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65) 따뜻한 집-아이들에게/ 김광렬

올레 긴 집. ⓒ김연미
올레 긴 집. ⓒ김연미

오늘 새털구름 한 점 없이
저리도 하늘이 물속처럼 퍼런 것은
사랑하는 누군가 오기 때문이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손은
어지럽혀진 책들을 정리하고
허드레 것들을 흘려보내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꽃나무들에게 물을 주고
구석구석 처박히고 매달린
불길한 징조들을 거둬낸다

그래도 그냥 그대로 남겨 둔 것은
눈에 익고 몸에 밴 것들이다
지친 너희들을 맞이할 따뜻한 집

-김광렬, <따뜻한 집- 아이들에게> 전문-

올레 긴 집을 만났다. 낮은 돌담이 서 있는 오래된 올레를 따라 들어가면 허리 굽은 노모처럼 낮은 지붕의 집이 보인다. 자라나는 것들이 떠나간 자리엔 나무들만 키를 높이는 것인지, 돌담 옆으로 동백나무며 구실잣밤나무가 울울창창 하늘을 차지하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은 마당을 나와 저 올레에서 자치기를 배우고 숨바꼭질을 하며, 모세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파닥였을 것이다. 더 큰 세상을 꿈꾸는 아이들이 올레 바닥을 반들반들하게 다질 즈음, 아이들의 키는 돌담을 넘어서고, 돌담 너머 더 큰 세상을 위해 아이들은 큰길 속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큰길로 나갔던 아이들이 다시 올레로 돌아오는 설날. 

하늘은 ‘새털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이든 아버지는 ‘어지럽혀진 책들을 정리하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꽃나무들에게 물을 주’며 먼 올레 쪽으로 자주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세상을 한 바퀴 돌아온 아이들이 의기양양 올레를 걸어들어오면,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기만 하던 지붕도 기지개를 펼 것 같고, 아이들의 발자국 대신 풀꽃들이 발을 뻗던 올레에도 오랜만에 단단한 발자국이 생겨날 것이다. 이곳에선 키가 다 자란 아이들도 돌담 높이에 맞춘 눈빛으로  낮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건넬 것 같은데...

세상은 나와 같지 않고, 나는 세상과 같지 않아서, 그 평범하고 아름다웠던 풍경조차 마음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맞이할 집이 필요한 시점. 한 편의 시와 사진을 보며 쓸쓸한 마음을 달래보는 것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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