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제주특별자치도의 ‘혼, 창, 통(魂. 創. 通)’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제주에 살면서 ‘지역 발전’과 ‘지역 자치’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내가 사는 지역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지역 주민이라면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지방자치’라는 알려진 표현 대신에 ‘지역 자치’라는 말을 일부러 썼다.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에 기초한 ‘지방’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지역 발전’과 ‘지역 자치’를 생각할 때면 문득 떠오르는 건 필자가 유학했던 독일이다. 독일은 베를린이 수도지만 베를린 중심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독일 각 주는 지역 자치가 매우 잘 되어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초로 주민들은 그 지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중앙과 지방이 따로 없다. 지역이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지역 자치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독일은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아니었기에 지역 자치가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중앙에 집중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실질적인 지역 발전과 지역 자치를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피부로 느낀다.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 임처개진(隨處作主 臨處皆眞)”을 설파했다. 서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면 임하는 곳마다 모든 게 진리가 된다는 뜻이다. 지역이 발전하고 자치가 잘 되는 곳이라면 ‘수처작주’를 가능하게 하는 여건이 조성된다. 마음을 애써 내지 않아도 서있는 곳에서 주인으로 행하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시작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15년 정도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제주도의 ‘혼, 창, 통(魂. 創. 通)’을 제대로 설정하고 실행했는지 점검해야 한다. (‘혼, 창, 통’은 이지훈 작가의 책 ‘혼, 창, 통’에서 따왔다. 큰 뜻을 세우고(혼),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며(창), 물이 흐르듯 소통하라(통)는 의미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제주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개발과 보존이 어렵더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방향 없이 속도를 높일 게 아니라 방향을 바르게 잡은 후에 속도를 내야 한다. 

출처=알라딘.
제주에 알맞은 지역 발전을 도모하면서 지역 자치를 추구해야 한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제주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개발과 보존이 어렵더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인가? 제주도의 ‘魂. 創. 通(혼, 창, 통)’을 일구어나가는 정치, 경제, 문화를 함께 일으켰으면 한다. 출처=알라딘.

방향을 잘못 잡은 건 아닌지 고민해야겠다. 제주 자연을 등한시한 채 개발을 앞세운 건 아닌지 뒤돌아봐야겠다. 제주 자연과 문화를 생각하면, 제주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제주 자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제주 자연이 가지는 가치는 지금이 훨씬 크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제주 자연을 즐기러 제주로 온다. 제주 자연은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의 자산이다.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생각할 때, 제주 자연을 늘 염두에 두고 IT 기업 등을 유치하고 대폭 지원해야겠다. (언론인 출신의 김수종 씨가 쓴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 제주도로 떠난 디지털 유목민’은 필자가 좋아하는 책이다. 지금은 빛이 조금 바랬지만,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 나오는 글 중에 특히 눈길이 갔던 문구가 있다. “세계적인 시각에서 서울 중심의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표현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지역 발전과 지역 자치를 향한 길은 녹녹치 않다. 지역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마인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점점 더 중앙으로 집중되는 것 같아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서 매우 안타깝다.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겠지만, 협력하고 공생하는 것 또한 인간 본성이다. 제도와 구조가 경쟁에만 치중되어서는 서울 이외의 지역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역은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최선의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올해 초 제주에는 큰 일이 연달아 있었다. 제2공항 여론조사가 있었고,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제2공항 찬반의 갈등이 여전하지만,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 도민의 염원이던 4.3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4.3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실질적인 피해보상의 길이 열리게 됐다. 

제주에 알맞은 지역 발전을 도모하면서 지역 자치를 추구해야 한다. 여건이 정말 녹녹치 않다. 중앙과 지방은 점점 더 분리되는 듯하다. 지역 주민들이 단합하지 않으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인가? 제주도의 ‘魂. 創. 通(혼, 창, 통)’을 일구어나가는 정치, 경제, 문화를 함께 일으켰으면 한다. / 고봉진 논설위원·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