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7주년 특집-제주지하수 60년史]-(하) 체계적 물 관리 필요…“공수화라 할수 있나”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1961년 제주 최초의 지하수 관정이 뚫린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1호 관정이 개발되고 60년이 지난 현재 제주의 지하수 관정은 총 4785개. 60년간 매년 80개 이상의 지하수 관정이 뚫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창간 17주년을 맞아 60년을 지나온 제주의 지하수 역사와 보전·관리 방안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의 생명수가 위협받고 있다. 1961년 제주 첫 지하수 관정이 생긴 뒤 60년이 지난 2021년 2월 현재 제주에 지하수 관정은 4785개에 달한다. 매년 80개에 달하는 지하수 관정이 새롭게 생긴 셈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먹는샘물로 꼽히는 제주의 지하수에 대한 고갈과 오염 등 우려로 체계적인 지하수 관리가 필요하다는 도민 사회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한진그룹 제동흥산이 지난 1984년 제주칼호텔에서 제주 최초의 먹는샘물 제조업 허가를 받았다. 당시 먹는샘물을 생산하는 모습. ⓒ제주상수도 50년.

 청정 제주 지하수 상품화

우리나라의 최초의 먹는샘물 상품은 일제강점기의 일본이 1912년 충북 초정리 약수터에서 생산한 ‘구리스다루(수정·crystal)’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선수 제공용으로 상품화된 먹는샘물이 생산되기도 했지만, 1995년 ‘먹는물 관리법’ 시행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먹는샘물 생산은 엄격히 금지돼 왔다. 

이런 가운데 ‘먹는물 관리법’ 시행 전부터 제주에서 먹는샘물을 제조·생산한 업체가 바로 ‘제동흥산(주)’이다. 제동흥산은 훗날 한진그룹의 한국항공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뀐다. 

제동흥산은 ‘먹는물 관리법’ 시행 11년 전인 1984년 현재의 제주칼호텔에서 1일 200톤 규모의 먹는샘물 제조업 허가를 받았다. 전량 수출 또는 주한 외국인에게만 판매한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제동흥산은 대한항공 기내용으로 공급하다 바레인으로 수출도 했고, 1984년 제조시설을 제주칼호텔에서 서귀포칼호텔로 옮겼다. 

1986년 아시안게임 공식 음료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1990년에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제동목장으로 다시 제조시설을 이전해 현재까지 지하수를 취수해 생산하고 있다. 

제동흥산의 지하수 취수는 198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제동흥산이 본격적으로 지하수를 취수할 경우 지하수의 해수화 등 우려가 있어 지하수 취수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먹는물 관리법 제정은 이전 대법원의 판결 영향이 컸다. 먹는물 관리법 시행 1년 전인 1994년 대법원은 전량 수출 또는 주한 외국인에게만 판매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먹는물 관리법에 국내 판매를 완전 허용하면서 환경영향조사 등을 이행토록 규제 방안을 포함시켜 제정했다. 

지하수 보존·관리에 대한 여론이 높던 제주도는 더 앞서나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을 개정, 지방공기업만 먹는샘물 판매가 가능토록했다. 
  
이에 따라 1995년 3월 설립된 제주지방개발공사(지금의 제주도개발공사)는 조천읍 교래리에 공장을 지어 먹는샘물 생산에 돌입했다. 

국내 먹는물 시장을 주도하는 국민생수 ‘삼다수’의 탄생 배경이며, 올해 2월 기준 매일 4636톤에 달하는 제주의 지하수가 취수돼 먹는샘물로 생산되고 있다. 

1997년 제주삼다수 생산을 위한 첫 지하수 관정 개발 당시 모습. ⓒ제주상수도 50년.

 ‘전쟁 같은’ 제주 먹는샘물 판매권 분쟁

먹는물 관리법 시행 전부터 먹는샘물을 생산하던 제동흥산은 제주특별법에 따른 먹는샘물 이용허가 과정에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1995년 당시 제주도가 수출이나 주한 외국인 판매에 한하고, 제주산 먹는샘물 우수성 홍보를 위해 도개발공사가 요청할 때 허용 범위 내에서 생산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자 제동흥산은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정심판 재결처분이 내려진 뒤 1996년 10월8일 제동흥산 유상희 당시 대표이사는 제주도청 기자실을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제동흥산은 금번 행정심판 결과에 관계없이 현행 생산 공급 범위를 유지할 것이고, 시판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명백히 밝히며, 앞으로도 제동흥산은 계속해 제주도와 도민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1996년 12월27일 제주도의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기자회견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고, 1996년 제동흥산은 최초의 취수 규모의 50%인 1일 100톤 규모의 취수 허가를 받았다. 

이듬해 1997년 헌법재판소가 제동흥산의 행정심판에 대해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하면서 당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이후 제동흥산은 한진그룹의 한국공항(주)로 법인명이 바뀌었고, 2005년 도외 반출 목적을 ‘계열사(그룹사) 판매’가 아니라 ‘판매’로 바꿔 다시 허가를 신청했다.  

제주도는 기존처럼 ‘계열사(그룹사) 판매’로 허가를 했고, 한국공항은 시판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면서 국무총리 산하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재차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행정심판이 기각되자 한국공항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 대법원은 “원고(한국공항)가 침해받는 사익이 너무 크다”고 판결하면서 한국공항은 제주의 지하수로 만든 먹는샘물을 시판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다. 

