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12) 빠른 놈 세 번 얻어먹나

* 잰 : 빠른 (잰걸음)
* 싀 블 : 세 번, 세 차례

옛날에 개나 돼지를 집에 많이 길렀다. 취향이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거의 끊이지 않았다. 개나 돼지는 새끼를 한꺼번에 많이 낳는다. 원래 다산(多産)이란 열이 넘는 수가 적지 않았다.

아잇적에 재미있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개나 돼지는 제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는 일게 누워 젖을 물렸다. 그러면 배고픈 새끼들은 한꺼번에 덤벼들어 옥신각신하며 한 덩어리로 엉키지 일쑤였다. 어미 젖꼭지를 찾아 머리로 들이받으며 비집고 들어가 차지해 젖을 빨았다.

젖꼭지를 차지하지 못한 놈을 앞의 놈들이 젖꼭지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할 판이다. 주인에 먹이를 잘 주어야 어미 젖이 넉넉하게 나올 것인데, 옛날 그렇게 가축을 잘 먹일 여유가 있었는가. 겨울 해는 짧다고 점심은 감저(고구마) 두어 개로 때우던 시절이었다.

그 결과는 성장 과정에 눈에 띄게 현저했다. 통통하게 살이 찌는 놈, 말라깽이처럼 빼빼한 놈. 

가만 보면, 동작의 차이였다. 살찐 놈은 어미 젖을 잽싸게 차지해 배를 불린 놈이고, 비싹 마른 놈을 행동이 느려 만날 쫓겨 얻어먹지 못한 놈인 게 분명해진다. 빠른 데다 야무진 놈은 동작이 느리고 미련한 놈이 먹을 몫을 차지하다시피 한 것임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눈이 벌겋게 어미 젖을 향해 돌진하지만 결국엔 ‘잰 놈’이 늘 독점하고 ‘느린 놈’을 설거지나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느린 놈이 한 번 겨우 얻어먹을 참에 잰 놈은 ‘세 번’이나 차지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어느 날 제주시내에서 촬영한 사진. 목초지에서 말과 돼지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어린 목동은 돼지를 돌보고, 어머니는 산열매를 따고 있다.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어느 날 제주시내에서 촬영한 사진. 목초지에서 말과 돼지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어린 목동은 돼지를 돌보고, 어머니는 산열매를 따고 있다.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경쟁 사회에서 왜 이런 현상이 없을까. 동작 빠른 사람이 이득을 보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말이다. 그런 자가 이득을 보는데 굼뜬 사람은, 제 몫까지 놓치는 수가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다부져 데면데면하지 못하고 몰리면 당연히 얻어먹어야 할 것까지 잃어버리기 일쑤가 되고 만다.

“어이고 게난 이녁 떡 반도 받아먹지 못호였댄 말이라?”
(어이고 그러니까 자기 떡 반도 받아먹지 못했다는 말인가?)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니, 거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배짱도 있어야 하고 뒷심도 있어야 하겠지만, 일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민함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속도 시대다.

“뽀르민 뽀른 값 혼다”고 너무 빨라도 낭패할 빌미가 될 수도 있으나, 어느 정도라야지 너무 느리거나 미적대다 보면 손해를 보는 세상이다. 

‘잰 놈 싀 블 얻어먹나’는 사실을 그대로 담아낸 말이다. 실제가 그렇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