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근대와 공모하는 민낯, 그 왜상(歪像) 
식민주의 근대와 공모하는 민낯, 그 왜상(歪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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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89) 심윤경, '영원한 유산', 문학동네, 2021.
심윤경, '영원한 유산', 문학동네, 2021. 출처=알라딘.

1.
어떤 건축물은 그 특유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언제, 어떻게 지었는지, 그리고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으며, 어떤 일들이 생겨났는지……. 흔히 이러한 것들을 심드렁히 지나쳐버리면 일개 건축 구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동안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그 건축물과 함께 한 삶의 내력을 만날 수 있다. 

심윤경의 장편 '영원한 유산'을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여기에 부합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서 그는 할머니와 어린 시절 함께 찍은 한 컷의 사진 귀퉁이에 있는 작은 건물 하나를 발견하였다고 하면서, 그 건물에 대한 소설이 '영원한 유산'임을 언급한다. 그 건물은 “유럽식 뾰족한 탑과 흰 톱니모양 테두리를 두른 창문이 보이는,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276쪽) 그래서 작가는 '영원한 유산'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이 서양식 근대 건축물과 관련한 문학적 상상력을 펼친다. 

2.
그렇다면, 이 서양식 근대 건축물은 실제로 어떤 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소설에서도 주목하고 있듯, 이 건물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는 데 앞장 섰던 친일 매국노 윤덕영의 저택이었다가 “6.25전쟁 당시 미군 사령부로 사용될 때”(42쪽) ‘무전실’로 활용된 적이 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약칭 언커크(UNCURK)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이 같은 굵직한 흐름을 보더라도 '영원한 유산'에서 다뤄지고 있는 서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작품을 읽어가면서 우선 눈에 띈 것은 작품의 현재적 시간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1966년이 시작된 지 며칠 안 된 한겨울”(9쪽)로 시작되는데, 이 시기는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은 바로 이듬해 벽두 무렵으로, 대일(對日) 굴욕적 외교 관계를 수립한 정부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고양된 항일(抗日) 민족의식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던 때이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친일협력의 식민지 유산과 그 권력이 지속되고 있는 1966년을 작품의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이 소설에서 주목하고 있는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 함의한 소설적 진실과 깊숙이 연동된다. 이것은 작중인물 윤원섭이 자신의 선대 소유였던 그 건물에 들어서 있는 언커크를 찾아가 그 건물의 근대적 건축의 요모조모를 탐색 및 발견하는 과정에서 서사화된다. 

그렇다. 심윤경의 '영원한 유산'을 읽는 매혹은 친일파 윤덕영의 딸인 윤원섭이 언커크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선대의 건물에서 무엇을 애써 발견하고 싶은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 과정에서 윤원섭은 언커크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비록 '영원한 유산'은 역사의 당면한 문제, 가령 일제 식민지배와 한일협정, 그리고 한반도에서 유엔의 정치적 역학 등과 관련한 서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역사를 거쳐온 근대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서사적 탐구 속에서 우리들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식민주의 유산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3.
우선, 윤원섭이 언커크의 본부가 들어선 건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윤원섭에게 이 건물은 결코 낯설지 않다. 다른 사람들, 특히 동네 사람들에게 이 낯설고 새로운 유럽식 근대 건축물은 “귀신이 달라붙어 사는 곳”(86쪽)으로 윤씨 가문이 풍비박산이 날 만큼 저주스런 저택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윤원섭에게는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찾기 위해 안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유일한 방문객”(44쪽)으로서 멀리 떠나 있던 가족이 집에 돌아와 그 관계를 회복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하여 그에게 승강기와 테라스, 뾰족탑, 나선형 계단, 벽장, 서양식 의자와 테이블, 쿠션, 티포트, 찻잔 세트 등 당시 최첨단의 건축술과 최고의 명품으로 이뤄진 저택은 서양식 근대 건축의 미의식과 실용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바, 윤원섭에게 이 저택의 모든 것은 선대의 정치문화적 자긍심을 표방하는 상징자본이다. 문제는 이 상징자본이 언커크의 본부로 사용됨으로써 친일파의 왜곡된 식민지 근대의 인식이 한반도의 평화부흥이란 이데올로기가 덧보태지면서, 이 건물에 대한 역사의 왜상(歪像)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아버지 윤덕영 자작이 세운 이곳 벽수산장이 오늘날 한국 통일부흥위원회의 본부로 사용되는 것은 아버님이 간직하신 나라사랑의 뜻과 매우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은 그 사실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아버님의 높으신 뜻을 계승하기 위해 온 힘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님의 애국애족 정신은 다행히 명맥을 이었으나 그분의 높은 예술혼은 거의 알아보는 이 없이 버림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중략) 내 아버님이신 윤덕영 자작은 추사 김정희와 맞먹는 높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신 분으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이 저택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셨으며……” (217쪽)