먹는샘물 판매 권리뿐만 아니라 상표 분쟁도 있었다. 

한국공항은 ‘제주생수’, ‘제주광천수’, ‘제주산수’ 등의 상표를 거쳐 2007년 10월 ‘한진 제주워터’라는 상표를 출원했다. 

제주도는 “제주워터는 개인이나 사기업이 영리 추구를 위한 상표로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반발하면서 먹는샘물 제품명 변경 신고를 반려했다. 결국 한국공항은 ‘한진 제주 퓨어워터’로 상표를 바꿔 지금까지 판매해 오고 있다. 

한진의 경우 2년마다 지하수 개발·이용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2019년 18번째 연장돼 올해 11월24까지 개발·이용이 가능하며, 꾸준히 지하수 1일 취수량 증산을 시도하면서 제주도와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제동흥산으로 시작해 한진그룹으로 이어지는 먹는샘물 다툼은 제주의 생명수 지하수가 갖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폐냉장고 등 각종 쓰레기 투척으로 오염된 서귀포시 대정읍 곶자왈의 습지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빗물이 지하수되는데 ‘수십년’

지하수 없는 삶을 제주도민들은 상상할 수 없다. 제주도는 지질·지형학적으로 지하수 없이는 마실 물을 해결할 수 없다. 

2월 현재 제주 4785개 지하수 관정에서 매일 161만3552톤 규모의 지하수가 허가(취수)되고 있다. 절반이 넘는 87만6584톤이 농어업용에 사용되고 있으며, 71만856톤은 생활용으로 쓰이고 있다. 
        
최근 제주 곳곳의 용천수가 메말라가고 있다. 물이 솟아나던 곳이 시멘트로 뒤덮여져 원형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1000곳이 넘던 용천수는 현재 661곳 정도 확인되며, 이중 364곳은 매립·멸실됐거나 존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직 지하수와 용천수의 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지하수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말랐던 용천수가 다시 솟아나는 점 등을 토대로 용천수가 지하수라고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많은 지역에서 지하수 고갈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지하수는 지표면에 내린 비가 오랜 기간 지하에서 자연 여과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진다. 제주 서부 일부 지역의 경우 빗물이 지하수가 되기까지 최대 55년이 걸린다는 연구조사도 있다.

지하수가 스며드는 제주 숨골 지형에 일부 축산업자들이 축산폐수를 무단으로 배출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 도민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몇 년전 축산폐수 논란으로 지하수 오염 문제가 대두된 바 있다.

당시 축산폐수가 버려진 인근 지역에서 취수된 지하수에서 대장균군 등이 검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장균군은 동물의 장 속에 사는 대장균과 비슷한 균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지하수가 분변 등에 의해 노출됐다는 의미다. 

2019년에는 제주 서부지역 상수도 공급을 반세기 넘게 책임져온 제주시 한림읍 옹포천 옆에 위치한 한림정수장은 지하수가 메말라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 파괴도 지하수가 오염되고 고갈되는 원인으로 꼽힌다. 곶자왈 지대에 많은 숨골이 제 역할을 못할정도로 오염되거나 파괴되면서 덩달아 제주의 지하수도 같은 처지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제주도가 지하수자원특별관리구역을 기존 160㎢에서 635㎢로 3배 확대해 지정한 것은 희소식이나, 좀 더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법이 시급하다는 도민 사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61년 최초의 지하수 관정이 개발된 지 60년, 1991년 전국 최초로 지하수 규제·관리가 시행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의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매일 취수되는 제주 지하수의 50% 이상은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제주연구원 제주지하수연구센터 박원배 센터장은 지금의 제주 지하수 관리 체계는 ‘공수화(公水化)’라고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제주도는 공수화라는 개념으로 지하수 등 물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현재 공수화라고 표현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박 센터장은 “공공재로서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하는 제주의 물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공수화 개념으로 제한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공수화 개념없이 개발이 허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기관이 공수화 개념으로 물 관리에 힘써야 하지만, 각 기관·부서마다 물에 대한 개념이 달리 적용되고 있다. 통합적인 물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공수화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기 힘들 수 있지만, 물과 관련된 모든 개발·정책에 통합적인 공수화 개념이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의 지하수와 상·하수도 등 물과 관련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제주참여환경연대 홍영철 대표도 지하수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다고 쓴소리했다. 

홍 대표는 “최근 행정이 제주신화월드에 지하수 취수를 추가로 허용했다. 지하수 고갈 등의 문제가 대두되고, 하수 역류 사태 등으로 문제가 많은 개발 사업에 지하수 관정을 추가로 허용해주는 것 자체가 행정의 물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취수되는 지하수의 50% 이상이 농업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빗물을 활용해 농업용으로 쓰이는 지하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제주도가 1300억원 정도 투입해 농업용수 광역화를 진행하는데, 58개 지하수 관정을 추가로 뚫으려 한다. 공수화 개념의 물 보전·관리와 정반대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곳곳에서 사적 이익을 위해 제주의 대표적 공공재인 지하수가 쓰이는 상황이다. 행정 당국이 지하수 보전과 물 보전에 대한 의지를 되짚어야 한다는 도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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