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7주년 기획 - 텅 빈 교실,위기의 제주교육] ② 학교 간 지역불균형 양극화

저출산과 이주인구 감소로 제주 교육현장의 학령인구 감소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입학생이 없는 학교가 늘어나고, 지역별 학생 쏠림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17주년을 맞아 위기의 제주 학교현장을 점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편집자 주

"지인과 대화를 하는데 제 모교 전교생이 100명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한 학년 수를 잘못 말했겠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진짜 전교생 수가 100명대로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죠. 왠지 서글퍼지더라고요. 차라리 콩나물 교실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러다가 우리학교가 아예 사라지는건 아니겠지요"

제주남초등학교 졸업생인 강상현(42.가명)씨는 얼마 전 지인과 모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들짝 놀랐던 사연을 떠올렸다. 1946년 도심지 내 설립된 제주남초는 강씨가 재학중이던 30년 전만 하더라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는 학생 수도 학생 수지만 스포츠, 경시대회 등 다양한 대외 활동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었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강씨는 "지나고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또래들 사이에서도 학교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들이 컸었던 것 같다"며 "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제주를 떠나 살았지만 다시 돌아온 것이 5년도 넘었는데 이 정도로 제 모교가 심각한 상황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고 씁쓸해 했다. 

제주남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20년 만에 500여명에서 100여명대로 반의 반 토막이 났다. ⓒ제주의소리
제주남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20년 만에 500여명에서 100여명대로 반의 반 토막이 났다. ⓒ제주의소리

제주지역 학령인구의 감소 추세는 단순히 숫자에만 국한된 것 만은 아니다. 보다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더 큰 문제는 지역 간 불균형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을 마주하게 된다. 원도심의 급격한 쇠퇴가 곧 학교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03년 기준으로, 제주남초의 전교생 수는 524명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 학년에 약 100여명이 3학급으로 나뉘어져 수업을 들었다. 1907년 설립돼 제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제주북초도 같은해 전교생이 525명으로 학년당 3학급씩 운영됐다.

같은 해 제주동초의 전교생 수는 훨씬 더 많은 1487명이었다. 한 학년에 적게는 220여명에서 많게는 260여명이 분포돼 있어 학년당 7~8학급씩 운영돼 왔다. 제주서초 역시 전교생 1417명으로 7~8학급으로 구성됐었다.

명성을 이어오던 제주시 주요 동(洞)지역 초등학교들의 사정은 2010년도에 접어들며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대표적으로 2010년 제주남초의 학생수는 374명, 제주북초 458명으로 줄었다. 제주동초와 제주서초의 경우도 각각 전교생 942명, 989명으로 1000명대가 무너졌다.

다시 10년 후인 2020년에 이르러서는 제주남초 전교생 수는 131명으로 반의 반 토막이 났다. 제주북초 학생수는 206명으로 급감해 학급수도 한 학년에 1~2개만 남았다. 제주동초는 540명, 제주서초는 640명으로 학급수도 3~4개 학급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대부분 20년도 지나지 않아 기존 학생 수의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제주동초등학교 전경. 교실로 쓰던 공간이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체육관 등의 시설로 리모델링 대체됐다. ⓒ제주의소리
제주동초등학교 전경. 교실로 쓰던 공간이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체육관 등의 시설로 리모델링 대체됐다. ⓒ제주의소리

위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제주도교육청 중기학생배치계획에 따르면 2025년에는 제주남초 120명, 제주동초 478명, 제주서초 515명까지 학생수가 더 줄어든다. 도시재생 사업과 맞물려 제주북초의 학생수만 240명으로 조금 늘어나는 수준이다. 인근의 일도초의 경우 2020년 158명에서 2025년에는 105명까지 줄 것으로 예측됐다. 전교생 100명 선까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학생수의 감소는 자연스럽게 지역상권의 쇠퇴로 이어졌다. 삼도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양모(55)씨는 "예전에는 누구 할 것 없이 학교 근처를 가장 목 좋은 곳으로 꼽았지만, 사정이 달라진지 오래다. 편의점이 들어선 것도 분명 영향은 있었는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 자체가 거리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도동에서 문구점을 운영중인 한 점주는 "학교 근처를 봐라. 문구점이며 서점이며 어느 누가 살아남았나.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활기가 줄었다"며 "돈 벌려고 했으면 (가게를)진작에 접었다. 지금은 큰 의미 없이 유지만 하는 수준"이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5년 후면 전교생 100명대까지 위협받을 위기에 놓인 일도초등학교. ⓒ제주의소리
5년 후면 전교생 100명대까지 위협받을 위기에 놓인 일도초등학교. ⓒ제주의소리

제주시내 동(洞)지역 중 동·서·남·북 4개 초등학교를 표본으로 삼았지만, 여타 학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법적으로 소규모학교의 기준은 300명 미만 학교다. 제주시 동(洞)지역 초등학교 34곳 중 소규모학교는 광양초(261명), 봉개초(175명), 일도초(158명), 제주남초(131명), 제주북초(206명), 한천초(264명), 해안초(127명) 등 7곳이다.

특히 교육부는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올해부터 학생수 300명 이상 400명 미만 학교도 소규모학교로 판단하도록 권고했다. 바뀐 기준을 적용하면 도리초(301명), 도평초(324명) 등도 소규모학교에 포함된다. 도합 9곳으로 동지역 초등학교 4곳 중 1곳은 소규모학교인 셈이다.

제주 전역으로 범위를 넓히면 도내 초등학교 120곳 중 23곳은 2021학년도 신입생의 수가 한 자리수에 그쳤다. 초등학교 5곳 중 1곳은 신입생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이중 한림초 비양분교장, 가파초 마라분교장, 추자초 신양분교장은 신입생이 1명도 없었다. 마라분교와 비양분교는 휴교를 이어가게 됐다.

반면 도시계획으로 인해 인구유입이 증가한 초등학교의 학생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03년 565명이었던 아라초의 경우 2020년 학생 수는 1758명으로 3배 이상 뛰었다. 노형초, 동화초 등의 경우 학생수가 유지되거나 조금 줄어들었지만 이는 인근에 백록초, 삼화초 등이 신설됨에 따라 학생들이 고루 퍼진 결과다.

원도심 내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한 교육계 인사는 "학교의 자율성을 높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각 학교의 활성화 방안이 교장이나 교사 개인의 역량에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원도심 학생 수 감소는 제주도정 정책과도 맞물려야 하는 사안이지만, 교육계와 지역사회가 전반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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