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소리] 잘리고 소금 뒤덮인 무궁화 나무…항몽유적지 “오래돼 나무 꺾이고 통행 불편·사고 위험”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궁화 나무가 잘린 채 소금으로 뒤덮여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제주도민 A씨는 지난 20일 평소 자주 지나가는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를 거쳐 가다가 도로 양쪽 잘린 나무 위에 하얀 가루가 올려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무가 잘린 이유와 그 위에 놓인 하얀 가루는 무엇인지 궁금했던 A씨는 직접 다가가 굵은 소금인 것을 확인하고는 의아했다. 보통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고사시킬 방법으로 소금을 올려놓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

이 곳에 어떤 나무가 심어졌는지 기억을 떠올린 A씨는 이내 경악했다. 잘린 나무가 바로 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였다.  

A씨는 [제주의소리]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가 다른 곳도 아니고 문화재 지구 안에서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훼손된 것을 보고 화가 났다. 훼손 경위를 파악해달라”고 제보해왔다.

이어진 통화에서 “제가 알고 있기론 수령이 꽤 오래된 것으로 안다. 가지가 많은 것으로 보아 수령이 30년 이상은 족히 돼 보인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잘 가꾸면서 관리했던데 왜 갑자기 그렇게 베어내고 죽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인근 도로 나무가 베어진 채 소금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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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으로 가득 덮여있는 무궁화 나무. ⓒ제주의소리

취재 기자가 현장을 찾아 확인해본 결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남쪽 토성 인근 도로 양옆으로 10여 개 이상의 나무가 잘린 채 하얀 가루로 덮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하얀 가루의 정체를 직접 확인한 결과 굵은 소금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아래 나무는 자라온 세월을 증명하듯 수십 개의 가지로 이뤄진 채 땅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해당 나무가 있는 위치는 SNS상 항몽유적지 사진 명소로 알려진 남쪽 토성 ‘나홀로 나무’ 인근으로 방문객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다. 이날도 해당 도로를 지나가는 방문객이 궁금하다는 듯 소금으로 뒤덮인 나무를 바라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관계자는 “나무가 오래돼 바람이 불면 잘 꺾이는 데다 도로로 뻗어 나와 있어 사람과 차량이 통행하는 데 위험했기 때문에 조치한 것”이라며 “수령이 오래되다 보니 기둥 부분이 약해서 바람에 잘 부러지고 넘어지고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인도가 갖춰진 도로가 아닌 탓에 나무 때문에 방문객들이 도로 위로 걷게 돼 민원이 잦았고, 곡선 도로라 버스 기사님이나 차량 운전자들도 사람이 잘 안 보여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유 없이 고생해가며 무궁화 나무를 잘라낼 이유가 없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지난해 말 예산을 들이지 않고 급히 직원들이 직접 처리했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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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무궁화 나무 모습. 사진=카카오맵 로드뷰 갈무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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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파릇파릇하게 살아있던 무궁화 나무(왼쪽)와 22일 현재 모습. ⓒ제주의소리

무궁화 나무를 이식할 수 없었냐는 질문에는 “대규모 예산으로 들어내면 가능할 수 있었겠지만, 오래된 탓에 나무가 연약한 데다 작업 과정에서 사유지를 침범할 수밖에 없게 돼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예산도 부족했지만, 인명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시급함이 컸다”고 답변했다.

무궁화 나무의 수령은 40~50년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90~100년을 넘겨 꽃을 피워내는 개체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강원도 강릉시에는 수령 120년이 된 국내 최고령 무궁화가 천연기념물 제520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무궁화는 우리 겨레의 단결과 인내, 끈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제보자에 따르면 항몽유적지 도로변 무궁화 나무는 1978년도 항파두리 유적지 조성 사업에 따라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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