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 창비 주간 논평] "제주의 미래를 위해 반대합니다"

제주에 내려온 지 6년째지만 여전히 지역 현안에 대해 말할 때엔 망설여진다. 최근 불거진 첨예한 갈등의 상당수가 난개발과 급격한 인구 유입이 야기한 환경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자연과 이해할 수 없는 대규모 개발계획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나 역시 그 분노를 공유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개발되기 전에는 자그마한 돌담으로 감싸진 푸른 밭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은 복잡해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개발에 반대한다고 외치기엔 나는 이미 그 개발의 톡톡한 수혜자가 아닐까, 같은 생각들을 떨쳐내기 어렵다. 제주에 급격히 사람이 몰리면서 발생한 수많은 문제들을 전하는 기사를 근심 어린 얼굴로 읽어 내려갈 때, 나는 스스로가 그 문제를 야기한 하나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 편의적인 망각에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제2공항 문제다. 2015년 국토부에서 기습적으로 성산읍 네 개 마을을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발표한 뒤 공항 건설을 막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도민들은 기존 제주공항 확장과 제2공항 건설 방안을 두고 공론조사를 추진할 것을 건의했지만, 원희룡 도정은 제주도가 중앙정부에 요청한 사안에 대해 공론조사를 요구할 수는 없다며 완강한 거부 의사를 보여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9년 11월 19일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정부는 제주도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공론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회피함으로써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도민 사이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당시 원희룡 도지사는 김현미 장관이 자신과의 통화에서 ''국민과의 대화'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제2공항은 이미 도민의 여론을 확인한 사안이고 현 제주공항의 안전, 시급성,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임을 직접 확인시켜주었다'라고 공개했다.) 

'4000만 관광객'이라는 의도된 착시효과 

제주도에 두 개의 공항이 필요할까? 국토부와 제주도는 오랫동안 '그렇다'고 주장해왔다. 제주공항 이용객은 35년간 꾸준히 증가해왔으며 현재 제주공항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것, 그리고 현 제주공항은 구조상 한계로 용량 증대에 제약이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찾는다고 계산했기에 공항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걸까? 제주도에서 밝힌 숫자는 자그마치 연간 4000만 명이다. 이 숫자를 들으면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제주도에 연간 4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는 예측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의 공항은 너무 작으며 새 공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이 숫자는 교묘한 착시를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제주공항 이용객의 수는 얼마일까? 이미 그때 30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는 한 해 동안 제주를 찾은 사람이 3000만 명이라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주에 온 관광객은 공항을 두 번 이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9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의 수는 1500만 명 정도였다. 그렇다면 제주도에서 내세우는 4000만 명이라는 숫자에 현혹될 일은 아니다. 실제로 늘어나리라 예측되는 건 500만 명 정도 규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와 제주도 입장에선 500만 명 더 받자고 멀쩡한 마을 네 곳을 없애가며 공항을 짓겠다고 하는 건 궁색하니 '4000만 이용객' 운운하며 적극적인 착시 효과를 조장해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제주도가 공항 건설의 이유로 내세운 '항공 수요 4000만 명설'은 '제주 관광객 4000만 명설'과 혼동되면서 오히려 공항 건설 반대 논리에 힘을 실어준 격이 됐다. 현재 1500만 관광객으로도 몸살을 앓는 제주에 40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몰려온다면 섬의 환경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리라는 현실적인 공포가 도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 하수처리 및 쓰레기처리 시스템은 당장의 배출량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흘러든 바다는 황폐화된 지 오래이며 인근 주민들은 악취 때문에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린다고 아우성이다. 거기에 필리핀으로 쓰레기를 불법 수출했다가 반송된 사건까지 겹치면서 아무리 지역경제 활성화가 중요하다 해도 제주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관광객의 방문이 제주 사람들의 삶의 질을 급격히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분기점이 될 여론조사 

제2공항 건설 반대 투쟁이 무르익을수록 도민들 사이에서 제주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커졌다. 그 결과 작년 12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은 '제2공항 도민 의견수렴 관련 합의문'을 발표하고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찬반 여론조사를 벌이기로 합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2공항 건설을 원점 재검토하는 안을 포함한 공론화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버텨왔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전향적인 합의였다. 합의문에 따르면 여론조사를 통해 성산읍을 포함해 도민 2000명의 의견을 묻고 별도조사를 통해 성산읍 주민 500명의 의견을 따로 묻게 된다. 이 여론조사는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지만 찬반 양측 모두 조사 결과에 승복하기로 약속한 만큼 제2공항 건설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진 않다. 제2공항 건설 반대 측이 오랫동안 요구했던 건 공론조사 혹은 1만 명 규모의 심층 여론조사였다. 공론조사가 어려울 경우 각기 다른 조사기관에 의해 3회가량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표성과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지만 그와 같은 목소리는 묵살되었고 결국 2500명이 참여하는 단 한 번의 여론 조사로 제주의 미래를 판가름하게 되었다. 사안에 대한 공개적이고 투명한 토론과 논의의 장을 마련하지 않은 점과 성산읍 주민 500명의 여론을 따로 묻는 점 역시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아쉬움과 별개로 이번 여론조사의 의미를 폄훼하는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제2공항 찬성 측 일각에서는 국책사업 추진을 여론조사에 맡기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결과가 입맛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여차하면 승복하지 않겠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반대 측 일각에서도 절차적 공정성의 한계를 이유로 자칫 이번 여론조사가 국토부와 제주도의 명분 쌓기용으로 활용되진 않을지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중립을 지켜야 할 제주도가 노골적으로 제2공항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는 현실은 그런 의심이 일정 부분 타당함을 보여주지만 그걸 근거로 이번 여론조사의 의미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이번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반대 측 단체들부터 대대적인 보이콧에 들어갔을 것이고 이제까지 무산된 수많은 토론회와 공청회처럼 결국 이번 여론조사 또한 무산되고 말았을 것이다. 제2공항 반대운동이 처음부터 일관되게 사안에 대한 공론화를 요구했음을 기억한다면 국토부와 제주도의 '공론화 불가' 방침을 바꿔 여론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 자체가 제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했던 사람들이 거둔 소중한 결실이다. 국가가 추진하는 국책개발사업의 진행 여부를 놓고 제주 지역주민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이 '첫' 여론조사는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다른 제주 개발사업의 추진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제2공항 건설 여부에 대한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는 설 연휴가 끝난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에 걸쳐 실시된다. 아무래도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사흘 동안 휴대전화를 나는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마침내 아주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내게 전화가 걸려온다면 나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 반대합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의 제휴에 의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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