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주 소통협력 주간] 주민이 주민 돕는 방식으로 이뤄낸 ‘건강한 먹거리 기본권’

 

2021 제주 소통협력 주간에서는 지난 1년간 제주 곳곳에서 벌어진 주민주도형 문제해결 프로젝트인 ‘리빙랩’의 내용이 소개됐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가 판을 깔고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의 주제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굴하고 대안까지 찾는 생활실험이었다.

27일 ‘사회적 협력을 통한 지역 문제 해결 포럼’에서는 강순원 한살림 제주 전무이사가 발표한 '건강한 먹거리 기반 커뮤니티 돌봄' 프로젝트는 먹거리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 돌봄 시스템이다.

노형동주민센터에 설치된 나눔냉장고. ⓒ제주의소리
노형동주민센터에 설치된 나눔냉장고. ⓒ제주의소리

취약계층의 열악한 식생활이 영양부족, 만성질환 악화는 물론 심리적인 결핍까지 유발한다는데 주목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작년 9월 노형동 주민센터에, 11월에는 인근 아파트 단지 경로당 두 곳에 나눔냉장고가 설치됐다. 식재료를 채워놓고 필요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식재료 조달은 한살림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이뤄졌다. 매달 1회 반찬나눔도 진행된다. 나눔냉장고 옆에는 기부한 주민들의 이름이 적히게 되는데,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한 식재료 나눔을 통해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일방적 시혜가 아닌 ‘주민이 주민을 돕는’ 방식이었다. 지역이 함께 서로 돌보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한살림제주의 정신과도 일맥상통이다.

제철의 친환경 먹거리를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철학 아래 215명이 이 먹거리 돌봄에 동참했고, 170명이 반찬나눔을 통해 건강한 식재료를 공급받았다. 나눔냉장고를 통해 기부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나눔문화는 확산됐다. 

27일 2021 제주 소통협력 주간 '사회적 협력을 통한 지역 문제 해결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강순원 한살림제주 전무이사. ⓒ제주의소리
27일 2021 제주 소통협력 주간 '사회적 협력을 통한 지역 문제 해결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강순원 한살림제주 전무이사. ⓒ제주의소리

강순원 전무이사는 “노형동은 부촌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은 양극화가 심화된 지역”이라며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영양불균형이 높고 이로 인한 각종 유병률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주목한 것은 먹거리가 기본권이라는 점”이라며 “누구나 좋은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게 저희가 생각한 가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민센터,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수평적인 돌봄 문화가 일어나는 경험을 나눴다”며 “이번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모심회라는 임의단체도 출범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현수 제주도의회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내에서 자립하고, 몸이 아픈 어르신도 활동보조인과 서포터하는 사람들을 통해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며 “건강한 먹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운동도 이런 철학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동참한 권유리나 노형동주민센터 주무관은 “코로나19로 폐업하는 가게와 실직자가 늘면서 긴급지원 건수가 급격히 늘었다”며 “먹을 반찬이 없어서 아이들이 친척집에 뿔뿔이 흩어지거나, 수중에 돈이 없다보니 열흘 동안 굶은 사람이 발견되는 등 최근 눈물 나오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권 주무관은 “나눔냉장고에 가족 단위는 물론 초중고 아이들이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기부하고, 이 모습을 주민들이 바라보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며 “이런 먹거리 돌봄이 노형동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발표자 및 패널들의 주요 발표 요지. 

강순원 한살림제주 전무이사

한살림은 그동안 농업, 농촌을 살리고 건강한 식탁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창립 30년이 지나 다시 주력하는 게 돌봄이다. 먹거리를 먹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건강하게 생활과 생산과 연계하는 일이다. 먹거리 돌봄을 준비해왔고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이번 리빙랩 사업을 통해 체계적인 시행 기회를 얻었다.

먹거리 운동을 해보면 취약한 계층일수록 먹거리에서 어려움이 많고 안 좋은 먹거리에 더 많이 노출돼있었다. 이로 인해 질병이 생기거나 생활상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사각지대가 더 늘어난 것을 보게 됐다.

우리가 생산하는 건강한 먹거리를 취약계층을 비롯한 지역주민에게 나누는 길을 모색하고, 건강한 식문화를 확산해서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핵심은 이것들을 만들어가는 주체의 문제였다. 일방적으로 주고, 받는 게 아니라 지역과 공동체를 위해 직접 주민들이 수행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려 했다. 건강한 먹거리를 기반으로 한 연대다.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먹거리가 기본권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좋은 먹거리를 먹는데 곤란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게 저희가 생각하는 가치다.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식품 공급이 불안정하고 영양부족이나 관련 유병률이 높았다. 

한살림제주 내에 이를 담당하는 팀을 구성하고 관련 자료조사를 했다. 전문성을 가진 현장 복지체계에 있는 분을 만나면서 설계를 진행했다.

