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목판화가 이철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그동안 제주도는 온갖 난개발로 섬의 모든 지표가 그 임계점에 와있습니다. 한때 항공인프라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제주 신공항 또는 제2공항이 도민숙원사업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500만 명대였던 관광객이 불과 10여년 만에 벌써 한해 1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오가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메가 관광시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관광객을 더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제2공항의 전제인데 이 전제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 첫 단추를 제주도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 연휴 직후 도민여론조사로 운명이 갈릴 제2공항 문제와 관련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양심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네 분 원로의 특별칼럼을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차례로 싣습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강우일 주교, 한국문단의 거장 소설가 조정래 선생, 건축계 원로인 환경건축가 김원 선생,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바라보는 제주 미래와 제2공항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이철수 판화 ⓒ제주의소리
이철수 판화가. 그는 평생을 오롯이 생명과 평화, 그리고 환경의 가치를 목판에 새겨온 시대의 판화가다.  ⓒ제주의소리

아직 젊던 날 문화답사팀의 일원으로 제주를 찾은 뒤로 드문드문 드나드는 육지 손님입니다. 송악산 해안 동굴과 정방폭포에 얽힌 아픈 역사를 진지하게 듣고 본 게 한 삼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 시절의 제주도는 ‘산이영 바당이영 몬딱 좋은게 마씀’이었습니다.

청정 제주였다는 말씀입니다. 곶자왈에서 넓은 공지를 찾아 사람들과 둘러앉으면 곶자왈이 초록 사랑방 같았습니다. 그 숲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날도 있었지요. 집 울타리에, 밭가에, 무덤 자리에, 쌓아 올린 검은 돌담은 무시로 바람이 드나드는 너그러운 품이라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잘 익은 감귤은 꽃처럼 환하고 늙은 팽나무와 키 큰 비자나무숲은 장관이었습니다. 바다와 멀지 않은 마을에는 우람한 소나무들이 의젓하고 동백나무 숲은 붉고 푸른 보색의 대비가 선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동백 통꽃이 붉게 떨어지면 땅에 누운 억울한 주검인 듯도 보였습니다. 아픔이 많은 섬이어서요. 그리고 보니 동백 곳에 유난히 아픈 역사가 많습니다. 그 섬, 검은 돌담 아래서 애잔하게 꽃피우는 제주 수선도 보았습니다. 야자수의 이국적 풍모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 모든 것들 사이로 바람 거칠게 불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비행기가 못 뜨고 못 내려 발이 묶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제주가 최고의 신혼여행지이기도 했지요? 뭍에서는 귀하게 여기던 섬이었습니다.

ⓒ제주의소리
사진=강정효 사진가. ⓒ제주의소리

제주가 그렇게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지만, 제주 사람들 아니면 거듭거듭 다시 찾았을 리는 없습니다. 제주에 사는 좋은 사람들을 보려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던 거지요. 그런데, 바다를 배로 건넌 기억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니 늘 하늘길로 다녔습니다. 그 하늘길을 위해 제2공항을 만들자고 합니다. 안 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공항은 이용자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입니다.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된 지 한 20년 되었을까요? 그 이후로 제주가 크게 변했습니다. 개발 광풍으로 해변이고 중산간이고 할 것 없이 풍경이 달라진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먼저 청정을 잃어버렸습니다. 돌이키기 어려운 일입니다. 

밖에서 보기에도 제주는 이미 쓰레기가 차고 넘치는 섬입니다. 그 쓰레기를 필리핀에 수출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산 것도 기억합니다. 이런 일이 제주도에서 벌어진 것을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이 되었으니 쓰레기가 넘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제주의 지질과 토양을 감안하면 걱정은 더 커집니다. 화산섬에서 대량의 식수와 용수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섬에서 화산암반수라며‘삼다수’를 병에 담아 팔 때부터 정신 나간 것 아닌가 했습니다. 물 부족은 제주 사람들이 이미 실감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씻고 마실 물도 필요하지만, 몸 씻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음식을 만들 수 있어야 관광이 가능합니다. 그 많은 물을 제주 어디에서 길어 올리며 그 많은 오폐수는 또 어디에 버리나요? 정화시설도 이미 과부하 상태라고 하셨지요? 제주 청정해안 어딘가로 정화가 덜 된 오폐수가 흘러들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제주 바다에 이미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것을 압니다. 아름다운 연산호 군락지에서 해송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정 범섬 송악산 대정읍 그 낯익은 지면이 모두 연산호 군락지입니다. 천연기념물입니다. 그 바다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지요? 그 바다가 죽고 나면 제주는 더 이상 제주가 아닐 겁니다. 산호바다의 아름다움을 다 잃고 나면 그때는 제주 바다라고 부를 까닭도 없을 테고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의 바다가 되겠지요.

