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25) 공개 논의 필요하다...“우리와 관련된 것을 우리를 빼고 결정하지 말라”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지난해 12월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는 제주의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됐다. 제주 학생인권조례는 전국 최초로 당사자인 학생들 주도의 입법청원 형식으로 이뤄졌다. 조례 제정 과정에서 도내 22개 고교 학생회장들이 조례 제정에 동의하고, 1000여명이 넘는 도내 학생들이 직접 조례 제정을 도의회에 요구한 결과물이다. 제주의 학생들은 스스로 사회적 주체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문제를 말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아 나가는 존재라는 점을 스스로 깨닫고 자력화(empowerment)를 선언한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우리 사회와 미래에 필요한 지식과 태도 등 삶의 기술을 배운다. 나아가 학교는 학생의 권리 확장과 민주적 시민을 길러내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생들이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려면 각자의 차이를 존중받아야 하고, 정서적으로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학교에서 지내야 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결코 만족스럽거나 안전한 삶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여전히 학생들은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인간다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뿐더러 학교에서는 체벌과 두발규제 등 학생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사회 시민권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평등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 신체의 자유, 학습권과 휴식할 권리, 개성을 실현할 권리와 자기 결정권, 사생활의 자유와 보호,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생 자치권, 복지지원을 받을 권리, 적법 절차 보장과 권리 구제를 받을 권리 등 학생들의 구체적인 권리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이유이다.

지난 4월 19일 제주도의회 정문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제주학생인권조례 TF.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4월 19일 제주도의회 정문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제주학생인권조례 TF팀 학생들. 학생들은 더 이상 나이 어리고 미성숙한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서 훈육의 대상이 아닌 문제해결의 주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인권 보호 및 증진과 인권의식의 확산이라는 세계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일부에서는 여전히 당사자들인 학생들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서 만들어진 조례에 대해 아직도 폐지해야 한다는 등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도 여전히 학생들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의 주체로서 인정하기보다는 ‘나이가 어린 사람’, ‘덜된 사람’, ‘사람이 되어 가는 존재’,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하여 부모나 성인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은 판단력이 부족하여 사전에 어른들의 허락을 구하도록 해야 한다’, ‘충동적이라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하고 훈육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특히나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할 청소년에게 자유와 권리는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일부 내용의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학생인권조례 자체에 대해 존폐를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제는 제정된 조례가 학교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이행조치가 중요하다. 이를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제주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따른 이행방안을 마련하고, 조례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 1월 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통과에 따른 후속 조치로 다양한 의견과 제안들을 충실히 수렴 반영하면서 조례가 실질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원단체 및 학생들과의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일모레가 3월 신학기이지만, 아직까지도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구성 및 학생인권교육센터 설치 등 조례의 이행을 위한 중요 정책들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이라는 조례의 본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감의 의지뿐만 아니라 관련 교육정책 역량을 높이기 위한 인권감수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운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이를 운영하기 위한 적정한 예산이 투여되어야 한다. 

물론 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이 보장된다고 해서 우리 사회 교육 현실에 내포한 모든 인권 과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학생인권이 보장된다고 해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되는 교육격차와 교육 불평등, 학업 중단자의 교육권과 생활권 보장 문제 등은 새롭게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의 보장 없이 인권적인 학교문화와 학교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성적과 내신등급으로 나누고 차별하며 체벌과 폭력이 난무하고, 자기 머리모양은 자기가 알아서 결정할 권리와 같은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배움과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것은 허구이다. 폭력적 훈육의 논리가 유지되는 곳에서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또 다른 폭력이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조백기 인권왓 연구활동가  ⓒ제주의소리
조백기 인권왓 연구활동가 ⓒ제주의소리

학생들은 더 이상 나이 어리고 미성숙한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서 훈육의 대상이 아닌 문제해결의 주체이다. 학생인권을 포함하여 교육정책 입안과 이행에 있어서 당사자인 학생들을 대신해 전문가와 정책가가 밀실에서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의 학생인권 이행을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학생 당사자를 포함한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참여와 역할을 통한 공개적인 논의과정이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 교사, 부모, 지역사회, 민간단체 및 기타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기관들이 관계하는 곳이다. 학교를 교육청과 학교당국자만의 관할 구역인 폐쇄공간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을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학교의 운영에 관여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간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의 증진은 어떠한 학교 개선 과정의 성공과 유지에도 필수적이다. “우리와 관련된 것을 우리를 빼고 결정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 조백기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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