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42) 토미야마 카즈미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세 나라 세 섬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세 섬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로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어 일어, 영어 번역 원고도 동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많은 동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키나와에서도 설은 중요한 민속 행사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후 1872년 12월에 그레고리력으로 이행을 포고하고 국가적으로 ‘근대’의 시간에 참가했지만, 사람들의 심신에 깊이 박힌 생활의 리듬은 쉽게 덮어쓰기 할 수 없었다. 자연으로부터 소외되는 대중 소비 사회화의 흐름에 있어도 다행히 아직 오키나와에서는 음력의 시간축이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다. ‘오키나와’라고 묶어서 말해보자면, 음력에 이뤄지는 민속행사는 섬마다 다르고, 게다가 같은 섬 안에서도 마을마다 다르다. 

섬과 각 마을이라는 소우주의 다양한 차이가 모여서, ‘오키나와’라는 하나의 코스모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나의 뿌리인 섬에서도 물론 설이 존중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행사에 '십육일제'가 있다. 음력 1월 16날 행하는 조상의 영혼 공양으로 이날은 조상 묘에 꽃이나 과일, 음식을 올리며 친족과 함께 참배한 뒤 묘 앞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노래나 악기의 연주로 조상 넋을 위로하다. 기본적으로 오키나와의 무덤은 개인 무덤 아니라 가족이나 일족의 공유 무덤이며,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묘 마당으로 갖추고 있다. 무덤 마당 안쪽으로 꾸민 묘실에는 죽은이의 뼈를 순서로 나열하기 위해서 높이도 넓이도 확보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집 이상으로 돈을 들여 건조한다. 사망자들은 이렇게 사후의 고독에서 벗어나고 있다. 

친족의 남녀노소가 묘소에 모여서 식사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체 야유회 같아 보일 것이다. 술이 든 남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진수성찬을 먹고 난 아이들은 시끌벅적하게 뛰어다닌다. 이윽고 재주가 좋은 자가 미성을 떨친다. 여자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집집마다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 바로 옆, 벽 한 장 사이에 두고, ‘부정(不淨)’으로만 멀리하는 개념이 아니다. 죽은 가족은 조령(祖靈)이 되어 자손을 지켜보는 영원한 시간을 갖게 되니.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나나미 아이, 엄마 친구, 2015.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그렇다고는 해도, 현실에서 산 시간을 공유해 온 가족의 죽음을 맞이할 때,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는 죽은 사람의 몸을 응시하고, 육체의 죽음의 의례를 거쳐 전송해도 남아 있는 사람은 죽음의 부조리를 슬퍼한다. 

떠나 버린 이들을 조령으로 추상화하려면 세대를 초월한 시간의 경과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20대 중반에 아버지를 잃은 오키나와의 사진가 '나나미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수용하려고 한다. 그녀 자신의 프로세스를 'Yellow'라고 제목을 붙인 사진 연작으로서 작품화했다. 거기에는 삶과 죽음의 시간이 무한으로 회귀하는 '섬의 코스몰로지'와 육친을 잃은 현실의 아픔이 교차하는 허공낚시의 시간이 표현되어 있다. 현재 30대의 나나미는 대만과 가까운 이시가키 섬에서 태어나 현재는 오키나와 섬 이토만 시에 거주한다. 

복식 디자인을 전공한 후 사진 표현에 뜻을 두고 디지털 촬영 기술과 정성스러운 화상 처리로 작업하고 있다. 'Yellow'는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말기 피부색이며, 죽은 뒤의 세계를 뜻하는 '황천'이라는 옛말에서 나온 이미지라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나나미가 14세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술의 양을 계속 늘였고, 그것이 천천히, 확실하게 몸을 잠식했다. 어머니의 투병시기까지 포함해 나나미는 어린 시절부터 무려 17년간을 육친의 죽음의 기미와 마주한 셈이다.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나나미 아이, 통야 The wake, 2015.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가혹한 정신의 시련 속에서 그녀는 ‘상실’이 주는 것을 깨달았다. ‘상실’에 의해 획득되는 역설. 무언가를 잃었을 경우, 그 후의 시간은 그것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쓰인다고 나나미는 말한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보다 세상을 떠난 뒤가 압도적으로 그들을 생각한다고.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져 가겠지만, 그 흔적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녀가 사진이라는 방법론에 접근한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은 바로 ‘흔적’이기 때문이다.

