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

그동안 제주도는 온갖 난개발로 섬의 모든 지표가 그 임계점에 와있습니다. 한때 항공인프라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제주 신공항 또는 제2공항이 도민숙원사업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500만 명대였던 관광객이 불과 10여년 만에 벌써 한해 1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오가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메가 관광시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관광객을 더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제2공항의 전제인데 이 전제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 첫 단추를 제주도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 연휴 직후 도민여론조사로 운명이 갈릴 제2공항 문제와 관련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양심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네 분 원로의 특별칼럼을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차례로 싣습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강우일 주교, 한국문단의 거장 소설가 조정래 선생, 건축계 원로인 환경건축가 김원 선생,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바라보는 제주 미래와 제2공항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제주의소리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제주의소리

지금 인류는 미증유의 체험을 하고 있다. 온 세상이 정신없이 달리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갑자기 황색 신호등에 멈추어선 것 같다. 그런데 이 황색 신호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틀렸다고 예상한다. 백신접종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코로나 다음의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에는 속수무책이다. 바이러스들의 등장은 산업혁명 이후의 물질문명이 초래한 지구의 기후위기가 근본적 원인이고, 현재까지 무제한으로 가속화되어온 <생산-소비-폐기>의 성장 시스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자연 생태계가 앞으로 어떤 재앙을 우리에게 가져올지 알 수 없다. 

제주의 역사도 큰 전환점에 왔다. 내가 제주에 입도한 20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파괴되고 훼손되어왔다. 간선도로만 연북로, 애조로, 번영로 같은 광폭의 도로망들이 생겼다. 도로 공사가 이루어질 때마다 이산화탄소를 먹어 없애주는 숲과 나무는 헤아릴 수 없이 잘려나가고 탄소를 뿜어대는 자동차들의 행렬은 급증했다. 타지에서 오는 방문객들은 제주가 너무 개발되어 제주다움을 잃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선진국들은 자동차들의 도심 진입을 점점 엄하게 규제하고 도보나 최소한의 공공 교통수단만 허용한다. 이들은 인간이 만드는 건축물이나 시설보다 자연이 갖는 가치가 훨씬 중요함을 깨닫고, 도심에 숲과 시냇물을 복원한다. 제주는 아직도 도로를 넓히는 개발도상국의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수십 년 자란 가로수들을 베어내고 보행자들을 위한 인도를 잘라내어 자동차도로를 넓히고 있다. 우리 행정당국의 ‘생태인지감수성’은 저개발국 수준이다.

제주가 제주도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지속가능한 자연유산으로 살아남으려면,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한다. 제주의 가장 큰 가치는 제주만이 보유하고 있는 자연과 생태계다. 그런데 제주의 생태계는 이미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제주의 모든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수자원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제주의 대표적 생태하천이던 산치천이 부패하여 악취를 풍기고, 수질악화로 이미 폐쇄 판정이 난 서부 지역 한림읍 옹포수원지의 정수장이 지하수 부족 때문에 아직 폐쇄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가동 중이다. 제주의 유입인구급증으로 지하수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용천수의 절반이 말라 멸실되고 사람들이 쏟아내는 쓰레기도 이미 처리가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제주도에서 하루 평균 배출되는 쓰레기양은 2011년 764톤에서 2018년 1,303톤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제주도는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전국 지자체 중 1위를 기록했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도내 쓰레기 매립 시설은 이미 “99.9%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도내가 포화상태이니 몰래 해외로 밀반출했다가 2019년 3월 발각되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필리핀으로 밀수출됐다 반송된 ‘압축 쓰레기’들이 제주도에만 5만1,808톤 쌓여있었고 추가로 9,262톤은 군산항, 광양항 등 육지 부두에 쌓여있었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이미 제주는 하와이나 오키나와보다 두 배 이상인 1,500만 명의 방문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2018년 관광입국을 선언하며 2020년까지 4천만 명의 외국인 방문을 목표치로 삼았다. 그런데 제주에 또 하나의 공항을 만들기 위한 목표가 2030년 4400만 명의 항공수요다. 이는 1년에 제주도를 방문하는 내방객 수를 2200만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열도 전체가 관광객 4천만 명 유치를 목표로 삼았는데 그 면적의 약 200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섬 제주도에 22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파괴행위다.

서울과 제주 간 항공노선은 이미 세계에서 최다비행 기록을 보유한 항로다. 제주에 또 하나의 국제공항을 건설하고 현재의 두 배에 가까운 방문객을 받는 행위는 이미 상처투성이인 제주의 하늘과 땅과 물과 온갖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폭행이다. 이러한 탐욕의 잔치는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 무모한 계획이 철회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청원한다. /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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