골프 같은 경기에서 왼손잡이가 기량이 탁월한 경우를 많이 본다. 의학적 혹은 유전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지 과문이라 입을 떼지 못해 송구스럽다.

제주시 월평동 본향 다락쿳당 옆 메밀밭. 출처=제주학연구센터.

그래서 옛날얘기 삼아 가산(可山)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려 한다. 암시적인 대목이니 같이 생각해 보자 함이다.

허생원은 그의 일생에 단 한 번 있었던 연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동이 나이만큼이나 오래전, 봉평장을 보고 잠을 자려 했지만 더워서 잘 수가 없었다.

달밤이었다. 메밀꽃이 핀 개울가 물레방앗간으로 갔다. 뜻밖에도 웬 처녀가 울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거기서 밤을 같이 지새게 되었다. 그 뒤로 그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동이도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버지의 성도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른 채 동이를 낳고 친정에서 쫓겨나 어떤 남자와 살았지만, 지금은 헤어져 살고 있다는 것이다.

늙은 허 생원은 냇물을 건너다가 빠져 동이의 등에 업혀야 했다. 허 생원은 자기와 똑같은 왼손잡이인 동이를 보면서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머니가 있다는 제천으로 동행하기로 하고 새벽길을 걸어간다.

동이가 왼손잡인 걸 눈으로 보면서 ‘이 아이가 내 아들이 아닌가’ 허생원은 그래서 마음 뒤숭숭해 하고 있다. 그러나 왼손의 유전자엔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다만, 소설에서 작자 이효석은 두 사람을 父子로 설정하려 했을 것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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