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4월 동광로·서문지점 폐점 예정…통폐합→건물 매각 ‘금융 서비스 악화’ ‘고용창출 악화’ 우려

제주은행 본점 모습. 제주시 중앙로에 위치한 본점은 1969년 출범한 제주은행 52년 역사의 산실이다. 최근 본점을 노형동 소재 건물로 임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은행 본점 모습. 제주시 중앙로에 위치한 본점은 1969년 출범한 제주은행 52년 역사의 산실이다. 최근 본점을 노형동 소재 건물로 임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기사보강 : 오후 5시30분] 제주은행이 최근 제주시 동(洞)지역 일선 지점 두 곳을 통폐합하거나, 일선 지점이 철수한 건물을 잇따라 매각하면서 지방은행의 지역 금융서비스 역할이 점차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1969년 설립돼 창립 반세기를 넘긴 제주은행이 한때 도민사회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이었던 위상은 온데간데 없고 지주회사인 ‘신한금융의 제주지점’으로 점차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이어진다.  

제주은행은 오는 4월26일자로 동광로지점(1991년 개점)을 연삼로금융센터로, 서문지점(1973년 개점)을 본점 영업부로 통·폐합한다. 개점 48주년을 맞은 서문지점의 경우 서귀포·한림·남문·동문·모슬포지점에 이어 제주은행 일선 지점 중 6번째로 문을 연 곳이다. 동광로 지점은 올해로 개점 30주년을 맞는다. 

모바일 등을 통한 온라인 뱅킹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실적이 뒤처지거나 상권 환경이 현저히 바뀐 점포의 철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한 제주 원도심 한복판의 상징적 금융서비스 공간인 서문지점이 사라지는데 대해 지역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올해 개점 30주년을 맞는 동광로지점의 경우에도 지역주민과 인근 상인들의 이용이 여전히 빈번한 상황이어서 당장 지점 통폐합에 따른 금융서비스 불편을 우려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기업, 소상공인 및 영세서민에 대한 금융서비스 비중이 높은 지역금융기관들이 대거 퇴출되면서 지방 소상공인들과 주민들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제주은행의 일선 지점 두 곳의 폐점은 이미 폐점된 다른 지점들에 이어 지역금융서비스 악화와 중장기적으로는 인력 구조조정 등 지역 고용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주도민 염원으로 출범한 제주은행

제주은행의 역사는 곧 제주 금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많은 제주도민들은 악성 고리대금업자들로 인해 상당한 빚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악순환을 맞고 있었다. 제조시설이 전무해 공산품 등은 모두 다른 지역에서 반입했다. 쌀과 같은 생필품까지 다른 지역에 의존하면서 제주 경제는 갈수록 열악해져만 갔다.

그러던 1967년 구자춘 제15대 제주도지사가 도내 유지들을 만나 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1967년 제주는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으니 악성 고리대금 업자들이 생겨났고, 제주 서민들은 점점 빚더미 내몰렸다. 제주의 지방은행 설립 필요성이 대두된 배경이다. 

제주은행 설립은 4.3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뒤 플라스틱 생산업체를 운영하며 자수성가하던 사업가 김봉학(1922~2001) 씨가 주도했다. 김봉학 씨는 이후 초대 제주은행장을 맡았다. 

고(故) 김봉학 초대 행장은 도내 유지와 재일동포 등을 만나 지방은행 설립 납입자본금을 모았다. 당시 지방은행 설립을 위해서는 2억원이 필요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은행 ‘대구은행’도 1억5000만원 밖에 모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정부는 지방은행 납입자본금 규모를 1억5000만원으로 낮췄고, 드디어 1967년 대구은행이 우리나라 지방은행 설립의 첫 역사를 썼다. 대구은행을 시작으로 같은 해 부산은행, 이듬해 충청은행과 광주은행이 각각 설립됐다.  

대구은행이 출범한 이듬해인 1968년 11월 김봉학을 주도로 제주은행 설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해를 넘겨 1969년 제주시 이도1동 현재 본점 자리에서 전국 5번째의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이 드디어 설립됐다. 제주은행 개점식에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가 참석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관심도가 높았던 명실상부한 지방은행으로 첫 발을 뗐다. 