저희가 대상으로 한 지역은 노형동이다. 일반적으로 노형동은 부촌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의외로 양극화가 심화된 지역이다. 잘 사는 분은 잘 살지만 그렇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았다. 인구 수 대비 복지대상자가 18%로 평균보다 높다.

‘제철의 친환경 먹거리를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영양 불균형 취약계층에게 조리법을 가르쳐 드릴 필요가 있다’, ‘영양대별 식단이 필요하다’, ‘커뮤니티 돌봄문화를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나눔냉장고는 주민센터와 임대주택 경로당에 설치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됐다. 주민센터의 경우 행정과 주민, 지역자생단체, 한살림제주가 협업한 것이고 임대주택 경로당의 경우 한살림제주와 지역주민들이 같이 한 냉장고를 채우는 방식이었다. 영락사회복지관 등은 활동할 수 있는 정보를 줬다. 

반찬나눔은 한살림제주 센터에 내에 공유주방이 있는데 이 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반찬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주민센터에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고, 반찬과 식재료를 받은 주민이 다시 자기가 만든 반찬을 나누는 일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경험을 했다. 이번 사업을 하면서 100명이 넘는 회원이 조직됐고 이들이 ‘모심회’라는 임의단체를 만들게 됐다.

프레시안이라는 언론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이 기고 중에 우리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안전하게 사회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와 지역생협이 같이 하는 좋은 사례’라고 소개됐다. 

이번 활동은 먹거리 돌봄 생태계를 만들고 주민들이 수평적 돌봄 문화를 만드는 시도다.

27일 2021 제주 소통협력 주간 '사회적 협력을 통한 지역 문제 해결 포럼'에서 패널토론에 나선 고현수 제주도의원(오른쪽)과 권유리나 노형동주민센터 주무관. ⓒ제주의소리
27일 2021 제주 소통협력 주간 '사회적 협력을 통한 지역 문제 해결 포럼'에서 패널토론에 나선 고현수 제주도의원(오른쪽)과 권유리나 노형동주민센터 주무관. ⓒ제주의소리

고현수 제주도의회 의원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고용복지의 한 단편이다.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 건강, 주거, 보건, 의료가 이뤄져 장애인은 각종 서비스를 통해 탈시설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자립생활,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철학에 기초한다. 제주는 여기에 건강한 먹거리 돌봄도 특화시켜서 포함시키면 참 좋겠다는 게 결론이다.

어르신의 경우도 몸이 안 좋아지면 요양시설로 가서 그곳에서 생을 마무리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 그것보다는 요양보호사나 여러 인프라를 통해서 가정 내에서 최종적으로 삶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중증장애인도 시설에 머무는 것보다는 지역사회 내에서 활동보조인이나 서포트하는 사람들과 보조수단을 통해서 잘 지낼 수 있다. 제가 유니버설 디자인을 많이 강조하는데, 교통·주거·건축물에 대한 접근성이 강화되면 장애인들이 못 살아갈 이유가 없다.

커뮤니티와 먹거리 돌봄은 인권적인, 권리가 기반이다. 건강한 먹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운동도 이런 철학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먹거리의 경우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의 경우 신체적 핸디캡으로 섭식 관련 장애가 있거나 운동량이 모자라 비만율이 높은 경우가 많다. 

노형동에 실질적인 복지 대상 인구가 많다. 노형동의 저소득층 인구가 타 읍면동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거다. 

유의해서 살펴봐야 할 것은 먹거리 돌봄이 사실 시혜와 수혜 입장이 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서 상호협력(을 뒷받침하는) 방안을 어떻게 조례로 방점을 찍을 수 있을지, 제도적으로 같이 고민하겠다.

권유리나 노형동주민센터 주무관

사회복지 현장에 들어가면 먹는 것 하나에 소득격차에 따른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수급자들의 아이들을 보면 비만율이 높은 경우가 있다. 야채나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로, 노형동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실직자와 폐업자에 대한 긴급지원이 늘었다. 이전에는 하루 1~2건 정도였는데 이제는 하루종일 상담을 해야 할 정도로 하루 최소 10~20건에 이른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열흘을 굶다 발견되시는 분들이 매달 한 두 명이 나타날 정도다. 수중에 돈이 없다보니 음식을 사먹을 수 없고, 기력이 쇠해지면서 어느새 열흘이 지나게 된 거다.

정말 눈물 나오는 얘기가 많다. 먹을 반찬이 없어서 아이들이 친척집에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도 있다. 

먹거리 돌봄이 노형동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확대됐으면 좋겠다. 개인이, 가족들이 주민센터 나눔냉장고를 왔다갔다하고, 아이들이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서 물품을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기부문화가 확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기부를 하고, 주민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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