연작 'Yellow'는 담배 피우는 생전의 아버지의 포트레이트, 그 데스마스크, 죽은 자를 안치한 방에 둘러칠 검은 색과 흰색을 가른 막, 무덤 앞에 선 상복의 여인들, 무덤가에서 보이는 황야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유형의 물건을 구울 때 나는 연기 등 죽음에 부수된 다양한 순간을 제시한다. 어머니를 잃었을 때 어린 나나미는 카메라라는 수단을 갖고 살았지만 아버지 때는 달랐다. 그녀는 셔터를 눌러 흔적을 남기려 하고, 심지어 그런 자기 자신까지도 이미지에 고정시키려 한다.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나나미 아이, 무덤 위에서의 자화상, 2015.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무덤 윗부분에 알몸으로 앉은 나나미의 자화상이 있다. 생명력 덩어리 같은 젊은 벌거벗은 몸이 무덤 위에 앉는 광경은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몽롱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무덤의 형태는 여성의 하복부를 본떠서, 죽은이들은 일찌기 태어난 태내로 돌아가는 것처럼 무덤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태아와 죽은 자의 뼈와 산 혈육. 삶과 죽음이 계속 회귀하는 시간 속에서 상실의 아픔은 어느덧 조령의 축복이 되어 남겨진 자에게 쏟아진다. 나나미도 그것을 승인했기에 그 자신을 각인시킬 장소로 무덤을 선택했을 것이다. 약속된 그 때가 올 때까지 ‘흔적’을 계속 응시할 것, ‘흔적’으로서의 사진을 계속 찍는 것에, 나나미는 스스로의 ‘삶’을 근거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이윽고 ‘사진’이 그녀 자신의 삶의 흔적이 된다. 작가의 숙명이란 자기 실존과 표현을 구분하기 어렵게 결합하는 데 있다. 바꾸어 말하면, 나나미는 ‘사진’을 살고 있는 것이다.

# 토미야마 카즈미

토미야마 카즈미(豊見山和美 TOMIYAMA Kazumi) 씨는 도쿄 소재 추오대학교와 류큐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영국 런던대학교 아카이브연구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오키나와현립공문서관의 아키비스트로 일하면서, 오키나와 전후사를 중심으로 문화평론을 하고 있습니다.


'痕跡' としての写真-回帰する時間のなかで 
豊見山和美 

多くの東アジアの地域と同じく、沖縄でも旧正月は重要な民俗行事だ。日本は明治維新 後の 1872 年 12 月にグレゴリオ暦への移行を布告して、国家的に<近代>の時間に参入したが、人々の心身に深く刻まれた生活のリズムは容易に上書きできるものではなかっ た。自然から疎外される大衆消費社会化の流れにあっても、幸いなことに、まだ沖縄では 旧暦の時間軸がしぶとく生き続けている。<沖縄>と一括りに言っても、旧暦に刻まれる民俗行事は島によって、さらに同じ島内でも集落で異なる。島や各集落という小宇宙のさまざまな差異が群がって、<沖縄>というひとつのコスモスを形成しているというわけだ。 

私のルーツである島でももちろん旧正月が尊重されるが、それにもまして重要な行事に「十六日祭」がある。旧暦の 1 月 16 日に行う祖霊供養のことで、この日は祖先の墓 に花や果物、料理を供え、親族が揃って参拝した後に墓前で共食し、歌や楽器の演奏で祖 霊を慰める。基本的に沖縄の墓は個人墓でなく、家族や一族の共有墓であり、このように 多数の者が集まるスペースを墓庭として備えている。墓庭の奥にしつらえた墓室は、死者 の骨壺を順に並べていくために高さも広さも確保し、人によっては自宅以上に金をかけて 建造するという。死者たちはこうして死後の孤独から免れている。 

親族の老若男女が墓所に集まって食事を楽しみ語らう様子は、事情を知らぬ者が見ると 団体ピクニックのようにも見えるだろう。酒が入った男たちの声も大きくなり、ご馳走を 食べ飽きた子供たちは賑やかに走り回る。やがて芸達者な者が美声を響かせる。女たちは 女たちで額を寄せ合い、それぞれの家庭の愚痴をこぼし合う。そのすぐ傍ら、壁一枚隔て て、骨となった死者たちがいる。生者と死者の距離はかくも近く、死者や死とはただ<不 浄>として遠ざけるだけの概念ではない。死んだ家族は祖霊となって、子孫を見守る永遠 の時間を手にするのだから。 

写真1  母の友達  七海愛  2015

とはいえ、現実に生きた時間を共有してきた家族の死を迎える時、二度と動くことのな い死者の体を見つめ、肉体の死の儀礼を経て見送ってもなお、残された者は死の不条理を 悲しむ。逝ってしまった者を祖霊として抽象化するには世代を超えた時間の経過が必要か もしれない。20 代半ばで父を失った沖縄の写真家・七海愛は、父の死を受容しようとする 
彼女自身のプロセスを<Yellow>と題する写真連作として作品化した。そこには生と死の 時間が無限に回帰する<島のコスモロジー>と、肉親を失った現実の痛覚が交錯する、宙 づりの時間が表現されている。 

