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66) 봄비 맞고 딸 하나 낳고 / 윤소연
지난 겨울 큐피트가
부메랑으로 돌아온 봄
한 사날 가출했다
슬몃 푼 옷깃처럼
꿈결에 내려온 태몽
꽃배암의 삽화 한 장
몸엣것 끊겼어도
삼신할미 점지해 주면
배꼽 위
바가지만 올려놔도
애를 밸까?
실비에
젖은 자궁 열고
태어나는 꽃망울들
-윤소연 [봄비 맞고 딸 하나 낳고] 전문-
2월의 봄기운을 여지없이 무너지게 만들던 꽃샘추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살짝 뿌린 봄비에 꽃망울들이 터졌다. 보송보송 아기 솜털 같은 꽃망울에도 이슬 방울이 맺히고, 물방울보다 더 투명할 것 같은 연두빛 이파리들 사이로 하얀 젖니 같은 별꽃이 반쯤 피어 있다. 주변의 공기마저 연둣빛 물이 들어 있을 것 같은데, 그 연둣빛 바탕 위에 하얀 별꽃이 성스럽다.
어린것들의 저 투명성. 그 어린 것들에 닿아있는 눈빛으로 투명함이 들어와 머릿속을 비우고 몸을 비우며 결국엔 세상 모든 더러움과 근심과 어둠이 다 사라져 나도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투명해질 것만 같은 것이다.
저 투명한 꽃을 피워내기까지 지난 겨울의 행적을 다시 되돌아보지는 말자. 때론 앞뒤 뚝 자르고 현재만을 살아도 좋을 것. 아주 짧은 이 시간을 위해 기나긴 겨울이 필요했던 것이니 그 고개 숙인 시간의 헌신을 충분히 보상해 주기 위해 우리는 현재의 이 맑음을 마음껏 누리야 하는 것이다.
다시 3월. ‘몸엣것 끊겼어도’, ‘애를 밸’것 같은 3월이다. 손만 잡아도 꼬물꼬물 새 생명이 눈을 뜨고, 그 작은 것들의 소중함이 이토록 사무쳐지는 3월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