윤원섭의 위 발언은 친일협력의 왜곡된 정치문화적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일병탄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하사금을 받은 매국노 윤덕영은 프랑스인의 설계도를 사들여 1914년부터 온갖 고급 건축 자재로써 저택을 짓기 시작하여 급기야 ‘한양 아방궁’으로 불리면서 1926년에 이르기까지 완공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식민지 시절 얼마나 이 저택 공사가 규모가 크고 화려했던지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세상 사람은 이 아방궁보다도 아방궁을 짓는 돈이 어디서 나온지 그 까닭을 더 이상히 생각한다”(‘동아일보’, 1921년 7월 27일)고 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저택은 친일협력의 왜곡된 식민지 근대 자체를 보여주는것이다. 기사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듯, 일제의 식민지 억압과 수탈로 점철된 식민지 근대에서 민중의 경제적 파탄은 중요 관심사가 아니다. 대신, 제국의 부국강병과 이에 적극 협력하는 친일파의 부귀영화만이 식민지 근대를 튼실히 구축시키고 있다. 윤덕영의 서구식 근대 건축은 이러한 식민지 근대를 표상하는 낯부끄러운 매국의 상징자본인 셈이다. 더욱이 한국전쟁 이후 미국 주도의 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 언커크의 본부가 이 건물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왜곡된 식민지 근대는 자취를 감춘 채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재건을 목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및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협력이 부각되는바, 윤원섭이 강조하듯 그의 아버지가 세운 저택은 이제 한반도의 평화와 부흥을 위한 국제사회의 목적에 부합하는 성격으로 탈바꿈한다. 

4.
이와 관련하여,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윤원섭에게서 보이는 왜곡된 식민지 근대에 대한 정치문화적 인식이 언커크의 존재와 공모하고 있는 현실이다. 언커크의 대표 애커넌 씨는 7개국(태국, 터키, 호주, 네덜란드, 필리핀, 파키스탄, 칠레)으로 이뤄진 언커크 내부의 불협화음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와 순탄하지 않은 실정을 고려할 때, “저택을 보수하고 복원하면서 회원국의 단합을 도모하고 언커크의 위신을 높일 수 있는 계기”(224쪽)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정치적 목적 아래 윤원섭이 제안한 저택 복원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 언커크는 언커크 대로 한반도에서 유엔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는 데 목적이 있을 뿐 한국 사회에 침강된 일제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역사적 과제에 대해 천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언커크와 윤원섭은 각기 서로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공모를 하게 된다. 드디어 “저택은 윤덕영의 정신을 기리는 친일 박물관으로 변모하는 중이었고, 윤원섭은 궁극적으로 저택을 개인 재산으로 돌릴 방법을 강구하”(252쪽)게 된 것이다. 

심윤경의 '영원한 유산'은 친일파를 단죄하자는 정치적 전언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 그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는 왜곡된 식민주의 근대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을 수행한다. 아울러 그 식민주의 근대와 공모하고 있는 한반도를 에워싼 국제사회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동시에 성찰한다. 이 성찰은 분명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저택 복원 사업 도중 화재가 일어나 대대적인 재건 공사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혹시 앞으로 진행될 재건 공사에서 과거 왜곡된 식민주의 근대의 치부를 완전히 은폐한, 달리 말해 비정상적 타락한 역사를 지워내버린 또 다른 권력의 유산(국가 문화재로서 등록된 근대 건축 유산)이 영원한 힘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우를 쉽게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의미심장한 문제를 제기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윤덕영 씨의 썩은 정신과 나라를 팔아먹은 자금으로 만들었는데도, 저택은 아름다웠다.”(252쪽) 친일협력 세력에게 이 저택은 왜곡된 식민지 근대를 한층 미화시키는 데 적극 활용되는 미학적 이데올로기의 건축물이면서, 이러한 식민주의 유산과 권력을 최대한 정치외교적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문화의 상징자본이다. 따라서 이 치명적 아름다움의 실재를 뚜렷이 응시하는 게 긴요한 과제이다.

5.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윤덕영 저택은 소설에서처럼 1966년 화재로 건물의 부분이 소실된 채 남아 있다가 1973년에 도로 정비 사업을 하면서 완전히 철거된 채 건물의 정문 돌기둥만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언커크도 1973년 12월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해체되었다. 그렇게 윤덕영의 저택이 함의한 왜곡된 식민지 근대와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부흥을 위한 유엔의 기구는 표면상 사라졌다. 하지만 그 땅에는 일반 주택이 들어서 있듯, 여전히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일제의 식민주의 유산과 권력, 그리고 미국 주도의 유엔의 국제질서 아래 우리는 일상을 살고 있다. 일상은 이렇게 결코 가볍고 만만한 게 아니다. 혹시, 우리는 일상의 역사를 성찰하는 힘을 벼리는 데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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