現在 30 代の七海は台湾に近い石垣島に生まれ、現在は沖縄島糸満市に居住する。服飾 デザインを専攻したのち写真表現を志し、デジタル撮影技術と丹念な画像処理で制作する ようになった。<Yellow>とは、肝臓を病んで世を去った父の末期の肌の色でもあり、死 後の世界を意味する「黄泉」という古語からのイマジネーションでもあるという。父の死 は、七海が14歳の頃に世を去った母と強く結びついている。妻を亡くした父が寂しさを 埋めるための酒の量は増え続け、それがゆっくりと確実に体を蝕んだ。母の闘病時期も含 めて七海は子供時代からおよそ 17 年間を肉親の死の気配と向き合ってきたことになる。

写真2 通夜 The wake 七海愛 2015 

過酷な精神の試練のなかで、彼女は<喪失>が与えるものに気がついた。<喪失>によって獲得するという逆説。何かまたは誰かを失った場合、その後の時間はそれらを解釈し理解するために使われる、と七海は言う。両親が生きていた頃よりも、他界した後の方が圧倒 的に彼らのことを考えていると。すべてはいつか失われ過ぎ去っていくけれども、その痕跡には意味があるはずだと考える彼女が、写真という方法論に接近したのは必然であったかもしれない。写真とはまさに<痕跡>だからだ。 

連作<Yellow>は、煙草をくゆらす生前の父のポートレート、そのデスマスク、死者を 安置した部屋に張り巡らされる黒と白を塗り分けた幕、墓前に立つ喪服の女性たち、墓所 から見える荒野に立つ一本の木、形見の品を焼く時に立ち上る煙といった、死に付随した さまざまな瞬間を提示する。母を失った時の幼い七海はカメラという手段を持っていなか ったが、父の時は違った。彼女はシャッターを切ることで痕跡を残そうとし、さらに、そ んな自分自身までもイメージに固定しようと企てる。 

写真3 墓の上で-セルフポートレート 七海愛 2015

墓の上部に全裸で座る七海のセルフ・ポートレートがある。生命力の塊のような若い裸 体が墓の上に座す光景は、死と生の境界が朦朧とする感覚を呼び起こす。墓の形態は女性の下腹部を模していて、死者たちはかつて生まれ出た胎内に戻るかのように墓に収まるのだと、沖縄の人々は漠然と考えている。胎児と死者の骨と、生きた血肉。生と死が回帰し続ける時間の中で、喪失の痛みはいつしか祖霊の祝福となって残された者に降り注ぐ。七海もそれを承認していればこそ、彼女自身を刻み付ける場所として墓を選んだのだろう。約束されたその時が来るまで<痕跡>を見つめ続けること、<痕跡>としての写真を撮り続けることに、七海は自らの<生>を根拠づけようとしているかのようだ。やがて<写真>が、彼女自身の生の痕跡となる。作家の宿命とは、自己の実存と表現が分かちがたく結びつくところにある。言い換えれば、七海は<写真>を生きているのである。 


Photos as 'traces' : in the time of eternal revolving
TOMIYAMA Kazumi

As in many East Asian regions, Lunar New Year is an important folk event in Okinawa. In December 1872, after the Meiji Restoration, Japan announced the shift to the Gregorian calendar and entered the "modern" time as a nation, but the rhythm of life deeply engraved in the minds and bodies of the people could not be easily overridden. Fortunately, the time axis of the lunar calendar is still alive and well in Okinawa, even in the trend toward a mass consumer society alienated from nature. Okinawa is made up of about 160 islands, the folk customs that are inscribed in the lunar calendar vary from island to island, and even within the same island, from village to village. The various differences in the microcosm of the islands and villages are grouped together to form a single cosmos called "Okinawa".

