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관정 개발 60년의 빛과 그늘

오늘 아침 마신 삼다수 한 모금은, 어쩌면 반세기 전 한라산 자락에 내린 한줄기 비였는지 모른다. 국내 대표 먹는샘물 제주삼다수가 실은 땅속에서 오랜 ‘숙성’을 거친 지하수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삼다수 뿐만이 아니다. 제주 지하수가 다 그렇다. 8년전 쯤 눈에 띄는 연구 결과가 나왔었다. 조사 주체는 제주도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당 연구에 따르면, 제주 전체 지하수의 나이가 평균 22년, 최고 62년, 최저 2년으로 분석됐다. 여기서 ‘나이’는 지하수가 땅속에 머무는 기간을 말한다. 삼다수는 평균 18년으로 나타났다. 

비가 지하로 스며들어 18년동안 화산암반층을 떠돌다가 인체에 좋은 성분을 머금고는 삼다수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삼다수가 세계 최고의 물이 된 비결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경이로운 제주 자연에 새삼 감사를 표한다.  

제주 최초 지하수 관정의 나이가 올해 60이라고 한다. 그 세월의 의미를 되새기다가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쳤다. 1961년 10월, 첫 관정을 뚫은지 10년이 흐를 때까지도 지하수는 흔한 존재가 아니었다. 당시는 대부분 용수를 바닷가 용천수에 의존할 때였다. 

어릴적 추억이었으니 50년 가까이 지났다. 그래도 손에 잡힐 듯 기억이 생생하다. 바윗틈에서 콸콸콸 솟아나던 시원한 물줄기를 잊을 수 없다. 2~3분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수량도 풍부했다. 사시사철 마르는 법이 없었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가. 그땐 미처 그 가치를 몰랐다.  

그랬던 용천수가 시나브로 메말라갔다. 기억의 단절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는, 순간적인 일로 여겨질 만큼 용천수의 고갈은 전격적으로 다가왔다. 커가면서 추억의 현장을 자주 찾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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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관정 개발 모습(왼쪽)과 해안 용천수. <그래픽디자인=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지난해 발표된 한 조사에 의하면, 1999년 1025곳에 이르던 용천수는 2014년 661곳으로 급감했다. 매립·멸실된 용천수가 270곳,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은 용천수도 94곳에 달했다. 남아있는 용천수도 수량이 크게 줄거나 물이 흐르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원인은 복합적이겠으나 우선 난개발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마구잡이식 개발이 지하수 수맥을 교란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무분별한 착정 자체도 원인일 수 있다. 지하수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말랐던 일부 용천수가 다시 솟아나는 경우를 보면 짐작이 간다. 나아가 이는 영원할 것 같은 지하수도 언젠가는 고갈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경고등은 여러차례 켜졌다. 

2012년 수자원관리 종합계획 용역을 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8년 후 제주에 생활용수 부족 사태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루 최대 수요량을 기준으로 2020년 6만6739톤, 2025년에는 9만8278톤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어느덧 2021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당시 전망은 수요 급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인구, 관광객, 단위급수량 등을 감안했다. 비록 아직까지는 비명을 지를 만큼 큰 위기가 없었는지 몰라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가뭄 때 중산간 지역 제한급수, 해안지역의 해수 침투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5000개에 육박하는 지하수 관정이 걱정거리다. 올 2월 현재 지하수 관정은 4785개공. 1일 취수 허가량은 161만3552톤이다. 이는 지속 이용 가능량의 90.3%를 차지한다. 더 이상 관정을 뚫을 여력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1일 허가량 161만여톤 가운데 농어업용은 87만6584톤으로 절반이 넘는다. 특히 농업용수의 지하수 의존율은 96.2%에 달한다. 제주에서는 농작물도 삼다수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이건 낭비다. 소중한 자원을 허투루 쓰고 있는 것이다. 빗물을 활용해도 충분하다. 

생활·농업용수에 대한 통합 관리, 농업용수의 지하수 의존도 낮추기 등은 오래전부터 명제처럼 제기돼온 문제다. 허나 그때 뿐이다. 

“제주도가 1300억원 정도 투입해 농업용수 광역화를 진행하는데, 58개 지하수 관정을 또 뚫으려 한다” 환경단체 관계자가 아리송하다는 듯이 던진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지하수 개발 60년을 맞았다니, 유년시절 용천수에 대한 강렬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자연과의 교감, 공존으로만 치면 그때가 좋았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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