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7주년 특집-제주 소극장의 현실과 미래] ② 제각각 소극장 사연들

실험적 무대, 창작의 산실 '소극장'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면 금지' 코로나19 방역의 조건은 안타깝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소극장들을 백척간두에 서게 하고 있다. 소극장은 창작을 꿈꾸는 무대예술인들에게나, 마니아적 취향을 향유하는 관객들이 함께 울고 웃는 공간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제주 소극장의 현 주소를 확인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 발전 대안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 이별 - 미예랑 소극장 

겹겹이 쌓인 고지서들, 2019년에서 멈춘 포스터들, 공연장 구석구석 쌓인 먼지. 수명을 다한 소극장의 풍경이다.

제주시 중앙로 인근 지하에 위치한 미예랑 소극장은 올해부터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다. 문을 연 2007년부터 돌이켜보면 15년 역사.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동안 소극장을 지켜온 김광흡 대표는 2008년부터 2~3년 동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2008년은 극장 운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다. 

“소극장 시작과 함께 ‘도심 속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했다. 초창기 작은 음악회는 꽤 반응이 좋았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대중)음악인들이 주로 무대에 섰는데 무대 앞까지 관객으로 꽉 채워서 공연을 관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향유를 이어갔어야 했는데 아쉽다.

2019년까지 이어갔던 작은 음악회, 여기에 유서 깊은 극단 이어도 작품들은 미예랑 소극장을 대표하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시작한 소극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동력을 상실했고 코로나19는 결정타로서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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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운영을 중단한 미예랑 소극장(제주시 중앙로 72). ⓒ제주의소리

어느 소극장이든 애초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를 밑바탕에 두고 ▲몇몇이 공간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운영 인력에 대해 충분히 보상을 줄 수 없는 형편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사정으로 운영 인력이 빠져나가는데 보충하기도 어려운 문제 ▲마찬가지로 비슷한 문제로 어려워지는 공연팀 섭외 ▲낡은 시설과 장비 등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문제가 불거졌다. 그것들을 짊어진 김 전 대표의 어깨는 갈수록 무거워졌다.

그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점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도태 될 건 도태되고 새로운 건 새롭게 이어가야 한다. 열심히 뛰는 젊은 후배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티며 기회를 노리는 공간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가능하면 계속 소극장으로 남아있어 달라”고 애써 웃음 지었다.

끝으로 김 전 대표는 ‘민간 소극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소극장은 지역 예술 문화의 소금이다. 대관 위주의 극장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다양하고 열정적인 예술들이 소극장에서 피어난다”고 강조했다.

# 새 출발 - 간드락 소극장

주위를 둘러보면 감귤나무와 수풀, 좌우를 가르는 도로 위 자동차들, 그리고 드높은 하늘뿐이다. 텅 빈 듯 보이지만 그래서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곳. 새 보금자리를 찾은 간드락 소극장이다.

내비게이션도 아직 완전히 반응하지 못한 제주시 용강동 513번지(아봉로626-50). 언뜻 보면 지나칠 만한 작은 길로 들어가 비포장도로까지 지나면 간드락 소극장이 등장한다. 2004년 아라동, 2014년 삼도2동에 이어 세 번째 장소다. 

지역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라동 10년, 떠밀리듯 제주시청 문화의거리 사업에 참여했지만 태풍 침수로 씁쓸하게 떠나야 했던 삼도2동 5년, 그리고 거처 없이 보낸 2년. 간드락 소극장의 지난 역사는 제법 굴곡진 사연을 지니고 있다.

용강동 시대는 약 1만5867.7㎡(4800평) 규모의 땅을 터전으로 삼는다. 지난해 11월 11일부터 30일까지 이진경 회화전·고경화 설치전 ‘싱싱하게 살아 있으라’로 간드락 소극장의 새 출발을 알렸고, 11월 20일에는 제주밴드 시크릿코드의 제주민요 공연도 치렀다. 

