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3기 대학생 기자단]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노출...제도 개선 절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제3기 대학생기자단이 지난해 6월29일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성세대와는 차별화된 청년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제주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저널리즘에 특별한 관심을 갖거나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그리고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대학생기자단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성글지만 진심이 담겼습니다. 제주의 미래를 꾸려갈 인재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청춘의 날 것을 만나보십시오. [편집자]
택배노동자 김지환씨. ⓒ제주의소리
택배노동자 김지환씨. ⓒ제주의소리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경기침체가 계속됐지만 택배산업은 예외다. 비대면 소비가 불가피해지면서 택배매출은 크게 급증했다. 동시에 택배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높아지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추정된 택배노동자 과로사만 16건에 달했다. 

관련 사건이 잇따르자 소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법’으로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뒤늦게 제정됐으나 본질적인 노동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보여주기 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택배노동자와 동행한 하루, 그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5년차 택배노동자인 김지환(44) 씨는 아침 일찍부터 오전 배송을 시작한다.

“하루에 배송해야 할 물량이 보통 170개, 180개가 넘어요. 이걸 다 돌리고 저녁이라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려면 아침부터 부지런 떨어야죠”

제주시 연동 일대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택배박스에 적혀진 주소만 보고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인지, 현관 비밀번호가 몇 자리인지 기억해내는 베테랑이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6층 배송은 여전히 힘들다며 웃어보였다.

오전 배송을 끝낸 김지환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을 마치고 곧바로 택배 분류 작업에 들어가는데, 일명 까대기 업무가 빨라도 3시간, 늦으면 4~5시간동안 쉬지 않고 이어진다. 

“까대기(분류작업) 업무만이라도 따로 인력을 배치해주면 좋겠어요. 하루 종일 운전하고 배송하는 것도 모자라서 하루에 몇 시간씩 이렇게 분류작업까지 하려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요”

지난달 택배 파업을 둘러싼 합의안의 중심에 선 것도 바로 이 ‘택배 분류작업’이다. 노동조합원들을 비롯한 다수의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의 원인중 하나로 택배 분류작업을 꼽았기 때문이다. 과로사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설 연휴를 앞둔 지난 달 21일 택배회사와 노동자 간의 1차 사회적 합의가 도출됐다.

1차 합의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택배 분류작업 정의 명확화 ▲택배종사자의 작업범위 규정 및 분류전담인력 투입 ▲택배종사자의 적정 작업조건 ▲택배비·택배요금 거래구조 개선 추진 ▲설 명절 성수기 특별대책 마련 ▲표준계약서 등이다. 

김지환씨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같이 타고 있는 승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항상 위층에서부터 내려와야 한다”며 바쁜 와중에도 주위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김지환씨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같이 타고 있는 승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항상 위층에서부터 내려와야 한다”며 바쁜 와중에도 주위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하지만 1차 합의가 이뤄진 후에도 택배 노동자들은 여전히 분류작업에 투입되는 등 노동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또다시 총파업이 예고됐다. 이에 정부와 택배사, 노조 등으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잠정합의안이 도출되면서 택배 파업은 일단락됐다.

잠정 합의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1차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작업 인력(CJ 4,000명, 롯데 1,000명, 한진 1,000명)을 2월 4일까지 투입 △투입인력 현황을 점검하기 위한 조사단을 구성 △택배요금 및 택배비 거래구조개선을 가능한 5월말까지 완료 등이다.

“택배 한 개를 배송했을 때 저희한테 떨어지는 돈이 600원, 700원 정도인데 택배 분류작업은 따로 제공되는 임금이 없어요. 무임금으로 4~5시간씩 일하는 셈이에요. 그 시간만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노동 강도도 훨씬 약해지고 과로사 문제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다들 생각 하는거예요.”

김지환씨는 택배 분류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빨리 배송해 달라’는 손님의 요청에 남들보다 조금 이른 오후 배송을 시작했다. 그의 담당 구역인 연동 일대는 짧은 거리에 많은 물량을 배달해야하고 주차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가 더욱 중요하다. 잠시 차를 정차하고 택배를 전달한 뒤 다시 차에 오르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을 때도 많다.   

“그렇게 엄청 힘들지는 않은데, 힘들긴 힘들죠.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까. 그리고 딱 배송만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 내에 착오 없이 빠르게 배송해야 돼서 머리도 잘 써야하고, 또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 친절하게 응대도 해야 되고...”

밤 9시가 넘은 시각, 다음날 효율적인 오전 배송을 위해 분류해놓은 택배들을 탑차에 실어 나르는 업무가 이어진다. ⓒ제주의소리
밤 9시가 넘은 시각, 다음날 효율적인 오전 배송을 위해 분류해놓은 택배들을 탑차에 실어 나르는 업무가 이어진다. ⓒ제주의소리

정신없이 배송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은 “언제 도착하냐”는 고객들의 전화가 이어진다.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고객들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는 것도 업무의 일환이다. 배송지가 잘못되거나 분실됐을 경우에도 택배기사에게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에 중간 중간 확인 문자를 보내는 것도 오롯이 그의 몫이다.

이른 아침 시작했지만 그의 공식적인 업무는 저녁 8시가 지나서야 끝이 난다. 

“오늘 정도면 빨리 끝난 편이에요. 물량이 많은 날에는 저녁 9시가 넘어서 끝나는 날도 많아요. 특히 일이 손에 익지 않았던 초반에는 밤 10시에 퇴근하던 날이 훨씬 많았죠.”

배송 업무는 끝이 났지만, 또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배송해야 할 택배를 탑차에 싣기 위해 터미널로 향한다. 

13시간이 넘는 그의 하루 일과 중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은 휴게시간이자 점심시간 한 시간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배송지간 이동거리가 짧은 구역인데다 배송 속도도 빠른 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애월이 담당구역인 2년차 동료 택배기사인 고길환씨는 새벽 4시에 출근해 하루 열여덟시간은 일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대부분의 택배노동자들이 구체적인 보호 법안이나 제도 없이 장시간 과로에 노출돼있는 현실. 제도개선이 시급해보였다.

택배업계 노사는 오는 17일 택배비 인상 문제를 중심으로 주5일제 △택배비 거래구조 개선 △현장갑질 개선 △택배비 적정 수수료 등의 내용을 추가로 합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협의에서는 이들 어깨의 짐을 덜어줄 좋은 소식이 나올 수 있을까?

강민정 제주의소리 3기 대학생기자

모두가 밝은 사회를 꿈꾸지만 여전히 빛의 사각지대에는 어둠에 깔린 이들이 있다. 이를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더 밝은 세상을 위해 옳은 목소리로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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