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7주년 특집-제주 소극장의 현실과 미래] ③ 타 지역 소극장 정책과 과제

실험적 무대, 창작의 산실 '소극장'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면 금지' 코로나19 방역의 조건은 안타깝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소극장들을 백척간두에 서게 하고 있다. 소극장은 창작을 꿈꾸는 무대예술인들에게나, 마니아적 취향을 향유하는 관객들이 함께 울고 웃는 공간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제주 소극장의 현 주소를 확인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 발전 대안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소극장(小劇場, little theater).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단어 ‘소극장’을 두 가지로 풀이한다.

뜻 그대로 ‘규모가 작은 극장’에 더해 ‘대극장의 상업성을 지양하고 예술성을 추구하며 관객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정의한다. 영어사전 역시 비슷한 의미다.

협소한 규모와 순수성에 무게를 두는 예술 활동, 동시에 이러한 특징은 필연적으로 열악한 경제구조와 맞물려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빈틈없이 50석을 가득 채웠다고 가정해보자. 티켓도 한 장에 2만원으로 책정한 공연이다. 이렇게 최대치를 맞춰도 100만원을 번다. 단원 수가 12명인데 10만원도 지급하지 못한다. 공연 일정을 늘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건 1~2시간 분량이지만 준비 과정은 최소 몇 개월이 소요된다. 그냥 대충 간단하게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예술가라면 그건 안되는 일 아닌가.” 

지난 기사에서 소개했던 ‘2020 공연예술조사’ 통계에 실제 사례까지 꺼내지 않아도, 소극장으로 돈 버는 건 어렵고, 쓸 데는 많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돈 먹는 하마에 사람들의 관심도 적고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부담해야 하는 소극장이 왜 있어야 하냐는 궁금증이다. 특히 유튜브, 넷플릭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 기술 발전에 힘입은 ‘볼거리’들은 갈수록 새로운 형태를 띠고 그 안에서 진지한 고민까지 녹여내고 있다. 이런 양적·질적 진화가 이뤄지는 시대에 과연 소극장은 왜 존재해야 할까.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대면 제한까지 더해졌다.

이런 질문에 제주지역 모 소극장 대표 A씨는 이렇게 말한다.

“언택트(Untact)로 예술을 향유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고 만나는 공간은 꼭 필요하다. 내 앞에서 배우가 혼신을 다해 쏟아내는 열정, 무용수들의 춤사위, 악기와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귀 뿐만 아니라 온몸을 사로잡는 경험은 최신 기기들이 개발 되도 단언컨대 대신할 수 없다. 언젠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기술들이 나오겠지만, 예술과 인간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봐도 쉽게 대신하지 못한다.”

취재를 위해 만난 다른 소극장 관계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내보였다. 특히 소극장은 갈수록 말라가고 공공·대극장만 남아있는 제주 공연예술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항유·창작 가리지 않고 지역에서 좋은 예술은 자라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 예술 행정의 소극장 정책

올해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내놓은 소극장 지원 정책은 ‘예술공간지원’ 사업이다. 구분하면 예술공간지원에 속하는 세 가지 사업 가운데 ‘공연예술공간활성화지원’이 소극장을 대상으로 한다. 나머지 ‘작은예술공간프로그램지원’은 타 예술 장르도 포함하고, ‘창작공간프로그램지원’은 커뮤니티·레지던스 성격이 짙다.

공연예술공간활성화지원은 ‘공연예술공간에서 2개 이상의 기획 공연’을 올리는데 필요한 직접 경비를 지원한다. 최근 들어 사업 전담 인력과 공간 대표자 인건비는 총 지원금의 20%까지 편성할 수 있고, 공간 운영비도 총 지원금의 10%까지 편성할 수 있게 바뀌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최저 지원 규모를 정해두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하한선 1000만원을 설정했다. 보다 낮은 금액으로 보다 많은 단체를 지원할 가능성이 읽혀진다. 참고로 지난해는 공간 3개 중에서 2곳이 2500만원, 1곳이 2990만원을 받았다. 올해 사업 선정 결과는 3월 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공연 활동에 초점을 맞춘 제주문화예술재단과 달리 타 지역은 더욱 적극적인 소극장 창작 여건을 위해 지원 성격을 넓히고 있다.

서울시는 300석 미만 ‘등록 공연장’의 임차료를 지원하는 ‘서울형 창작극장’ 제도를 2016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2월부터 12월까지 민간 소극장의 임차료를 지원하고, 12주 이상 22주 이내 기간 동안 자체 공연을 진행한다. 자체 공연이 없을 때는 타 공연단체에 기존 대비 50% 이상 할인한 대관료로 빌려줘야 한다.

서울형 창작극장 제도는 지난 2015년 서울연극협회를 비롯한 소극장 관계자들과 의견 수렴으로 탄생한 정책이다. 2017년 공연장 12곳, 2018년 14곳, 2019년 15곳, 지난해 14곳을 창작극장으로 선정해 지원했다. 자체 공연뿐만 아니라 타 공연단체에게는 대관료를 할인해주는 조건 영향인지, 창작극장들 상당수는 비교적 상업성이 덜한 순수예술 작품을 추구하는 공간들이다. 지난해 14개 공연장을 지원하면서 투입된 예산은 4억7600만원이다. 소극장 한 곳 당 3400만원 가량을 지원받는 셈이다. 올해는 창작극장 예산을 5억2000만원으로 늘린 상태다.