현재는 전시·사무 공간과 작은 주방을 차린 아담한 건물 하나를 두고 있다. 앞으로 소극장을 포함한 공간을 하나씩 세워나간다는 게 오순희 대표의 구상이다. 무엇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 풍경은 소극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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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동으로 장소를 옮긴 간드락 소극장(아봉로626-50) 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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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을 연 간드락 소극장. ⓒ제주의소리

오 대표는 “해장국집 지하 건물에서 나와서 2년을 떠돌아 다녔다. 기획자로서만 활동했고 소극장 활동은 공간이 없으니 아예 엄두가 나질 않았다”면서 “다행히 소중한 인연 덕분에 이곳으로 왔다. 자유로운 예술 공간, 다양한 체험 공간을 자연 속에서 만들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간드락 소극장은 사실상 임차 걱정 없는 조건으로 용강동에 자리 잡았다. 후원자가 응원하는 마음에서 파격적인 계약 조건에 동의했는데, 오 대표는 “내가 죽을 때까지 사용 가능하다”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 대표는 “감사하게 주어졌으니 제주도민들이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비록 갈 길이 멀지만 넓은 공간이 가진 매력을 십분 활용해 소극장을 뛰어넘는 가치를 담아내겠다는 의지다.

# 도약 - 채플린 소극장

얼핏 보면 모르고 지나갈 제주시 아라동 도로 옆(중앙로 491), 불쑥 튀어나온 가림막 아래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가면 아담한 소극장이 등장한다. 50석도 겨우 채울 작은 극장이지만, 알찬 구성으로 제주 음악인들의 새로운 거점으로 주목받는 채플린 소극장이다.

채플린 소극장은 지난 2019년 3월 개관한 신생 공간이다. 분주한 첫 해를 보내고 곧바로 코로나19를 만나면서 위기에 봉착했지만, 김남훈 대표는 “다행히 버틸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음에도 쓰러지지 않았던 비결은 ‘모기업’ 격인 제주빌레앙상블과 생존을 위한 노력 덕분이다.

채플린 소극장은 2009년 창단한 제주 창작 음악 단체 ‘제주빌레앙상블’이 만들고 운영하는 공간이다. 김 대표가 단체와 공간 대표직을 모두 맡고 있다. 김 대표 역시 소극장만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다. 그래서 제주빌레앙상블을 통한 다양한 지원 사업에 도전하면서 소극장 운영에 숨통을 틔우려 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지원사업,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과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쇼케이스 선정 등 의욕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실력 있는 젊은 음악인들이 뭉친 덕분이다. 코로나19가 덮친 지난해는 제주문화예술재단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위기 극복을 위해 애썼다. 여기에 자체 수익사업도 병행하면서 자립도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다.

덧붙여 제주빌레앙상블은 2020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행정·시설 등 운영에 필요한 3명 인건비를 일부 지원 받고, 세제 혜택도 받는다. 김 대표는 “예비사회적기업이 됐다고 반드시 인건비를 지원받는 건 아니다. 예전보다 절차가 까다로워져 별도의 과정을 통과해야 인건비를 지급 받는다. 4대 보험 가입 직원을 기본적으로 고용해야 하고, 성과도 증명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조건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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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소극장(중앙로 491) 내부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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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소극장 입구. ⓒ제주의소리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 컨설팅에서도 늘 강조하는 것이 재정자립도다.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서는 재정자립이 필수인데, 예술 분야는 여느 사회적기업 산업들과는 생산에 대한 성격이 다르다”며 “간단히 말해 김치를 만드는 사업장이라면 만들어 파는 과정이 명확한데, 트럼펫 연주자 5명이 모여서 어떤 것을 팔 수 있나. 지금도 계속해서 자구책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예술로서 음악'이라는 마음가짐은 지키고 싶다”고 밝혔다.

채플린 소극장의 장점은 음악 특화로 설명할 수 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음악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장비·시설들을 갖추고 있기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수고를 아낄 수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대관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앞이 막막했는데 어떻게 1년을 버텼다. 위기를 발판 삼아 올해는 기획 사업을 더 많이 시도할 예정이다. 채플린뮤직페스티벌을 긴 호흡으로 이어가고, 무엇보다 이제야 음악을 시작한 젊은 예술가들과 손잡고 활동 기회를 주려 한다”고 포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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