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열 여덟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가시리 가시리 잇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날 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설룬 님 보내옵 노니 가시는 듯 도셔오소서.’

고려시대 작자 미상의 유명한 가요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연 ‘바리고’이다. 이는 세 번째 연의 ‘설룬님’ 즉, 설러버린 그만둔(Stop)님과 맥을 같이한다. 버리고 그만 둔님이다. 통상적으로 설룬이 서러운으로 해석한 것을 본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만 둠’이 옳지 않을까. 제주에서는 ‘너 그 애랑 헤어졌냐?’는 ‘너 가이영 설러부런?’ 또는 ‘너 가이영 설룬거가?’로 말한다. 

고려 시대 고어(古語) 언어인 설룬 즉, 제주의 ’설러불다‘가 뿌리로 현재 제주 말씨에 오롯이 남아 있다. 음주 단속 시, 교통 경찰관이 ‘확 붑서’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바람이나 냄새 또는 어떤 기운 따위가 갑자기 세게  급히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를 말한다.

‘바리고 가신님, 그만둔 설룬님’은 고려 여인의 님을 향한 정한(情恨)을 담은 시에서 나온 뜻이다. 심연(心緣)에 잠겨있는 하고픈 말이 있지만 감추고픈 미련이 남았어도 미처 하지 못한 또는 붙잡고 싶으나 매달리지 못하는 마음을 그린 말이다. 속마음을 감추는 아름다운 가요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그만둠에 대한 막설(莫說)은 ‘말을 그만 두다(Stop Talking)’이다. 하던 일을 그만 둠, 사업이 잘 안 되면 막설(莫說)하라, 또는 말을 고마하라. 맹자(孟子) 강의를 하고 책도 쓰는 이창화(85) 교장의 증언이다. 전 제주상고 국어 교사를 지낸 송상조(78) 박사도 제주 일부 지방에서 막설이란 말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제주에서 많이 쓰이는 설러불다(說風)는 설(說)과 바람(風) 불다의 합성어다. 이유는 바람이 연평균 4.8㎧ 이상 부는 제주지방의 언어 특성은 관습상 구어체(口語體)는 발음 변화가 이뤄진다. 즉 제주 바람은 말소리를 굴렁쇠 이응(o) 받침을 만들어 달고 다닌다. 할머니가 할망으로,감수가가 감수강으로 쓰이듯, 경상도 지방과 다른 특징을 갖는다. 말이나 하던 일이 바람처럼 날라 간다는 설러불다의 뜻은 ‘말을 그만둠’, ‘하던 일을 그만둠’이다.

제주에서 많이 쓰이는 설러불다(說風)는 설(說)과 바람(風) 불다의 합성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에서 많이 쓰이는 설러불다(說風)는 설(說)과 바람(風) 불다의 합성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편, 성산 수산진성 ‘진안 할망당 설룬 애기’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죽 설러와시믄 밤새낭 응앙 응앙 성담이 뭐렌 그거 짓으켄 애기를 죽여신고 쌓으민 무너지는 성담 안 쌓으민 그만이주 사름 살리젠 짓는 성담이 사름 잡아 먹엇구나.

진안(수산초등학교) 진성 안에 있는 조상신을 모시는 할망당이 있다. 수산진성을 쌓을 때, 관리의 공출 재촉에 시달리던 과부가 ‘저 우는 애기밖에 어시난 애기라도 데령 가쿠과?’ 홧김에 내질렀는데 그 후로 성이 자꾸 무너져 내렸다. 지나가던 스님이 ‘주겠다는 원숭이띠 아기를 왜 받아오지 않느냐?’는 말에 아기는 희생 제물이 됐고 성(城)은 지어졌다. 성이 지어진 후, 수산진성에서는 밤마다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사람이 제사를 마치고 울음소리가 나는 곳에 음식을 갖다 바친 후에야 울음소리가 멈춰졌다. 그 아기를 수산진성 안에 진안 할망당에 모셔 정성을 올린다. 여기서는 설룬은 서러운이다. 문맥을 전후해서 해석하여 그 뜻을 헤아려야 한다.

유만형(62) 박사는 ‘막설=설러부러=설룬=stop=멈춤=그만둠’이라고 설명한다. 말이란 상호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뜻하는 바를 잘 전달하면 그 목적을 달성한다. 화려한 수식어도 필요 없고 그저 시골 동네에서 속 정(情)이 통하는 말, 그 지방 고유어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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