ⓒ제주의소리
제주의 바다 / 사진=이철수 판화가. ⓒ제주의소리

인구 70만의 섬에 1,600만 관광객이 적다고 제2공항을 만들려고 하나 봅니다. 일설에는 4,500만명 공항 이용객 수용을 염두에 두고 제2공항을 준비한다던데 정말 그게 사실일까요? 믿기지가 않습니다.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해안도로를 따라 수없이 늘어선 카페와 식당이 꼴불견인데 그 길에 수많은 자동차와 여행객을 더 풀어놓자는 것일까요? ‘환경 수용성 평가’라는 게 있지요? 제주가 환경 파탄에 이르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관광객 숫자가 얼마쯤인지 알아보자는 겁니다. 가정에서도 집의 크기와 주방 용량을 생각해서 손님을 청하는 법입니다. 작은 집에서 큰 손님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식구 많은 제삿날 화장실을 생각해 보세요. 제주는 이미 ‘과잉관광’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그게 진실이지요! 제일 큰 피해를 상시로 입고 있는 건 제주도민들이지요? 사실 전문가가 연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저 같은 손님들에게 물으면 곧 답이 나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제주도가 일 없이는 못 올 곳이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디자인이 세련된 공간은 많아졌지만, 제주 관광의 질이 높아졌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음식도 천편일률이라 찍어낸 듯 뻔한 음식에 식상해서 저는 현지인이 자주 간다는 식당을 지인들에게 물어 찾아갑니다. 근년에 제주도에서 ‘러시아워’를 경험했습니다.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익숙합니다. 제주에 가면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합니다. 싫지요! 싫은 게 당연합니다. 자주 가고 싶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도 좋지만, 제주가 먼저 사람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어야지요. 

항공사, 여행사, 호텔 리조트 콘도, 식당, 카페, 술집만 돈을 벌 수 있으면 다 되는 건가요? 그마저도 과당경쟁으로 속 빈 강정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세수가 좀 늘고...그러면 되는 걸까요?

여하튼, 코로나 이전까지 공항 안은 출입국 업무로 긴 줄을 서고, 공항 밖은 자동차를 빌리려는 사람들과 여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와 택시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불편’합니다. 불편하지요! 그래서 공항 하나를 더 만들자고 하는가 봅니다. 서귀포 성산읍 일원이 비행장 부지라지요? 

사진=강정효 사진가. ⓒ제주의소리
사진=강정효 사진가. ⓒ제주의소리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특별하고 특별한 섬입니다. 남방 큰돌고래와 연산호의 바다, 자연이 빚은 화산섬의 절경들, 물질하는 해녀가 숨비소리 하는 귀한 섬입니다. 그래서 제주입니다. 제2공항 건설로 싸구려 관광수요나 충족을 시키자고 할 때가 아닙니다. 제주도는 더 청정해 져야 합니다. 경관과 문화유산을 관광 상품으로 팔자고 해도 더 이상의 경관 훼손은 막아야 하고 개발은 극도로 절제되어야 합니다. 이제 훼손 없는 자연을 조심스럽게 누리는 친환경 생태관광이 근간입니다. 관광 선진지역에서도 그게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마침‘코로나19’의 확산으로 우리 일상이 큰 변화를 겪는 중입니다. 여행문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 떼를 지어 다니는 단체관광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주도를 드나드는 손님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공항이 급하지 않습니다.

제주의 자연과 제주 사람들의 삶과 역사와 문화까지를 두루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으면 좋지 않을까요? 더 세련되고 건강한 제주 여행을 제주 스스로가 권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세계 유수의 관광지가 지금은 지극히 위험한 우범지역이 되어 있습니다. 제주도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다지요? 그것도 과잉 관광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예전부터 장터 가까운 마을이 인심이 사납다고 했습니다. 시장의 논리에 제주의 미래를 온통 내맡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경제적 이해가 제2공항 건설 논의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을 테니까요.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행이 삶의 질을 바꾸어내는 힘이 되는 거지요. 지친 심신을 회복하게도 하고 마음 깊은 데서 자기 긍정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제주 올레에 순례하듯 사람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좋은 모범이지요. 세련되고 부가가치가 높은 생태관광 모델을 개발하는 한편으로 그렇게 건강한 여행문화가 제주에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소비와 얕은 재미를 쫓아가는 경박한 문화가 여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주의 미래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개탄스러울 겁니다.
 
제주도가 도떼기시장이 되면 좋으시겠습니까?
회복 불능으로 망가져 버린 생태계를 확인하면 그때는 늦습니다.
제주도는 지금 여기서 대반전의 기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멀리서 손님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주가 여전히 갈 만한 곳인가?
제주가 사귈만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가?
값싼 제주를 선택할 생각이신지요?
끝끝내 거기서 살아야 할 사람이 누군데요?

이철수 판화가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제주에 '제2공항'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 이철수 작품 
이철수 판화가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제주에 '제2공항'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 이철수 작품 
이철수 판화 ⓒ제주의소리
이철수 판화 ⓒ제주의소리
이철수 판화 ⓒ제주의소리
이철수 판화 ⓒ제주의소리

 

이철수는? 

이철수는 충북 천등산 다릿재와 박달재 사이에 산다. 40년 인생을 오롯이 판화와 함께 했다. 1980년대 이철수는 대표적인 민중 미술가로 불렸다. 낫을 펴든 농군, 절규하는 여공, 아기 업은 행상 아낙네를 그렸다. 대형 집회 현장엔 어김없이 이철수의 판화가 걸개그림으로 내걸렸다. 민주화운동에 목판화 시대를 열었다는 찬사를 받던 그는 1983년 홀연히 농촌으로 갔다. 사회변혁 도구로 미술을 선택해 1980년대 민중판화 대표작가로 인정받으면서도 이념투쟁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갈구했다. 서울 출신이었던 그가 귀농을 선택한 이유다. 귀농하면서 자연에 깃든 삶의 본질을 파고들고 생명과 평화의 가치에 천착하면서 일상 속 지혜의 그림이 나왔다. 농부가 된 이철수의 판화는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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