발기인 16명이 12만7000주를 인수하고, 제주 출신 재일교포와 도민들이 7만3000주를 인수하는 등 총 20만주를 인수했다. 열악한 제주 여건에서도 대구은행도 이루지못한 납입자본금 2억원을 넘겨 전국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 

 도민에 외면 받기 시작한 지방은행

제주은행은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제주 유일의 지방은행이다. 또 제주 최초의 주식시장 상장 기업이다. 

제주은행은 설립 후 자본금을 증자해 서귀포지점, 서울사무소, 한림지점, 남문지점, 모슬포지점, 서문지점 등으로 꾸준히 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1996년에는 총예금 1조원을 돌파하고,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에 지점을 개점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IMF 사태 당시 각 은행에 대한 경영개선조치로 인해 제주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으나, 도민들이 다시 힘을 보냈다. 

‘도민주 갖기 운동’을 통해 9201명의 도내·외 도민이 주식 무려 942만8530주를 사들여 제주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도민들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던 제주은행은 2000년에 부실 은행으로 평가 받았고, 완전 감자를 통해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이같은 완전 감자로 인해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을 사들였던 도민들의 제주은행 주식이 모두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아직도 제주은행과의 거래를 극구 거부하는 도민들 상당수는 완전 감자 당시 제주은행 주주였으며, 이들은 “휴지조각으로 변한 주식을 보상해주면 제주은행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2002년. 제주은행이 결국 신한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되자 제주은행에 대한 도민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더이상 지방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제주은행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높아졌다. 

제주은행이 오는 4월26일 제주 동광로지점과 서문지점을 폐점한다. 동광로지점은 연삼로금융센터로 통합, 서문지점은 본점 영업부로 통합된다. 

 지점 통·폐합→건물매각 수순...금융서비스 갈수록 후퇴

최근 제주지방우정청은 제주시 한림읍의 협재우체국과 서귀포시 예래동의 예래우체국은 폐국 절차를 밟고 있다. 

우체국은 우편 등 우정서비스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는데, 지역 주민들은 협재우체국과 예래우체국 폐국 계획에 대해 지역 금융서비스 악화 등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점 축소는 곧 지역금융 서비스의 악화를 의미하는데, 제주은행도 일선 영업점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동문지점과 남원지점, 도남지점, 용담출장소, 신산출장소, 건입출장소, 서사라출장소, 신라호텔출장소 등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울 영등포와 강동, 양재동, 광주 등 다른 지역까지 뻗었던 지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아 현재는 서울지점과 부산지점 2곳만 남아 있다. 물론 이들 점포 중 도외 점포와 신산·건입·서사라출장소는 지주회사와 관계없이 IMF 사태 영향으로 문을 닫았다.

1997년 기준 46곳(출장소 9곳 포함)까지 늘었던 제주은행 지점은 이전과 통폐합 등을 거쳐 현재는 33곳(출장소 3곳)으로 줄었다.

오는 4월 동광로지점과 서문지점이 사라지면 서울과 부산을 제외해 제주에서 영업중인 지점은 총 27곳으로 줄어든다. 또 제주은행 영업점 상당수가 제주시 동(洞)지역에 몰려 있다. 제주시 동부권에는 영업점이 단 1곳도 없으며, 제주시 서부권에는 한림지점이 유일하다.    

문제는 또 있다.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편입된 후 일선 지점, 출장소의 통폐합 후 폐점된 건물을 매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 이전 또는 확장 이전 이라는 그럴듯한 수식어로 기존 점포가 폐쇄되고 나면 건물 매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옛 동문지점, 도남지점(성환상가)이 점포 폐쇄후 바로 매각됐다. 현 대정읍 소재 모슬포지점인 경우 제주은행 소유였던 건물을 매각하고 현재는 같은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건물주가 세입자로 전환된 셈이다. 

중문지점도 기존 소유했던 건물을 매각 추진하면서 현재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오는 4월 통폐합 예정된 서문지점도 본점 영업부로 흡수되고 나면 건물 매각은 당연한 수순으로 예상된다. 그외에도 실적이 부진한 일부 점포의 추가 통폐합이 향후 진행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제주은행 출범의 뿌리인 본점을 이르면 내년 노형 소재의 임대 건물로 이전하고 나면 본점 건물과 부지 매각도 불가피하다.