On the island of my roots, Lunar New Year's Day is of course respected, but there is another event that is even more important: the "16th Day Festival". It is a memorial service for the ancestors held on January 16 of the lunar calendar, and on this day, flowers, fruits, and food are offered at the ancestral tomb, and after relatives visit the tomb, they eat together in front of the tomb and comfort the spirits with songs and musical instruments. Basically, Okinawan tombs are not individual ones, but shared tombs of families and clans, and the garden is equipped with a space for many people to gather. The tomb chambers at the back of the tomb yard are spacy enough for the urns of the dead to be placed in order, and some people spend more money on building tombs than housing. The dead are thus spared from loneliness after death.

photo1  Friends of my mother  NANAMI Chika  2015

For those who don't know what's going on, the scene of relatives, young and old, gathering at the tomb to eat and talk looks like a group picnic. The voices of the men who has been drinking becomes louder, and the children who are tired of eating good food run around in a lively manner. In the end, the entertainers start to sing with their beautiful voices. Women huddle their foreheads together and complain to each other about their families. Right beside them, across the wall, are the dead who have become bones. The distance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is so close, and the dead and death are not just concepts to be kept away as "unclean”; the deceased family members become ancestral spirits and have eternal time to watch over their descendants. 
However, when we face the death of a family member with whom we have shared the time of our lives in real life, we gaze at the body of the deceased that will never move again, and even after seeing them off through the rituals of physical death, those left behind still grieve the absurdity of death. In order to abstract those who have passed away as ancestral spirits, we may need the passage of time across generations. NANAMI Chika, an Okinawan photographer who lost her father in her mid-twenties, created a series of photographs entitled <Yellow> to show her own process of coming to terms with his death. In this work, the cosmology of the island, in which the time of life and death infinitely revolves, and the pain of the reality of losing the parents are intertwined, expressing a time of suspension.

Nanami, who is now in her thirties, was born in Ishigaki Island, near Taiwan, and currently resides in Itoman City, Okinawa Island. After majoring in clothing design, she aspired to express herself in photography, and began to create works using digital photography techniques and careful image processing. She says that <Yellow> is the color of her father's skin at the end of his life after suffering from liver disease, and also her imagination from the ancient word "yellow spring:黄泉" which means the world after death. Her father's death is strongly connected to her mother's, who passed away when Nanami was 14 years old. After the death of his wife, Nanami's father continued to increase the amount of alcohol he drank to fill his loneliness, and it slowly and surely took its toll on his body. Including the period of her mother's illness, Nanami has been confronted with the presence of death in her parents for about 17 years since her childhood.

Photo 2  The wake  NANAMI Chika  2015 

In the midst of the ordeal of the harsh mind, she realizes what "loss" could give. The paradox  of gaining through loss. When you lose something or someone, Nanami says, the time that follows will be spent interpreting and understanding them. She said that she thinks about her parents more overwhelmingly after they have passed away than when they were alive. It may have been inevitable that she approached the methodology of photography, thinking that everything would one day be lost and passed by, but that the trace must have been meaningful. This is because photography is indeed "traces”.

The series <Yellow> presents various moments associated with death, such as a portrait of her father before his death, smoking a cigarette, his death mask, a black and white curtain in the room where the deceased was laid to rest, women in mourning clothes standing in front of the tomb, a tree standing in the wilderness visible from the tomb yard, and smoke rising from the burning of a memento. When she lost her mother, the young Nanami did not have the means of a camera, but she did at the time of her father's death. She tried to leave traces by clicking the shutter, and even planned to fix herself in the photographic images.

photo3  Self-portrait on the tomb  NANAMI Chika  2015

There is a self-portrait of Nanami sitting naked on top of the tomb. The sight of a young naked body sitting on a tomb, like a lump of vitality, evokes a sense of fuzzy boundaries between death and life. The shape of the tomb resembles a woman's lower abdomen, and the Okinawans vaguely believe that the dead are placed in the tomb as if returning to the womb from which they came from. Fetus, bones of the dead, and living flesh and blood. In the time where life and death continue to revolve, the pain of loss becomes a blessing from the ancestral spirits, pouring down on those left behind. Nanami must have recognized this, and that is why she chose the tomb as a place to inscribe herself. It is as if Nanami is trying to ground her own "life" in continuing to gaze at the "traces" until the promised time comes, and in continuing to take photographs as "traces.”  Eventually, the "photographs" become the traces of her own life. The fate of an artist lies in the inextricable link between her/his own existence and her/his expression. In other words, Nanami is living the "photograph.