대구 남구 역시 주목할 만 한 소극장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소극장들이 보유한 의상, 소품, 조명, 음향 뿐만 아니라 탁자·의자 같은 공유 물품까지 예술인 간에 나눠 쓰는 ‘공유플러스 창고’ 시스템을 올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dpas.kr )를 통해 정해진 양식을 작성하면 손쉽게 빌릴 수 있다. 남구는 앞으로 연습실, 회의실 장소 대관과 배우·스텝 같은 인력 공유까지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마다 여는 ‘문화가 있는 날’에 소극장 공연들을 선정해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구청 부서별 직원 단합 대회를 소극장 공연으로 유도하는 등 섬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모양새다.

이 밖에 소극장 한 곳 당 3년 동안 1억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해 시설 개선, 창작 역량 등을 키우는 공격적인 지원 정책을 펼친 대전시, 인력개발 기관·소극장·행정이 연계해 공연예술 기획자 양성 사업을 진행한 종로구 등 여러 가지 소극장 정책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타 지역 사례를 제주에 직접 적용하는 건 여러가지를 따져볼 일이다. 서울과 대구는 공간들이 밀집해 소극장 문화가 어느정도 정착된 대학로, 대명공연거리가 있다. 대전시의 소극장 지원사업은 오히려 자생력을 해치는 부작용도 일부 나타났다는 현지 평가가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풀뿌리 예술, 순수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극장의 가치를 반영한 정책 행보는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제주도가 참고해야 마땅하다. 특히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대관료 지원은 적극적으로 반영할 법 하다.

제주문화예술재단도 지난해 해비타트 사업을 시범적으로 도입하며 소극장 1곳과 전시공간 1곳의 시설 개선을 도모했다. 하지만 올해 해비타트 사업은 현재까지 정확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다.

제주지역 모 소극장 대표 B씨 “지금까지 제주문화예술재단을 보면 사업 지원 양식이나 사업들에 있어서, 현장이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재단)가 만든 지원 틀에 현장이 맞추라'는 인상이 강했다. 다만 최근 들어 지원 양식도 비교적 간소화되고 긍정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면서 “민간 소극장의 역할을 예술 행정이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현장에서의 소극장 살리기

소극장이 살아나려면 관객이 와야 한다. 관객이 찾아오려면 좋은 작품이 있어야 한다. 좋은 작품이 있으려면 좋은 배우, 극단, 예술가들이 있어야 한다. 좋은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남아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향유·창작·유통이 순환하는 예술 생태계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구조를 고려할 때 제주 소극장 활성화는 행정 지원 유무만으로 풀어내기 보다는 지역 예술계의 근본적인 발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기에는 예술 행정뿐만 아니라 예술인, 단체들의 자구책도 필요하다.

재경 제주예술인 C씨는 “소극장들이 제주도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며 관객 인프라를 만들어나가면, 예술이 지금에 왜 필요한지 굳이 입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관객이 피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객이 좋은 공연에 맛을 들이고 창작자가 그 수준을 유지하면, 관객은 손을 잡고 공연장으로 온다”면서 “좋은 배우, 좋은 창작자가 지역 예술계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관람료를 지불하면서 소극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늘어나지 않는다. 공연예술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이를 위해 제주 소극장들이 서로 머리를 모아 다양한 기획을 공유하면서 협력했으면 좋겠다. 가령, 생활 예술 측면에서 소극장과 지역 주민들이 끈끈한 관계로 이어지면 어떨까”라고 당부했다.

제주에서 예술단체를 운영하는 D씨는 소극장이 청소년과 보다 가까워지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D씨는 “연기에 관심 많은 청소년들은 현실적으로 입시 위주의 연기 학원을 찾는다. 대학과 맞물려 있고 마땅한 방법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대학 내 공연예술 관련 학과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최근 수도권 지역 유수의 공연예술 관련 학과 교수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학생 수를 늘리고 싶지 않아 한다. 공연예술 관련 학과는 자격증이나 능력을 검증하는 수단이 전혀 없기에, 만약 전공을 살리지 않고 졸업한다면 사실상 고졸이나 다름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학과들이 인기가 많으니 학교 입장에서는 돈벌이를 위해 공연예술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학과들의 학생 수를 늘린다. 교수들 입장에서는 이런 구조가 눈에 뻔하고 자신들이 학생들을 책임지지 못하니 오히려 늘리고 싶지 않는 속 마음”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그래서 공연예술에 관심이 큰 청소년들을 위한 공익적인 예술 사업을 지역 소극장이 맡아야 한다. 학원 개념이 아닌 무대 경험을 쌓게 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일찍 알게 해야 한다. 공연예술 관련 학과를 진학하는 대다수 학생들이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런데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원하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소극장이 역할을 할 수 있게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제주도가 소극장 사업을 폭넓게 바라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제주 극단 대표 E씨는 “음악은 음악 공간, 전시는 전시 공간, 연극은 연극 공간 만으로 사용하는 개념은 오늘날 힘을 잃기 마련이다. 앞으로 소극장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돼야 한다. 누구나 찾아오고 향유하는 문턱을 낮춰야 생존도 가능하고 현실적으로 그 안에서 순수 예술을 이어가는 가능성도 찾을 수 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예술은 고달프고 허무맹랑하다는 인식. 하지만 그런 예술이 곁에 존재하기에 퍽퍽한 우리네 삶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목을 축일 수 있다. 코로나19 종식을 명확히 전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주 소극장들의 어려움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소극장이 풀뿌리 예술, 순수 예술의 근간이라는 인식 속에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제주도의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기다. 도민들도 가혹한 생존 여건 속에서도 무대를 포기하지 않는 소극장과 창작자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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