이미 본점 건물은 4~5년전부터 본점 이전 이슈와 함께 민간에 매각 협의가 진행된바 있다. 그러나 현재 제주은행 본점 주차장 부지 내의 동문수산시장과 맞닿은 제주은행 소유 건물들은 시장 상인들이 임대해 사용 중으로 매각시 상인들과의 진통도 예상된다.  

지방은행은 지역 금융서비스 강화와 지역 고용창출이라는 일정한 공적 역할에도 책임이 있다. 제주은행이 도민들의 염원과 십시일반 정성으로 창립했고, 창립이래 도민 자금으로 성장해왔기에 도민 사회에 대한 사회공헌은 당연한 의무다. 

현재의 영업점 통·폐합은 지역금융서비스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영업점의 통·폐합이 지금처럼 계속되면 인력 구조조정과 고용 창출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도민 사회 공헌과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해당 지점의 통폐합은 상대적인 실적 저하와 금융환경 변화 등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일선 지점 통·폐합은 지방은행으로서의 제주은행이 가야할 방향과는 배치되는 것이란 비판이 강하게 제기된다.  

2021년 2월 기준 제주은행 영업점 현황. 대부분의 영업점이 제주시 동(洞)지역에 몰려 있다. 

 ‘신한금융 제주지점’이라는 쓰린 비판  

제주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편입되면서 제주은행장장 자리는 신한금융에서 ‘내리 꽂는’ 자리로 바뀌었다. 당연한 결과다.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경영 전반을 직접 관리할 CEO를 임명하는 것을 두고 시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제주은행이 여전히 도민사회를 향해 제주 유일의 지방은행이라고 주장하고 매년 제주도 금고 수주 경쟁에서 이를 부각시키고 있으면서, 도민 정서나 지역 실정과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지주회사인 신한금융이 임명한 은행장이 주도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지주회사인 신한금융이나 제주은행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계의 시장 환경이 모두 '디지털화'로 가고 있는데 지방은행이라고 트렌드를 쫓지 못하고 오프라인 지점 운영에만 매달리면 결국 금융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제주은행은 현재 '디지털화'를 위한 대대적인 전산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약 850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전산시스템 개발로 더이상 지역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 본격적인 온라인 영업에 사활을 걸겠다는 전략이다.

사기업으로서 당연한 공격적 투자지만,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해 지주회사의 자금투자가 아닌 폐점된 점포 건물을 무조건 매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이 제주도내 자금 유치로 얻은 이익과 자산 건물 매각으로 조성된 기금을 활용해 온라인 공간에서 전국 금융시장을 무대로 영업을 펼치겠다는 전략은 '탈 제주화' '지역 금융서비스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간과해선 안된다.  

이미 도민사회에선 제주은행을 향해 “지주회사인 신한금융의 입김이 갈수록 커지면서 도민 사회가 아닌 신한의 눈치를 우선 본다”며, “차라리 그럴바엔 제주은행이라는 간판 대신 ‘신한금융 제주지점’이라고 하는게 낫다”는 비판까지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주은행 직원은 “이미 내부에서는 서문지점 건물을 매각할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고, 본점 역시 이전하면 매각될 것으로 회자된다”며 “모바일 금융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시중 은행이 오프라인 영업점 통·폐합에 나서고 있고, 제주은행도 이런 흐름이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결제·송금·자산관리·크라우드 펀딩 등 금융과 IT가 융합된 산업을 의미하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이 합성된 '핀테크 시대'에 제주은행의 디지털화를 무조건 나무라긴 힘들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제1금융권 임원 출신의 금융 전문가 K씨는 “최근 네이버의 제주은행 인수설이 단순한 해프닝이나 오보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은행업 면허를 가진 중소형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은 핀테크 산업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는 IT 대기업들에겐 매력적인 합병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도민들이 세운 지방은행이 도민들 의사에 반한 합병이나 결과적으로 대기업 먹잇감으로 변질되어선 안될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생태계에 대응하면서도 도민의 기업이란 정체성은 더욱 강화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총 10곳이던 전국 지방은행은 현재 제주은행을 포함해 대구·부산·광주·경남·전북은행 등 총 6곳만 남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방은행 4곳은 충청은행과 강원은행, 경기은행, 충북은행이다. 도민들은 제주은행이 '살아 있는' 진정한 도민 은행으로 남길 원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