照片作為「痕跡」:在返回的時間中
豐見山和美 

像許多東亞地區一樣,農曆新年是沖繩的重要民俗活動。1872年12月,明治維新後,日本宣布改用陽曆,並進入一個民族的“現代”時代,但是人們的思想和身體深深地刻畫著生活的節奏。幸運的是,儘管與自然疏遠的大眾消費社會趨勢不斷,沖繩的曆法時間表仍然存在。沖繩島由大約160個島嶼組成,農曆中記載的民俗習俗在各個島嶼之間甚至在同一島嶼之間(從一個村莊到另一個村莊)都各不相同。島嶼和村莊的縮影中的各種差異聚集在一起,形成了一個名為“沖繩”的小宇宙。

當然,農曆新年在島上是受人敬重的,但是農曆新年後的「十六日祭」更為重要。這是為祖靈舉行的追思祭,在這一天,為祖先墳墓獻上鮮花、水果和菜餚,在所有親戚敬拜之後,他們一起在墳墓前一起吃飯彈奏樂器跟歌曲。基本上,沖繩的墳墓不是個人的,而是家庭和氏族共同的墳墓,墓園設有一個供許多人聚集的空間。墓園後方的墓室足夠寬敞,足以安排死者的骨灰罐,有些人會花筆蓋房子更多的錢來建造墓室,讓死者免於死後的孤獨。

對於那些不知道情況的人來說,無論老幼的親戚都聚集在墓地吃飯談話的場景像是集體野餐。喝酒的人的聲音更大了,厭倦點心的孩子們四處嬉鬧。最終,善歌者吟唱優美的曲調。婦女們靠著額頭擠在一起,抱怨自己的家人。隔著牆,在他們旁邊是化作屍骨的亡者。生與死之間的距離是如此之近,死與死不僅僅是將它們遠離「不潔」的概念。死去的家庭成員成為祖靈,並且有永恆的時間照顧他們的後代。

但是,當我們面對曾與我們分享生活時光的家庭成員的死亡時,我們注視著死者的身體,再也不會動彈了,甚至在通過葬禮儀式將之送走,那些遺棄的人仍然對死亡的荒謬感到悲痛。將死者抽象為祖先可能需要世代時間。在20多歲時失去父親的沖繩攝影師愛七海(Ai Nanami)試圖接受父親的去世。
她將自己的創作過程變成一系列名為《黃色》的照片。以展示她自己對死去的適應過程。在這作品中,生死時間循環的「島嶼小宇宙」與失去至親的痛苦交織在一起,表達出時間的停滯。

七海愛現年30多歲,出生於台灣附近的石垣島,目前居住在沖繩島糸満市。在攻讀時裝設計專業後,她渴望攝影表達,並開始使用數位攝影技術和精細的圖像後製進行創作。《黃色》也是死於肝病的絕症父親的皮膚顏色,也是古詞「黃泉」的一種想像,意思是死後的世界。他父親的去世與他的母親息息相關,後者在七海愛14歲時去世。父親就持續以酒精來填補失去妻子的孤獨感,這確實侵蝕了他的身體。包括母親患病的時期在內,七海愛自童年時代就面臨直系親屬死亡的困擾大約有17年的歷史。

在嚴峻的精神試驗中,她意識到了失去所帶來的擁有,這是透過損失而獲得收穫的悖論。 七海愛說,如果失去了某物或某人,剩下的時間將用於解釋和理解他們。她說,她對於父母死後的思考比他們還在世的時候更加激烈。她以為一切都會有一天丟失和流逝,但痕跡一定是有意義的,因此她無法避免的採用攝影作為創作方法,認為這些痕跡應該是有意義的。這些照片確實是「痕跡」的存在。

《黃色》系列展示了與死亡相關的各個時刻,例如父親去世前的肖像。抽煙草、他的死亡面具,在死者安息的靈堂周圍張開的黑白窗簾,穿著哀悼服的婦女站在墳墓前,以及從它呈現了與死亡相關的各個時刻,例如,一棵樹立在地上,燃燒著紀念品時冒出濃煙。 當她失去母親時,年輕的七海愛沒有攝影器材,但在父親去世時卻擁有了攝影器材。她試圖通過快門留下痕跡,甚至計劃將自己在攝影中入境。

墓頂是裸身的七海的自攝像。坐在墳墓上的一個年輕裸露的身體充滿活力的景象,讓人感到死亡與生命之間的界限被模糊了。墳墓的形狀類似一個女人的下腹部,沖繩人模糊地認為死者進入墳墓,就好像他們要回到出生的子宮中一樣。腳下是逝者的屍骨,以及還有鮮活的身體。在生死共存的黃泉時刻,離苦得樂的祖靈敝蔭著留下的後人。想必七海一定也意識到這點,才會選擇墳墓作為自己創作的所在。 七海似乎預計持續透過凝視「痕跡」拍照直到約定的時刻到來,以證明她生命的存在意義。最終,「照片」成為她自己的生活痕跡。藝術家的命運在於她/他作為存在與表達之間密不可分的聯繫。換句話說,七海讓自己居住在攝影之中。

照片1 母親的友人 七海愛 2015
照片2  守夜 七海愛 2015 
照片3 墳墓上的自拍照 七海愛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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